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인은 결국 대학에 가지 않았다.
원래도 그다지 우수한 성적이 아니었지만, 한 달의 공백으로 생긴 격차가 홀로서기를 하는 동안 더욱 크게 벌어졌다.
그러니까 수능이 제대로 망했다는 뜻이다.
“재수할 생각은 없어?”
일주일에 한 번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된 나정이 물었다.
“윽.”
화인이 질색했다.
“대학 꼭 가야 해요?”
재수를 하면서까지 대학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네 자유지만, 역시, 가는 쪽이 선택의 폭이 넓어지지.”
“흐음.”
화인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천천히 생각해 봐. 아님 아르바이트라도 해 보던가.”
“아르바이트요?”
“미리 사회를 경험해 보는 거야. 그럼 늦게라도 네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알 수 있을 지도?”
나정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해 보면 알겠지. 아, 공부하는 게 제일 편했구나, 하고.”
화인이 가만히 눈만 깜박이며 앉아 있자 나정이 팔을 걷어붙였다.
“소개해 줘? 일할 곳? 아르바이트를 찾아 인터넷 사이트를 전전할 너의 수고를 덜어 주마.”
“어딘데요?”
화인이 얼떨결에 물었다.
“피자얌.”
나정이 일하는 유명 프랜차이즈였다.
“정규직은 좀 거지 같지만 아르바이트하기에는 좋은 곳이야.”
나정이 화인을 흘끔 보고 말을 이었다.
“잡생각을 줄이는 데 노동만 한 게 없어.”
그렇게 화인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일 배우는 게 빠르네.”
서툴지만 몸을 움직이고 사람들을 접하자 잡생각이 줄고 차츰 활기도 생겼다.
“아르바이트들이 다 너처럼만 일하면 얼마나 좋을까.”
제법 만족스러운 아르바이트 생활이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문득 미래에 대한 불안이 찾아왔다.
“취업할 때 되지 않았어? 정규직 하는 게 어때?”
때마침 화인이 일하는 매장의 점장이 정규직을 권했다.
불안했지만 마땅한 계획은 없었던 화인이 점장의 제안을 겁도 없이 덥석 물었다.
나정이 거지 같다던 정규직이 기어코 되고야 만 것이다.
[네 덕에 내 평가가 같이 올라가네.]
1년 차, 나정이 문자로 격려했다.
[승진 축하해!]
2년 차, 예정보다 빠른 승진을 나정이 축하해 주었다.
[괜찮아?]
3년 차, 나정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서비스직이니 감정 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당연했고, 사전 동의 없는 초과 근무, 남녀 임금 차이, 성과 경쟁, 험담 등 정말 그 모든 것이 거지 같았다.
‘이렇게까지 거지 같을 줄은 몰랐지.’
그리고 어째선지 연차가 쌓일수록 나아지기는커녕 스트레스가 더욱 극에 달했다.
이 무렵 나정과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소속 매장도, 근무 일정도 달라 만나는 시간이 줄어든 탓도 있지만 나정이 결혼과 동시에 이사를 가고, 회사까지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아닌 것 같아도 네가 어머니를 많이 닮았나 봐.”
나정이 괜스레 화인에게 건넬 청첩장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근데 화인아, 몇 년 사이에 세상이 많이 변했어. 양보하고 베풀고 참는 게 좋을 때도 있겠지. 그렇지만 너도 알다시피 호구로 보는 인간들이 더 많잖아.”
화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니까 때론 쟁취하고 들이받을 필요가 있다, 이 말이야.”
나정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너도 얼른 탈출하길 바랄게. 거기에 네 미래는 없어.”
화인도 그저 웃었다.
[혼자만 너무 열심히 일 하는 거 아니지?]
나정이 퇴사 후에도 걱정이 되었는지 이따금 연락을 해왔다.
[몸 사리면서 일해.]
마지막 문자였다.
어영부영 2년이 지난 어느 날의 일이었다.
“염 주임, 내일 나 사원 승진 시험인데, 옆에서 같이 좀 풀어줘.”
점장이 말했다.
화인은 가만히 눈만 꿈벅이며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지 점장의 말을 되새겼다.
채용 인원이 줄고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매년 진행되는 승진 시험이 온라인으로 바뀌었단다. 정해진 시간에 전송된 링크의 사이트에 접속해서 시험을 치는데, 오픈북이니 옆에서 같이 책을 보며 문제 좀 풀어 주라는 말이었다.
이번이 세 번째인데 또 떨어지면 점장인 자신의 면이 서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말 어이없고 불합리한 일 아닌가.
대리 시험, 정확히는 동반으로 시험을 치라니.
“시험 친 지가 오래돼서 별로 도움이 안 될 텐데요.”
화인이 소심하게 반발했다.
“나보다 오래됐어?”
점장이 비아냥 섞인 말투로 흘겨봤다.
“아니죠.”
“부탁해.”
점장은 이 사실을 사원 나기태에게 곧장 알린 모양이었다. 다음 날, 정해진 시험 시간에 딱 맞추어 들어오면서 외친 말이 이러했으니.
“주임님! 도와주세요!”
시험 시간 13시, 근무 시작 시간 13시, 매장에 도착한 시간 13시.
화인은 그가 매장에 두고 간 교육 교재를 지그시 바라보며 목에 걸린 울화를 꾹 눌러 삼켰다.
‘그래, 그냥 빨리 끝내 버리자. 세 번째라니까 옆에 앉아서 적당히 참견만 하면 되겠지.’
이런 화인의 생각은 사무실에 들어가 앉는 순간 와르르 무너졌다. 시험 응시자는 나기태인데 책도, 모니터도, 마우스도 모두 화인 앞에 있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기태에게 넌지시 밀어내기도 했다.
“그래도 나 사원 시험인데, 직접 풀어야죠.”
그러면 한두 문제를 풀고 모르겠다며 다시 화인에게 떠넘겼다.
“잘 모르겠는데, 이 문제도 풀어주세요.”
이런 식으로 문제를 절반이 넘게 풀었을 때,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약간의 염증을 느꼈다.
그러나 점장의 푸념이 벌써 귀에 들리는 듯하여 한숨을 내쉬고 나머지 문제도 적당히 풀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감사합니다, 주임님. 제가 오늘 비싼 커피 사드릴게요.”
사양하지 않았다. 정말로 제 덕이었으니까.
화인 덕분에 승진도 하고 월급도 오르니까.
화인은 근처 카페 중 제일 비싼 카페에서 제일 비싼 메뉴를 주문했다.
‘이게 맞아?’
화인은 그가 사준 커피를 마시며 자꾸만 치미는 울화를 달랬다.
“요즘 일 하는 거 어때?”
몇 달 뒤, 점장이 물었다.
“똑같죠, 뭐.”
화인이 맥없이 답했다.
“그럼 기태랑 같이 일 하는 건 어때?”
유도 심문? 아니면 정말로 궁금해서? 화인은 잠시 고민했다.
“힘들어요.”
점장이 어떤 대답을 기대한 지는 모르지만 화인은 솔직하게 답했다.
“어떤 게 힘들어?”
점장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다분히 인위적이었다.
“매번 지각하는 것도 힘들고, 술 냄새 풍기면서 출근하는 것도 힘들어요. 그렇다고 일을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 네가 많이 힘든가 보구나.”
점장은 기태의 근무 태도를 누구보다 잘 알면서 마치 화인에게 처음 듣는다는 듯이 대꾸했다. 기태 때문에 힘들어한 것은 화인보다 자신이면서. 그리고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생각에 빠진 척했다.
‘아, 역시 유도 심문이었구나.’
그 순간 화인은 뜨끔했지만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 대화의 파장을 매장 이동 정도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가 가든, 기태가 가든.
그런데 아니었다.
며칠 뒤, 기태가 또 숙취로 지각한 날, 점장은 화인과 기태를 사무실로 불렀다. 그리고 출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취기로 몽롱한 기태를 상대로 넌지시 사직을 유도했다.
승진 시험에 꼭 합격시켜야 한다고 동반 시험까지 강요하던 점장의 심경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기에.
“기태야, 너 이제 갈 데 없는 거 알지?”
“네.”
기태가 힘없이 대답했다.
“근데 염 주임이 너랑 일하는 거 너무너무 힘들대. 어떻게 생각해?”
점장이 이 말을 한 순간, 화인의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리고 후회했다. 내가 왜 솔직하게 말했을까, 하고.
“그럼 제가 그만둬야지요.”
기태가 고개를 푹 숙이고 웅얼거렸다.
“그럴래?”
점장은 즉각 되물었고, 기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기태는 한순간 일자리를 잃었다.
충격이었다.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약 8년 간 피자얌에서 일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 보았다.
자의든 타의든 ‘퇴사’라는 것이 이렇게 쉬운 일이었던가. 고작 부하 직원의 ‘힘들다’는 말 한마디로 내치는 게 가능할 만큼?
화인은 마음이 불편했다. 꼭 제 탓인 것만 같아서. 그리고 자신의 처지가 눈에 훤히 보여서.
‘거기에 네 미래는 없어.’
속이 답답하다.
“저 때문에 힘드셨다니 죄송합니다. 그럼 가 볼게요.”
주방 구석에 멍하니 서 있는 화인에게 다가와 기태가 인사했다.
면목이 없는 화인은 슬쩍 눈을 피하며 묵례만 했다.
기태가 매장을 떠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무실에서 점장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부장님, 네, 잘 처리했습니다. 어떻게 말하나 골치 아팠는데, 돌부처 같은 화인이가 너 때문에 힘들다고 하니까 저도 뜨끔했는지 바로 그만둔다고 하더라고요. 네, 앓던 이를 뽑았더니 속이 시원하네요.”
심경의 변화가 아니었다. 점장과 부장의 설계였던 것이다.
화인은 명치가 쑤시기 시작했다.
평소 평판을 중요시 여기는 점장은 언젠가 내칠 부하 직원이라고 해서 무능한 상태로 둘 수 없었다. 부하 직원의 무능은 상사의 평판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점장에게 승진 시험과 불성실한 근무 태도는 별개의 문제였던 것이다.
또 제가 힘들다는 핑계로 직원을 쫓아내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테지.
자존심도 지키고 앓던 이도 뽑아 줄 구실이 바로 화인이었던 것이다.
‘너도 얼른 탈출하길 바랄게. 거기에 네 미래는 없어.’
그날 이후 화인의 머릿속에 나정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탈출과 미래.
화인은 ‘퇴사’가 무서웠다.
좋든 싫든 유일하게 소속감을 안겨 준 곳이다. 의지할 곳 없는 신세인 화인에겐 동아줄이나 마찬가지였다. 비록 많이 섞어 있었지만.
그리고 화인은 자신이 퇴사한 후의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았다.
탈출.
어디로?
애초에 이 거지 같은 정규직이 되지 말았어야 했나.
아르바이트도 하지 말 걸 그랬나.
아니, 역시 대학을 갔어야 했나.
대학에 갔다면 달랐을까.
그랬다면 다른 삶을 살았을까.
만약 그날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면…….
화인은 과거로, 과거로 퇴보했다.
그렇게 후회하고 망설이는 사이 또 어영부영 2년이라는 시간이 또 지나갔다.
그날은 비가 내렸고, 출근이 지독히도 하기 싫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