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 차사들은 49일 동안 여러 부서를 돌며 일을 배우고 영력을 훈련한 다음, ‘특별한 하자’가 없을 시 평차사로 정식 채용되었다.
특별한 하자란, 영(靈)의 오염도를 뜻했다.
악업을 저지른 인간은 영이 탁해지는데, 악업이 많을수록 탁기가 짙어졌다.
눈에 띄게 탁한 영현(英顯 죽은 자의 영혼)은 애초에 뽑지도 않지만, 간혹 뒤늦게 탁기가 드러나는 영현도 있어서 수습 기간을 둔다고 한다.
다행히 화인의 영은 대부분의 수습 차사와 마찬가지로 오염도에 관한 문제는 없었다. 그러니 ‘특별한 하자’는 없는 셈이었다.
그러나 화인은 자신의 정식 채용을 우려했다. 다른 하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차사 채용 기초 검사에서는 영기의 밀도 및 잠재된 영력 항목에서 ‘특급’이 나왔다. 유경의 예상대로였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수습 기간이 다 끝나도록 이 놈의 영력이 도무지 발현될 낌새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듣기로 영현에 따라서는 영영 발현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고.
때문에 화인은 남몰래 체념했다.
‘정식 채용은 물 건너갔네.’
그렇게 미발현 상태로 수습 기간 마지막 날이 되었다.
화인은 자꾸만 터져 나오는 한숨을 막을 수가 없었다.
염원.
무엇이든 이루어 준다는 그 염원.
화인은 다소 암울했던 지난 삶을 반복하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업을 쌓고 염원하기로 결심했다.
다음 생은 부디 평안하고 다복하길.
더불어 이미 환생했을지도 모를 엄마와 아빠도 그러하길.
그저 그뿐이었는데.
아무래도 제 주제에 너무 큰걸 바란 모양이다.
여태 발현도, 채용 결과도 소식이 없는 걸 보면 말이다.
‘정식 채용에서 떨어지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심판을 받으러 가는 건가?’
등용부 3과의 사무실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화인은 자꾸만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에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좋은 생각, 좋은 생각.’
그때, 업무 외에 울릴 일 없는 스마트폰의 알림음이 울렸다.
[염라국 인사과에서 알립니다.
염화인 영현, 귀하는 염라국 소속 정식 차사로 채용되었습니다.]
정식으로 채용됐다는 문자를 받은 것이다. 문자를 확인한 화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문자의 다음 문장이 화인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배정된 부서는 ‘잠행부 흑조’입니다.]
“잠행부? 아직 발현도 못했는데?”
염라국 최정예 차사만 선출된다는 그 잠행부다.
“어째서 내가.”
그래서였을까. 때마침 찾아온 등용부의 책임 차사 유경을 붙잡고 자신의 정식 채용에 대해 캐물었다.
“제가 정식으로 채용됐다는데, 이거 진짜겠죠?”
탁월한 안목을 가진 유경은 신입 차사를 발탁하는 데에 특출난 능력을 보였다. 그가 발탁한 차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그렇기에 그가 발탁한 차사라고 하면 좋은 의미로 선입견을 가지고 보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니 화인을 보는 차사들의 시선은 오죽했겠는가.
유경에게 발탁된 데다 특급이라는 검사 결과까지 나왔다. 이것만으로도 차사들의 관심이 주목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미발현’이라는 문제까지 더해졌으니, 유명세를 탈 수밖에.
“저 수습이 그 특급이야?”
“아직 미발현이래.”
화인이 지나가면 이런 속삭임이 꼬리처럼 따라붙었다.
그 탓에 유경도 계속 마음이 쓰였는지 이따금 찾아와 화인의 상태를 확인하곤 했다.
“문자를 받으셨나 보군요.”
화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경이 금테 안경을 밀어 올렸다.
“물론 진짭니다. 그런 일로 장난을 친다고 누가 재미있어하겠습니까.”
이승에는 보이스 피싱이 워낙 많아서 의심부터 들었다는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그보다 지금 화인에게 중요한 것은 배정 부서가 잠행부라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배정 부서가 잠행부던데요?”
유경이 화인을 지그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실 정식 채용까지는 이어지지 않을 뻔했습니다만, 어떤 수석님의 청탁으로 그리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수석님요?”
화인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집니다. 그럼, 이만.”
유경이 안경을 밀어 올리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
*
화인은 ‘어떤 수석’의 유력 후보로 둘을 꼽았다. 그중 하나가 독안이다. 화인을 저승으로 인도한 차사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내가 뭘 했다고.”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독안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자 그가 허리에 손을 척 올리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나저나 외근 일정이 없다고 들었네.”
“네, 오늘은 내근 예정입니다만…….”
수습으로 근무하긴 했지만 정식으로 채용된 첫날은 잡일이 많았다. 정식 차사용으로 차사패를 교체해야 했고, 근무복과 정복도 새로 배급받아야 했으며, 각종 신상 정보 등록도 마쳐야 했다. 게다가 오늘은 이 일만 마치면 퇴근하라는 지시까지 받은 상태였다.
그래서 화인은 먼저 정보 등록을 빠르게 끝내고, 총무부로 가 차사패를 받은 뒤, 이제 막 의복실로 가려던 참이었다.
“마침 잘 됐네.”
독안이 싱글벙글 웃었다.
“지원 요청이 들어왔는데, 외근 나갈 차사가 부족했거든.”
“하지만 저는 이제…….”
여러 부서를 떠도는 수습이 아니라 잠행부 소속이고, 지금은 의복실에 가 봐야 한다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독안이 벌써 화인의 직속 상사에게 전화를 건 탓이다. 잠행부 흑조의 조장이자 수석 차사인 태무헌에게 말이다. ‘어떤 수석’의 두 번째 후보이기도 했다.
“여어, 태 수석. 날세.”
- …….
“신입 좀 빌려 주게.”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긴, 지원 나갈 차사가 부족하네.”
-좋을 대로.
“고맙네.”
통화는 간결했다. 서로 이러쿵저러쿵 설명 따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도리어 친근해 보였다.
이렇게 첫 출근부터 타 부서로 지원을 나가게 된 화인은 독안의 뒤를 따라 회혼부 1과의 작은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에는 서도가 혼자 앉아 학습지를 풀고 있었다.
서도는 어린 남자아이였지만 어엿한 선임 차사였다. 정화가 장기인 그는 망자의 육신에 남은 기억을 읽는 능력 또한 출중했다. 때문에 망자를 인도하지 않을 때는 독안과 함께 회혼부의 작은 말썽들을 해결하고 다녔다.
“서도야.”
독안이 한층 부드러운 음성으로 아이를 불렀다.
학습지에 들어갈 듯 얼굴을 파묻고 있던 아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남은 건 나중에 하자꾸나.”
서도는 고개를 끄덕이고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
독안을 따라 이동한 곳은 도심의 한 허름한 원룸이었다. 원룸은 낡고 좁았지만 세간살이가 단출하여 정갈한 느낌이 들었다.
‘검소한 사람이었나 보군.’
화인은 망자의 육신에는 최대한 눈길을 주지 않고 집 안을 둘러보았다.
“수석님!”
그때, 한 차사가 반색하며 외쳤다. 망자를 인도하기 위해 먼저 원룸을 방문한 회혼부의 삼차사 중 하나인 주임 차사가 독안과 그 일행을 발견한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인가.”
독안이 묻자 다른 평차사가 서둘러 설명했다.
“삼혼(망자의 이름을 세 번 불러 육신에서 영을 꺼내는 의식)까지는 별 탈 없이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망자의 영이 이 자리에 붙박여 움직이질 않습니다.”
영현이 선 자리를 가리키며 울상을 지었다.
“어허, 망자 앞에서 그리 나약한 모습을 보여서야 쓰겠나.”
독안이 엄격하게 말했다.
“주의하겠습니다.”
평차사가 풀이 죽은 채 고개를 숙였다.
“이 망자는 내가 인도하겠네.”
독안이 손을 내밀자 다른 평차사가 기다렸다는 듯 적배지(망자의 생년월일과 이름이 적힌 붉은 천)를 넘겼다. 이어 삼차사는 독안과 그 일행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와 동시에 희미한 장막이 사라지고 선명한 장막이 드리워졌다. 독안의 장막이었다.
“맺힌 한이 있나 보군.”
독안이 평연히 말하며 영현과 마주 섰다.
“내 그대의 이야기를 들어줄 터이니 속시원히 말해 보시오.”
그러나 고개 숙인 영현은 한참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이대로 시간을 지체했다간 저승이 아니라 중음을 떠돌게 될 거요.”
중음(中陰), 저승에 못 간 고혼들이 떠도는 세계.
독안이 으름장을 놓아도 망자는 그저 천장에 매달린 제 육신 앞에 우두커니 서서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망자 최이령!”
독안이 힘주어 호명하자 망자 이령이 벼락같은 음성에 흠칫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화인도 덩달아 움찔 놀랐다.
“저승사자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 거라면 포기하시오.”
긴 적막 끝에 벼락처럼 내린 호명과 달리 독안은 한층 부드럽게 말을 꺼냈다.
그러자 망자 이령이 드디어 고개를 들고 독안과 눈을 맞추었다.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들어준다 하지 않았소.”
그 순간 망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입은 여전히 꾹 다문 채였다.
다시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이 찾아왔다.
“이거 어쩔 수 없구먼. 이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는데.”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탓에 독안이 작게 중얼거리며 뒷목을 쓸었다.
“서도야, 부탁하마.”
서도는 기다렸다는 듯 천장에 매달린 망자의 육신 곁으로 다가갔다. 이어 조심스럽게 뻗은 손으로 이령의 바지 자락을 붙잡고 살포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서도의 영체에서 희미한 빛이 발하기 시작했다.
수습 차사들은 49일 동안 여러 부서를 돌며 일을 배우고 영력을 훈련한 다음, ‘특별한 하자’가 없을 시 평차사로 정식 채용되었다.
특별한 하자란, 영(靈)의 오염도를 뜻했다.
악업을 저지른 인간은 영이 탁해지는데, 악업이 많을수록 탁기가 짙어졌다.
눈에 띄게 탁한 영현(英顯 죽은 자의 영혼)은 애초에 뽑지도 않지만, 간혹 뒤늦게 탁기가 드러나는 영현도 있어서 수습 기간을 둔다고 한다.
다행히 화인의 영은 대부분의 수습 차사와 마찬가지로 오염도에 관한 문제는 없었다. 그러니 ‘특별한 하자’는 없는 셈이었다.
그러나 화인은 자신의 정식 채용을 우려했다. 다른 하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차사 채용 기초 검사에서는 영기의 밀도 및 잠재된 영력 항목에서 ‘특급’이 나왔다. 유경의 예상대로였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수습 기간이 다 끝나도록 이 놈의 영력이 도무지 발현될 낌새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듣기로 영현에 따라서는 영영 발현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고.
때문에 화인은 남몰래 체념했다.
‘정식 채용은 물 건너갔네.’
그렇게 미발현 상태로 수습 기간 마지막 날이 되었다.
화인은 자꾸만 터져 나오는 한숨을 막을 수가 없었다.
염원.
무엇이든 이루어 준다는 그 염원.
화인은 다소 암울했던 지난 삶을 반복하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업을 쌓고 염원하기로 결심했다.
다음 생은 부디 평안하고 다복하길.
더불어 이미 환생했을지도 모를 엄마와 아빠도 그러하길.
그저 그뿐이었는데.
아무래도 제 주제에 너무 큰 걸 바란 모양이다.
여태 발현도, 채용 결과도 소식이 없는 걸 보면 말이다.
‘정식 채용에서 떨어지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심판을 받으러 가는 건가?’
등용부 3과의 사무실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화인은 자꾸만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에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좋은 생각, 좋은 생각.’
그때, 업무 외에 울릴 일 없는 스마트폰의 알림음이 울렸다.
[염라국 인사과에서 알립니다.
염화인 영현, 귀하는 염라국 소속 정식 차사로 채용되었습니다.]
정식으로 채용됐다는 문자를 받은 것이다. 문자를 확인한 화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문자의 다음 문장이 화인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배정된 부서는 ‘잠행부 흑조’입니다.]
“잠행부? 아직 발현도 못했는데?”
염라국 최정예 차사만 선출된다는 그 잠행부다.
“어째서 내가.”
그래서였을까. 때마침 찾아온 등용부의 책임 차사 유경을 붙잡고 자신의 정식 채용에 대해 캐물었다.
“제가 정식으로 채용됐다는데, 이거 진짜겠죠?”
탁월한 안목을 가진 유경은 신입 차사를 발탁하는 데에 특출난 능력을 보였다. 그가 발탁한 차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그렇기에 그가 발탁한 차사라고 하면 좋은 의미로 선입견을 가지고 보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니 화인을 보는 차사들의 시선은 오죽했겠는가.
유경에게 발탁된 데다 특급이라는 검사 결과까지 나왔다. 이것만으로도 차사들의 관심이 주목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미발현’이라는 문제까지 더해졌으니, 유명세를 탈 수밖에.
“저 수습이 그 특급이야?”
“아직 미발현이래.”
화인이 지나가면 이런 속삭임이 꼬리처럼 따라붙었다.
그 탓에 유경도 계속 마음이 쓰였는지 이따금 찾아와 화인의 상태를 확인하곤 했다.
“문자를 받으셨나 보군요.”
화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경이 금테 안경을 밀어 올렸다.
“물론 진짭니다. 그런 일로 장난을 친다고 누가 재미있어하겠습니까.”
이승에는 보이스 피싱이 워낙 많아서 의심부터 들었다는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그보다 지금 화인에게 중요한 것은 배정 부서가 잠행부라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배정 부서가 잠행부던데요?”
유경이 화인을 지그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실 정식 채용까지는 이어지지 않을 뻔했습니다만, 어떤 수석님의 청탁으로 그리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수석님요?”
화인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집니다. 그럼, 이만.”
유경이 안경을 밀어 올리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
*
화인은 ‘어떤 수석’의 유력 후보로 둘을 꼽았다. 그중 하나가 독안이다. 화인을 저승으로 인도한 차사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내가 뭘 했다고.”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독안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자 그가 허리에 손을 척 올리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나저나 외근 일정이 없다고 들었네.”
“네, 오늘은 내근 예정입니다만…….”
수습으로 근무하긴 했지만 정식으로 채용된 첫날은 잡일이 많았다. 정식 차사용으로 차사패를 교체해야 했고, 근무복과 정복도 새로 배급받아야 했으며, 각종 신상 정보 등록도 마쳐야 했다. 게다가 오늘은 이 일만 마치면 퇴근하라는 지시까지 받은 상태였다.
그래서 화인은 먼저 정보 등록을 빠르게 끝내고, 총무부로 가 차사패를 받은 뒤, 이제 막 의복실로 가려던 참이었다.
“마침 잘 됐네.”
독안이 싱글벙글 웃었다.
“지원 요청이 들어왔는데, 외근 나갈 차사가 부족했거든.”
“하지만 저는 이제…….”
여러 부서를 떠도는 수습이 아니라 잠행부 소속이고, 지금은 의복실에 가 봐야 한다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독안이 벌써 화인의 직속 상사에게 전화를 건 탓이다. 잠행부 흑조의 조장이자 수석 차사인 태무헌에게 말이다. ‘어떤 수석’의 두 번째 후보이기도 했다.
“여어, 태 수석. 날세.”
- …….
“신입 좀 빌려 주게.”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긴, 지원 나갈 차사가 부족하네.”
-좋을 대로.
“고맙네.”
통화는 간결했다. 서로 이러쿵저러쿵 설명 따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도리어 친근해 보였다.
이렇게 첫 출근부터 타 부서로 지원을 나가게 된 화인은 독안의 뒤를 따라 회혼부 1과의 작은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에는 서도가 혼자 앉아 학습지를 풀고 있었다.
서도는 어린 남자아이였지만 어엿한 선임 차사였다. 정화가 장기인 그는 망자의 육신에 남은 기억을 읽는 능력 또한 출중했다. 때문에 망자를 인도하지 않을 때는 독안과 함께 회혼부의 작은 말썽들을 해결하고 다녔다.
“서도야.”
독안이 한층 부드러운 음성으로 아이를 불렀다.
학습지에 들어갈 듯 얼굴을 파묻고 있던 아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남은 건 나중에 하자꾸나.”
서도는 고개를 끄덕이고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
독안을 따라 이동한 곳은 도심의 한 허름한 원룸이었다. 원룸은 낡고 좁았지만 세간살이가 단출하여 정갈한 느낌이 들었다.
‘검소한 사람이었나 보군.’
화인은 망자의 육신에는 최대한 눈길을 주지 않고 집 안을 둘러보았다.
“수석님!”
그때, 한 차사가 반색하며 외쳤다. 망자를 인도하기 위해 먼저 원룸을 방문한 회혼부의 삼차사 중 하나인 주임 차사가 독안과 그 일행을 발견한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인가.”
독안이 묻자 다른 평차사가 서둘러 설명했다.
“삼혼(망자의 이름을 세 번 불러 육신에서 영을 꺼내는 의식)까지는 별 탈 없이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망자의 영이 이 자리에 붙박여 움직이질 않습니다.”
영현이 선 자리를 가리키며 울상을 지었다.
“어허, 망자 앞에서 그리 나약한 모습을 보여서야 쓰겠나.”
독안이 엄격하게 말했다.
“주의하겠습니다.”
평차사가 풀이 죽은 채 고개를 숙였다.
“이 망자는 내가 인도하겠네.”
독안이 손을 내밀자 다른 평차사가 기다렸다는 듯 적배지(망자의 생년월일과 이름이 적힌 붉은 천)를 넘겼다. 이어 삼차사는 독안과 그 일행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와 동시에 희미한 장막이 사라지고 선명한 장막이 드리워졌다. 독안의 장막이었다.
“맺힌 한이 있나 보군.”
독안이 평연히 말하며 영현과 마주 섰다.
“내 그대의 이야기를 들어줄 터이니 속시원히 말해 보시오.”
그러나 고개 숙인 영현은 한참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이대로 시간을 지체했다간 저승이 아니라 중음을 떠돌게 될 거요.”
중음(中陰), 저승에 못 간 고혼들이 떠도는 세계.
독안이 으름장을 놓아도 망자는 그저 천장에 매달린 제 육신 앞에 우두커니 서서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망자 최이령!”
독안이 힘주어 호명하자 망자 이령이 벼락같은 음성에 흠칫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화인도 덩달아 움찔 놀랐다.
“저승사자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 거라면 포기하시오.”
긴 적막 끝에 벼락처럼 내린 호명과 달리 독안은 한층 부드럽게 말을 꺼냈다.
그러자 망자 이령이 드디어 고개를 들고 독안과 눈을 맞추었다.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들어준다 하지 않았소.”
그 순간 망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입은 여전히 꾹 다문 채였다.
다시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이 찾아왔다.
“이거 어쩔 수 없구먼. 이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는데.”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탓에 독안이 작게 중얼거리며 뒷목을 쓸었다.
“서도야, 부탁하마.”
서도는 기다렸다는 듯 천장에 매달린 망자의 육신 곁으로 다가갔다. 이어 조심스럽게 뻗은 손으로 이령의 바지 자락을 붙잡고 살포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서도의 영체에서 희미한 빛이 발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