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티와 빤스

by 이영희


외출을 할 때는 뱀이 허물을 벗듯

우선 빤스부터 벗어야 한다

고무줄이 약간 늘어나 불편하지만, 편안하지만,

그래서 빤스지만 땡땡이 물무늬 빤스


집구석용 푸르댕댕 빤쓰는 벗어버리고

레이스 팬티로 갈아입어야 한다

앙증맞고 맛있는 꽃무늬 팬티 두 다리에 살살 끼우면

약간 마음이 간지럽고 샅이 나풀댄다

나는 다시 우아하고 예쁜 레이스 공주


밖에서 느닷없이 교통사고라도 당한다면

세상에, 땡땡이 빤스인 채로 공개되면 어쩌나

비싼 쎄콤 장치로 만약의 위험에 대비하듯

유명 라펠라 팬티로 단단한 무장을 한다


오늘 바람이라도 살랑, 불라치면

혹시라도 치마가 팔랑, 뒤집힌다면

나, 죽어도 꽃무늬 레이스로 들키고 싶다 -손현숙-





얼마나 귀엽고 유쾌한 시인가. 나도 그러했으므로.

외출할 때마다 서랍 속 팬티를 고르며 그랬다. 오늘 혹여 내게 불미스러운 사고가 덮쳐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망상을 한다. 엠블런스로 병원에 실려가 의사와 간호원에게 예의 없이 마구 거칠게 내 옷이 벗겨지는 상상을 하면서 빤스도 분명 부끄럼이 있다고.

그래서 팬티와 브래지어를 집구석용과 외출용으로 편 갈라놓은 나.

이것이 여자다.

이런 여자가 내 옆에도 내 앞에도 내 뒤에 있다. 귀여운 여자들. 솔직한 여자들.

오늘 아침, 이 시 하나로 종일 나는 즐거울 수 있다.


IMG_20190401_5.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렇게 살다 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