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3일 새벽일기

by 이영희

그래도 50대가 좋았어

살림살이 좀 정리되며 안정도 찿아

글이 그나마 글 같았어 활기찼지

지금보다 단어가 빨리 떠오르고 단도

빨라 쓸말과 할말을 걸러내기도 수월했어

대단한 글은 아니라도 생각한 문제에

합당한 사고 문장을 문장답게

이어갈 수 있었어


그렇다면

40대가 훨씬 나은 것 아닐까

내 경우는 그렇지 않아 그때는 오욕칠정,

거품처럼 일어났어 남보다 잘 살고프고

품위와 격조는 어설프면서도

여왕처럼 살고팠지 불혹이 아닌 미혹

더하여 글을 쓰고 싶었지만 서점에 나온

수많은 활자의 진실은 대담한데 나의 말은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가 아닌

잔망스런 사실만 늘어놓는 말하자면

가관이란말이 딱이야


30대는 뭘했나 그냥 저냥 살았어

아이와 남편의 세계가 전부인양

이런 게 여자의 일생인가 했지

아들은 어렸었고 남편과는 삐걱대며

결혼에 대해 회의감 그러면서 아이를

향한 무한사랑으로 어미로 아내로

지지고 볶는다는 말을

경이롭게 빡세게 경험하


그럼 20대로 돌아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봤지만 썩 가고싶지 않아

목련처럼 산수유처럼,벚나무처럼

온몸이 달큰함으로 물이 올랐지만

청춘이라는 멋들어진 어감보단

숫자만 풋풋 내 인생에 대해 심히

골똘해지지만 정답없는 문제집만

계속 풀고 있는 듯


10대는 표준전과처럼

표준치로 눈치코치도 늘어가고

부모님에 대한 반항과 내안에 불확실한

불안이 묘하게 뒤틀리며 매캐한 연기를

피워댔어 매사가 불만이고 표출하자니

구실은 빈약하고 몸은 자꾸만 허물을 벗어

용모는 뚜렷해지는데 몸의 변화에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정신세계는 가만히 있자니

원인없는 열불그래서 친구들에게

올인하며 위안을 얻고 집에선 침묵하고

밖에서만 수다스러워지는 시절을....


그전은 어땠나 5,6,7,8,9

그야말로 본능에 충실한 때였지 싶어

낱말의 뜻을 점점 익혀가며 학교라는

복잡하면서 단순한 놀이터가 펼쳐지지

내 키만큼 몸무게 만큼의 작은 세계가 아마

날마다 해마다 새삼스러웠을거야


만약에, 만약에

태어나기 전으로 갈 수 있다면 그곳으로

가고 싶어

카오스, 카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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