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영희 Feb 17. 2021

보통 여자

   ##

숲 속 높은 곳 나뭇가지 위에서 노래기 한 마리가

셀 수도 없이 많은  다리를 움직이며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다. 목소리가 고운 새들이 내려다보고는

일사불란한 노래기의 걸음걸이에 반해 버렸다.

.. 와, 굉장한 재능이다. 네 다리는 너무 많아

셀 수가 없구나 어떻게 그렇게 걷는 거니? 하며

새들이 짹짹거렸다. 그러자 노래기는 난생처음으로

자기 다리에 대해 갸우뚱거리며 생각해 보았다.

 -글쎄,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하더라, 노래기는

자기 다리들을 돌아보려 몸을 비틀자 갑자기

그 촘촘한 다리들이 서로 부딪히며 덩굴처럼 

엉켜버렸다. 어쩔 줄 몰라 당황한 노래기가

매듭처럼 몸이 꼬여 저 아래 땅으로

떨어지는 걸 보며 새들은 재미있어 웃어댔다.

.......

...................

누구든 그런 질문을 받은 적 있었겠지.

어떻게 매일, 또는 일주일에

몇 번을 이곳에 글을 쌓아가는지.

그렇게 할 말이 많은 사람이었나.

누구는 자서전처럼 쓰고, 어떤 이는

유서처럼 남기고, 또 누구는

모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지길 소망한다.

그럼, 나는...나는..?

......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

##

숲 바닥에 떨어진 노래기는 다친 건

자존심뿐이라는 걸 알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풀어 보았다.

참을성 있게 몸의 부분 부분을 유심히 살펴보고  

움직여 보고 시험해 보다가 마침내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전에는 본능이었던 것이 지식이 된 것이다.

노래기는 옛날처럼 느리고 기계적인 걸음으로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어슬렁댈 수도 있고 거드럭댈 수도 있고,

껑충거릴 수도 있고, 심지어 달리거나

뛰어오를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자 전과는

다르게 노래기는 새들의 화음을 들으며

음악에 감동할 줄 알게 되었다. 이제 수천 개의

재능 있는 다리들을 완벽히 조율할 수 있게 된

노래기는 용기를 내어 자기만의 스타일로 눈부신

춤을 추어 세상 모든 피조물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

...........

내가 가진 타고난 재능은 어디까지일까.

사실 상상력도 빈약하고, 이렇게 써야 한다

저렇게 써야 한다는 작법에

대한 책을 찾아서 읽어왔지만,

그것보다는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용기다. 거부, 비웃음,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나는 용기다.

대충 아는 것을 쓸 수는 없다. 그렇다고

삼라만상을 꿰뚫을 수도 없다.

좁은 안목이나마 한 줄 한 줄, 한 장 한 장,

십 분이든 한 시간이든 일단 써보면 알게 된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 무슨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그냥 보통 여자, 보통의 주부로서 보통의 글을

쓰지만 그 안에서 누군가 무릎을 치던가,

맞아, 맞아, 이 맛이야, 하며 딱 한 줄에서라도

공감을 줄 수 있다면 또한 기쁘지 않을까.

쓸까 말까, 또는 내일 쓸까,  모레 쓰지, 하며

미루지 않고 지금 쓰자고 결정을 내리면 의외로

어렵지 않게 이어지곤 한다.

그래서 오늘도 용기를 내어 이렇게

한 페이지를 장식해 본다.

.......

................

요즘 허 연, 이 시인을 읽고 있다.

그중에 한 편 옮겨 본다. 시인의 말대로   

"하지만 난 또 시를 쓴다. 그게 가끔은 진실이다."

나는 이 한 줄에 그만 푹 하고 무릎이 꺾였다.


** Cold Case**

                       

 한 친구는 부처를  알고 나니까 시 같은 거

안 써도 되겠다며 시를 떠났다. 또 한 친구는

잠들어 있는 딸아이를 보니까 더 이상

황폐해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시를 떠났다. 부러웠다.

난 적절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별자리 이름을

 알았거나, 목청이 좋았다면 나는 시를

버렸을 것이다. 파킨슨병에 걸린 초파리를

들여다보며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면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신중한 내연기관이었다면 수다스럽게 시를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또 시를 쓴다.

그게 가끔은 진실이다.

난, 언제나 끝까지 가지 못했다. 부처에게로

떠난 친구나, 딸아이 때문에 시를 버린 친구만이

끝까지 갔다.


  미안 하다. 미안하다. 내 시가 누군가의 입맛을

잃게 해서. 끝까지 가지 못해서. / 허 연


아크릴


작가의 이전글 반듯하게 애뜻하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