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한 파묵

단어들로 그림그리기

by 이영희


2012년에 초판이 나온

< 소설과 소설가>

그는... p113와 114에 '행복'이란

이런 것이라며, 짧지만 강하게 공감 가는 글을 썼다.

단락을 옮겨 본다.


"... 나는 일곱 살부터 꿈꿔 왔던

화가의 꿈을 접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나에게 이 결정은

행복해지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어릴 때 그림을 그리면서 지극히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이 즐거움이

갑자기 그리고 한 번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던 이유로 사라졌습니다.

그 후 35년 동안 소설을 쓰면서도 사실

내가 그림에 더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이제는

단어들로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그림을 그릴 때는

더 천진하고 소박하며, 소설을

쓸 때는 더 성숙하고 성찰적이라고

느낍니다. 소설은 오로지 이성으로

쓰고, 그림은 오로지 재능으로

그리는 것 같습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선을 긋고

색을 칠하면 내 눈은 내 손의

결과물을 거의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았고, 나의 이성은 이 모든

것을 아주 나중에야 이해하곤

했습니다. 소설을 쓸 때도 이와 같은

흥분에 휩싸이고 나서 한참 후에야

나 자신이 숲 어디에 있는지

이해하곤 합니다.


빅토르 위고에서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1849-1912 스웨덴 극작가, 소설가)

까지 소설 외에 그림에서도 행복을

느낀 작가는 많습니다. 격동적인

풍경화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스트린드베리는 《하녀의 아들》이라는

자전적 소설에서 그림 그리는 것이

" 아편을 피운 것처럼,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소설에서도, 그림에서도 가장

숭고한 목적은 이러한 행복일 것입니다.

.....

..........


여기까지 옮기며 나의 그림과

글쓰기 또한 크게 다르지 않기에

공감했다... 다른 페이지에도

고개 끄덕이는 문장이 많았다.

들면...


" 소설가는 단어와 묘사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


"정확히 사물들을 필요한 만큼 화가처럼

묘사할 수 있는 것"


"플로베르가 말한 '적절한 단어'를

찾기에 앞서 소설가들이 찾아야 하는

' 적절한 심상' 역시 풍경, 사건,

소설 속 세계에 완전히 들어간 뒤에야

찾을 수 있습니다.


"소설에서 사물에

대한 묘사는 주인공들에게 느끼는

애정의 결과이며 표현입니다".. 등등

.....

........

.

.

이 책을 살피며...

소설뿐만 아니라 시, 희곡, 에세이

수많은 작가들이 고민하는 문제를

친절하게 잘 풀어 주었다.

나 또한 젊은 날 파고들며 읽었던

스땅달, 발자크, 플로베르, 톨스토이,

토마스 만, 도스도 옙스키, 괴테, 등등... 많은 작가들의 문장을 예시해 주어 재미를 더했다.


나는.. 내 그림이 천진하기 보다는

유아틱 하지만 계속 스케치를 할 것이며,

글 또한 성찰이 부족하지만

고민은 뇌가 상하지 않고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떨리지 않을 때 까지

하지 않을까 싶다.

늘은 여기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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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릴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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