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사 염화인 08

by 아무



요란한 벨소리에 놀란 경애가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00구 경찰서입니다. 최이령 씨 어머니 전화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만…….”

-이런 말씀 전하게 되어 죄송합니다만, 따님이신 최이령 씨가 자택에서 숨진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

전화를 받던 경애의 손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손에서 미끄러진 스마트폰은 그대로 바닥에 낙하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어머니?

설마설마하며 부정하던 현실이 이제야 좀 실감이 되는 모양이었다. 경애는 이령에게 붙잡힌 시선을 떨치지 못하고 사지를 사정없이 떨었다.

“무, 무슨 전화길래 그래?”

세령이 마침 제 발 밑에 떨어진 스마트폰을 주워 다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괜찮으십니까?

“아뇨, 누구세요?”

-00구 경찰서입니다.

“무슨 일로…….”

세령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예정된 불안이 엄습해 온 탓이다.

-혹시 최이령 씨 동생이십니까?

“네, 맞아요.”

-최이령 씨가 자택에서 숨진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이 한 번 더 이령의 소식을 전하자 세령의 손도 스르륵 아래로 떨어졌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세령은 더없이 크게 뜨인 눈으로 삐그덕거리는 목을 겨우 돌려 이령을 바라봤다. 세령의 사지 역시 사정없이 떨렸다.

멸시로 가득하던 두 여자의 눈이 이제는 공포로 가득 찼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둘을 향해 희미하게 미소 지은 이령의 영 뒤로 스산한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윽고 집안을 가득 채운 스산한 안개가 피부 속을 파고들었다.

서늘함이 뼛속까지 파고들어 온몸에 소름이 돋고 머리가 주뼛 섰다. 등골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주, 죽었으면 곱게 저승에나 갈 것이지,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찾아와서 행패야!!”

겁에 질린 경애가 눈을 질끈 감고 패악을 부렸다.

“어, 엄마…….”

세령은 달려가 제 엄마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령의 오른쪽에는 입가에 비죽 미소를 머금은 처녀 귀신이, 왼쪽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무표정한 동자 귀신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하여 뒤에는 험상궂게 생긴 팔 척 귀신까지 팔짱을 낀 채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집안을 가득 채운 서늘한 안개 사이로 잠시 잊었던 귀신들이 여 보란 듯이 드러낸 형체에 세령의 얼굴은 공포로 귀신보다 더욱 희게 질렸다.

눈앞에 펼쳐진 비현실적인 광경에 온몸은 뻣뻣하게 굳어 버렸고 입에서는 쌕쌕거리는 거친 숨소리만 흘러나왔다.

악을 쓰며 소리치던 경애가 기묘한 적막에 눈을 떴다.

경애는 잠시간 멍하니 정면을 응시했다. 그리고 얼마 후 경련하듯 파드득 몸을 떨었다.

뒤늦게 세 귀신을 인식한 것이다.

제 딸아이를 비호하듯 서 있는 세 귀신을 본 경애의 눈동자에는 그들에게 해코지라도 당할까 두려운 마음이 그대로 내비쳤다. 지은 죄가 여간 많은 게 아니니 그럴 만도 했다.

두려움이 너무 커진 탓일까. 경애의 입에서 숨넘어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끄흑, 끄윽, 끅.”

경애는 무너지는 몸을 식탁에 기대어 버티려고 애썼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경애는 얼마 못 가 입에 거품을 물고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뒤이어 세령도 정신을 잃었다.

*

“어라, 좀 심했나?”

화인이 쓰러진 두 여자를 보고 제 뺨을 살살 긁었다. 그러자 서도가 흥, 하고 콧김을 내뿜었다.

화인은 이를 제 멋대로 ‘자업자득이야’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어때요? 속은 좀 시원해졌어요?”

화인이 이령에게 물었다.

“네, 시원해졌어요.”

이령의 목소리가 산뜻하다.

“거, 속이 시원해졌다니 다행이오.”

이령의 복수에 잠시나마 동참한 스스로가 멋쩍은 탓인지, 아니면 그녀가 공갈 저주에서 멈춘 것을 안도한 탓인지, 독안은 관자놀이를 긁적이며 작게 미소 지었다.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령이 후련한 얼굴로 삼차사를 둘러보며 인사했다.

“뭐, 규율 위반이지만 그리 무리한 부탁은 아니었소. 또 이쪽에서 먼저 제안하지 않았소. 그러니 그 점은 너무 심려치 마시오.”

독안이 이령에게 답하며 화인을 흘긋 보았다.

“으흠.”

화인이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부렸다.

어느새 독안은 이령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녀의 한쪽 손목에 붉은 오랏줄을 묶었다.

“자! 이제, 떠납시다.”

독안이 호탕하게 웃으며 이령과 앞서 걸어 나갔다.

“이승에 미련일랑 버리고서.”

이령은 한쪽 손목에 붉은 오랏줄을 묶고 저승으로 향하면서도 이 집에 올 때보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그 모습을 보자 조금 전 화인의 마음에 얹힌 돌이 사르르 녹아 없어졌다.

그리고 제 방식대로 복수를 하고 미련 없이 이승을 떠나는 이령의 태도가 화인에게 묘한 고양감을 안겨 주었다.

스스로 이령의 해원에 일조했다는 후한 자체 평가를 내린 탓인지도 모른다.

비로소 자신의 쓸모를 발견한 듯한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화인은 독안과 앞서 걷는 이령의 홀가분한 뒷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서도의 손을 꽉 잡았다.

어쩐지 제 일처럼 기분이 좋았다.

“아파.”

서도가 작게 웅얼거렸다.

아차. 손에 힘이 너무 들어갔나 보다.

“미안.”

화인이 허리를 숙이고 눈을 맞추며 사과했다. 그리고 속삭이듯 물었다.

“그런데 서도는 망자의 육신을 볼 때 힘들지 않아?”

평차사인 화인이 선임 차사 서도를 이름으로 부르는 까닭은 간단했다.

수습 시절 ‘정 선임’이라고 불렀다가 퇴짜를 맞았기 때문이다.

“그냥 서도라고 불러.”

독안을 따라 뒷짐을 지고 당당하게 말하면서도 하얀 볼을 붉히던 그 깜찍한 모습이 눈에 선했다.

“괜찮아. 차사패가 있으니까.”

서도는 의외로 씩씩하게 대답했다.

“차사패?”

되묻는 말에 도리어 의아하다는 듯 서도가 시선을 들어 화인을 보았다.

“차사패로 가림막을 만들면 안 보이잖아.”

“그래?”

서도가 고개를 갸웃했다.

“몰랐어?”

“응, 몰랐어.”

정식 차사패를 받자마자 현장에 출동해 버려서 그런 걸 알아낼 시간이 없었습니다만.

화인은 저도 모르게 비죽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느끼고 억지로 끌어내렸다.

“나는 이제 막 평차사가 됐잖아.”

“응.”

“그러니까 모르는 게 많아.”

서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그렇단다.”

화인도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거 어떻게 하는지 알려줄 수 있어?”

“응.”

“어떻게 했어?”

“음, 영기랑 차사패랑 영동(?)하면 된다고 했어.”

“영동?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

“독안이 시키는 대로 하니까 됐어.”

“아아, 독안이 시키는 대로…….”

‘이런, 역시 천재는 다른 것인가.’

화인이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독안의 뒤통수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제 이름이 듣고 고개를 돌린 독안과 눈이 딱 마주쳤다.

“그 차사패랑 연동하는 거 몰랐소?”

독안이 뒷머리를 긁으며 멋쩍게 웃었다.

“진작 물어보지 그랬소.”

아니, 임시 차사패랑 정식 차사패가 어떻게 다르고 무슨 기능이 있는지 모르는 데 어떻게 물어보란 말이죠?

화인은 불평을 토로하는 대신 입을 앙 다물었다.

이승이나 저승이나 물어보지 않으면 가르쳐 주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아! 그게 당연한 건가?

아니, 그전에 차사패를 받자마자 현장에 끌고 온 장본인이 저런 말을 하다니.

화인은 차가운 눈초리로 독안을 올려다보았다.

“허허허허.”

독안이 호탕하게 웃으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

그때, 불현듯 화인의 머릿속을 스친 물음.

“서도는 정화할 때도 상대의 감정이 느껴져?”

화인이 정화할 때는 서도가 품었던 이령의 감정이 전해졌다. 만약 정화할 때마다 감정이 전해진다면 서도는 너무 많은 감정에 노출된다. 그 점이 걱정되었다.

“정화할 때?”

화인이 서도와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서도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정화할 때는 기분이 안 느껴져.”

“아, 그렇구나.”

화인은 일단 안심했다.

서도의 주 업무인 정화는 감정이 전염되지 않고, 기억을 읽을 때만 전염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타인의 감정에 노출될 일이 그만큼 적다는 뜻이다. 독안이 서도의 기억 읽기 능력을 썩 달가워하지 않았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와 별개로 이제 화인에게는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서도와 어떤 차이점이 있기에 제가 정화했을 때는 감정이 전염되었을까.

어라, 그러고 보니 서도의 감정은 전혀 넘어오지 않았잖아?

화인의 시선이 서도를 향해 내려갔다.

시선을 느꼈는지 서도가 고개를 들어 화인을 보았다.

화인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작게 가로저었다.

서도에게 직접 물어도 될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은 탓이다.

‘시간도 많은데 천천히 알아가지 뭐.’

화인이 서도와 맞잡은 손을 앞뒤로 살살 흔들었다.

그것이 서도의 마음에 든 모양이다. 서도의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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