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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희 Oct 13. 2024

수확



이것은
가을 들판에만 있지 않을진대
남의 작품을 정확하게 읽으려 할 때
나의 감정 세포들도 덩달아

 가늘어지며 파고들곤 해.
.
.
눈을 들어

저기 보이는 우면산과 관악산 능선.
길가의 가로수.

푸른 물이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다.

빠진 물만큼 저 산속 알밤과 도토리와

잣송이들은 후두득후드득

마른 나뭇잎 속에 떨꿔낸다.
.
.
가을이,

가을은 자꾸 깎여가고 있는데
수확의 계절. 내게는 떨궈 낼 단단한
열매가 하나라도 있는가.

올해는

서점에 몇 번이나 들렀나.
구입한 책이 열 손가락을 채울 수 있는지.

그 안에서 연필로 밑줄 그어가며

새겨야 할 문장은 곳간에 얼마나 채워졌나.
.
.

책꽂이 안의

오래된  유종호와 김현의 평론.

황인숙의 시를 다시 펴 들고.

괴테의  소설 <선택적 친화력>,

제목부터 머리 아픈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가벼움과 무거움 속을 허우적대다

시월 십삼일 일요일이 밝았네.


제발

좀 잘 살아내자.
.
.

안동 도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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