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전 어느 봄날, 큰오빠에게 한 권의 책을 받았다. 그 시절 오빠는 학교에 재직 중이었고, 나는 글쓰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점심시간에 맞추어 오빠 학교 근처 식당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헤어지는데, 오빠는 글쓰기 공부에 조금 도움이 되면 좋겠다며 내게 책 한 권을 건네주었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두툼한 책 속을 살피다가 편지봉투를 발견하였다. 읽고 싶은 책을 사서 있으라는 짧은 메모와 함께 들어 있던 이십만 원, 가슴 저 밑이 뻐근했다.
그날 이후로 정민 교수의 저서를 몇 권 더 읽었다. <미쳐야 미친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다산 선생 지식 경영법> 등등.
그날 오빠가 건네준 <한시 미학 산책>은 솔출판사에서 1996년 여름에 1쇄를 찍은 초판이다. 지금도 머리맡에 두고 보고 또 보곤 한다. 옛사람들의 시와 산문 짓는 마음가짐은 페이지를 넘길수록 흥미를 더한다. 어느 단락은 자주 들춰보았더니 몇 페이지씩 뜯겨나가 테이프로 붙여놓기도 했다. 요즘 사람들에게 크게 인기를 끌지 못하는 고전. 그러나 저자는 수많은 자료를 하나 하나 발췌하여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서게끔 해주는 친절과 정성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책을 엮어내기까지의 수고로움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서점에 새로 나온 책 또한 많지만, 그날 오빠에게 받은 <한시 미학 산책>은 더 각별하게 다가온다. 꽤 많은 시간이 흘러 오늘에서야 그 감상을 미약하나마 적어본다.
차례 목록은 첫 번째 이야기 <허공 속으로 난 길, 한시의 언어 미학>을 시작으로 스물네 번째 이야기 <그때의 지금인 옛날, 통변론>으로 끝을 맺었다. 오백 페이지가 조금 넘는다. 중국의 당송시대와 더 이전의 역사 속 문인들, 그리고 우리 선조들 이야기. 그 가운데 두 번째 이야기 <그림과 시> 안에 ‘그리지 않고 그리기’와 ‘말하지 않고 말하기’는 펼칠 때마다 새롭게 다가온다.
“시와 그림은 서로 깊은 연관을 맺어왔다. 옛말에 시는 소리 있는 그림이요, 그림은 소리 없는 시라 하였다. (…) 화가는 말을 할 수 없으므로 경물이 직접 말하게 해야 한다. 말 그대로 경물을 통해 ‘뜻을 묘사하고 정신을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설명을 한 뒤, 여섯 가지 예문를 들어 이해를 도와준다.
두 가지만 여기에 옮겨본다. 하나는 유성(兪成)의 <형설총설>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림을 몹시 좋아하는 송나라 휘종황제는 화공들을 모아놓고 “꽃 밟으며 돌아가니 말발굽에 향내 나네”라는 화제(畫題)를 주었다. 말발굽에서 나는 꽃향기를 그림으로 그리라는 주문이다. 모두 손대지 못하고 끙끙대고 있을 때, 한 화가가 그림을 그려 제출하였다. 달리는 말의 꽁무니를 따라 나비 떼가 뒤쫓아 가는 그림이었다. 말발굽에 향기나 나므로 나비는 꽃인 줄 오인하여 말의 꽁무니를 따라간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구한말의 유명한 화가 허소치가 고종 앞에 불려갔는데, 고종은 그를 골탕 먹이려고 춘화도를 한 장 그려 바칠 것을 명하였다. 얼마 후 허소치가 그려 바친 것은, 깊은 산 속 외딴 잡 섬돌 위에 남녀 신발이 한 켤레씩 놓인 그림이었다. 환한 대낮, 닫힌 방안에서의 진진한 일은 알아서 상상하시라는 재치였다.
이것을 드러내기 위해 저것을 그리는 방법. ‘성동격서’라는 말처럼 소리는 이쪽에서 지르면서 정작은 저쪽을 치는 소리이다. 시인이 말하는 법도 이와 같다면서 ‘말하지 않고 말하는’ 수법에 대해 시의 언어는 직접 의미를 지시하는 대신 이미지를 통한 간접화의 방식으로 의경(意境)을 전달해야 한다고 했다. 할 말이 있어도 직접 말하지 말고 사물을 통해 말하라는 것이다. 만약 시인이 직접 나서 시시콜콜한 자기감정을 주욱 늘어놓는다면, 그것은 넋두리나 푸념일 뿐 시일 수는 없다고. 많은 예를 들었지만 당나라 때 시인 정곡의 시가 마음에 진하게 남는다.
"돌아가던 개미가 구멍 찾기 어렵겠고
돌아오던 새는 둥지 찾기 쉽겠구나.
복도에 가득해도 스님네는 싫어 않고
하나로도 속객은 많다고 싫어하네."
이 시는 무엇을 노래한 것인가. 개미는 왜 구멍을 찾지 못하며, 새는 둥지를 왜 쉽게 찾는가. 낙엽이 쌓이는 형상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시의 모든 상황은 선명해진다고 저자는 설명하였다. 어디에도 낙엽과 관계되는 말은 조금도 비치지 않았다며 한 인연이 끝나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낙엽만이 아니라고. 우리네 인생도 그러하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스님네가 이를 싫어하지 않는다 함은 담긴 뜻이 유장하다고 하였다.
오백여 페이지가 넘는 책 안의 보석 같은 시와 해설을 이곳에 더 담을 수 없어 아쉽다.
동생을 응원해주는 오빠에게 나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다. 요즘 폐암과 혈액암으로 투병중인 큰오빠에게 이렇게나마 안타까움과 고마움을 담아 글을 쓸 뿐이다.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그동안 오빠가 건강하게 계심에 든든했던, 그것이 나와 우리 형제들의 복이었다. 7월말, 골수이식이 잘 되어 일상으로 돌아오실 날을 간절하게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