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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희 Dec 26. 2019

머리 만지던 날


동네 작은 미용실을 정해 놓고  두 달에 한 번씩 염색을 한다. 

미용실 한 쪽 벽면은 네 살, 여섯 살 어린 남매의 사부작 대며 노는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장식해 놓았다. 그리고 아직 애된 티가 얼굴에 도는 미용실 주인. 

상냥하며 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아이들의 안부를 자연스레 물었더니,  두 아이 모두 감기에 걸려 유치원을 못 보내고

당분간 집에 있다고 한다. 남편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고 했다.

시계를 흘깃 보니 낮 두시가 넘은 시간. 이 시간에 남편이 집에 있다는 말에 

고개만 끄덕였다. 새댁은 금방 뱉은 말에 대해  당황하며  신랑에 대한  변명을 급히 한다. 

저녁에 일하러 나갈거예요. 그러면 시어머니께서 오시어 아이들을 돌볼거구요.

 다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발하러 온 남자분 손님은 가고, 작은 미용실엔 나 혼자만 남았다.

아이들이 걱정되는지 집으로 전화하는 새댁은 평상의 목소리로 

애들 상태를 묻더니,  곧 작은 목소리로 톤을 낮추어 남편과 이야기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일방적인 여자의 말만 듣게 되지만 짐작은 충분했다.


".... 아니... 오빠가  일을 해야지..그래야 큰 애 태권도도 보낼 수 있지..어디든 나가봐... 그리고

우리 식비는 거의 어머님과 친정에서 해결해 주잖아...언제까지 그럴 수 있겠어...

....오빠 제발 이번엔 착실히 좀 알아보고 다녀면 좋겠어....."


아무리 작은 소리라도 작은 미용실안에선 목소리를 숨길 수 없었다.

염색약이 충분히 머리칼에 착색 되기 까지는시간은 걸리고, 

신문을 뒤적이며 통화내용을 듣다 보니  내 가슴까지 답답해져 왔다.

한 집 건너, 두 집  건너 들어서는 미용실들.  고만고만한 평수에  머리 만지는 기술을 익힌 

주인들이 가위와 드라이 기기를 들고  손님을 마중하고 배웅하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러다 어느새 다른 업종이 들어서고.


염색이 끝나고 드라이기로 보기 좋게 머리를 마무리하며 만져주는 손길에 ...

" ....  이 파머 머리가 이젠 싫증나네요... 매직 볼륨 파머를 하고 싶은데.."


남편과의  통화를  대책없이 시원찮게 끝내고  난 후,  침침하던 새댁의 얼굴이 밝아지며 

다음에 오신다면 최선을 다해 잘 해드리겠다는  말을 몇 번이고 한다,

미용실에 들리기 전에 .마트에서 사 두었던 과자와 음료를 일하다 출출할 때 

먹으라며 건네주고 왔다.


그녀의 남편도 일이 없어 그 남자 스스로도 답답하겠지만 

참새 처럼 짹짹대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입히고 병원도 가야하고.

걱정 많은 고 애띤  새댁의 표정이  어른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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