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사 염화인 09

by 아무



“흠.”

화인의 직속 상사이자 수석 차사인 태무헌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목을 울렸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을까.

의도치 않게 상급자 둘 앞에서 근무복 품평회를 열게 된 화인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왜 아직 그 꼴이지?”

출근하자마자 무헌이 화인의 복장을 지적했다.

“어제 회혼부로 지원을 나가는 바람에 근무복을 아직 배급받지 못했습니다.”

네가 승낙하고도 까먹었냐, 하는 속마음이 들키지 않도록 정중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혹시 지금 의복실에 좀 다녀와도 될까요?”

화인이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했다. 그러자 같은 조의 다른 상급자인 책임 차사 선율이 화사하게 웃으며 옆으로 다가와 섰다.

“마침 잘 됐네요. 저도 옷을 수선해야 하거든요. 같이 가요.”

하얀 정장 위에 하얀 도포를 걸친 선율이 찢어진 자신의 하얀 상의를 펼쳐 보였다.

“그래? 나도 같이 가지.”

검은 정장 위에 검은 도포를 걸친 무헌도 의복실에 볼 일이 있는지 지체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국 잠행부 흑조가 의복실에 총출동했다는 이야기다.

*

본청 지하 2층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화인의 입에서 감탄이 절로 터져 나왔다.

유럽의 살롱을 연상케 하는 가구와 실내 장식으로 꾸며진 의복실은 마치 엘리베이터 이편과는 다른 세상 같았다.

“유울채액-!”

방문자의 기척에 저 깊숙한 곳에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한 차사가 달려 나왔다. 암홍색 머리카락을 양갈래로 묶고 담자색 양장 정복을 입은 차사였다.

“이 누추한 곳까지 웬 일로 행차하셨나요?”

의복실의 책임 차사 구미호가 눈을 반짝이며 선율을 반겼다.

“드디어 수석님도 새로운 근무복이 필요해지신 건가요?”

이어 무헌을 향한 눈에도 이채가 번뜩였다.

“응? 처음 보는 얼굴도 있네?”

두 상급자 뒤에 선 화인을 발견하고 미호가 고개를 갸웃하며 미소 지었다.

“혹시…….”

두 눈이 초승달처럼 곱게 휘었다.

“어제 나를 바람 맞힌 신입?”

“헉, 죄송합니다.”

화인이 황급히 허리를 굽히고 사과했다.

“어제 막 정식으로 차사가 된 염화인이라고 합니다. 어제는 갑자기 지원을 나가는 바람에…….”

“아-아, 그런 사사로운 일은 신경 쓰지 말아요.”

미호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이어 두 상급자를 헤치고 기세 좋게 화인을 끌어당기더니 제자리에서 빙글 한 바퀴 돌려 보았다.

“키는 크지 않지만 비율이 좋네요. 근무복을 먼저 고르는 게 좋겠죠? 언제 출동할지 모르니.”

“네, 그러는 게 좋겠어요.”

선율이 대답했다.

“아! 그리고 이거 수선 좀 부탁해요.”

“물론이죠! 율책의 옷이라면 언제든지!”

미호가 선율이 내민 옷을 받아 들고 기분 좋게 짝짝, 하고 손뼉을 쳤다.

그러자 미호의 보조인 채 주임이 긴 옷걸이를 끌고 나왔다.

옷걸이에 걸린 옷이 적어도 수십 벌은 되어 보였다.

“이걸 다……?”

“걱정 말아요.”

미호가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자자, 후보 1번입니다.”

미호가 딱, 하고 손가락을 튕기자 화인이 입고 있던 옷이 저절로 옷걸이에 걸려 있던 옷과 바뀌었다.

화인은 새빨간 치마저고리에 새하얀 장삼, 어깨와 허리에는 홍대를 둘렀고, 머리에는 새하얀 고깔까지 썼다.

이 의복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무복이었다.

그나마 전단후장형 치마라 활동성이 극악은 아니었다만.

‘이걸 입고 고혼들을 잡으러 다니라고?’

이제 막 수습 딱지를 뗀 화인이지만 각 부서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수습 기간에 부서를 돌아다니며 교육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염라국의 오분 대기조이자 최정예 특수 부대라 할 수 있는 잠행부가 이런 옷을 입고 출동한다?

아군에게 방해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적에게는 무조건 첫 번째 표적이 될 것이다.

“호오, 좋은걸.”

미호의 호의적인 반응에 화인이 무헌과 선율에게 눈빛을 보냈다.

“무복이 참 잘 어울리네요.”

무헌은 무시했고, 선율은 환하게 웃으며 미호에게 장단을 맞췄다. 이에 미호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옷은 말이죠, 영기를 주입하면 선행된 주술을 무효화시키는 술법이 내재된 무복이에요. 상성이 맞으면 그 어떤 주술도 무효화시킬 수 있다고요.”

“하지만 아무리 기능이 뛰어나도 이렇게 화려하면 너무 눈에 띄겠어요. 치마가 치렁거려서 움직이기도 불편할 것 같고.”

누구보다 화려한 얼굴이 눈에 띄는 선율이 햇살처럼 웃으며 말했다. 그 미소에 홀랑 넘어간 미호가 선율의 의견에 동의했다.

“역시, 그렇죠?”

아마 그녀는 선율이 무슨 말을 했어도 동의했을 것이다.

“그럼 다음 옷으로 갈아입어 볼까요.”

‘예, 제발요.’

화인이 속으로 답했다.

딱. 미호가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아무래도 첫 번째 옷은 미호가 슬쩍 떠보려고 넣은 후보였던 모양이다. 이후로는 확실히 결이 다른 디자인의 옷들이었다.

“먼저 전통미를 잘 살린 개량 한복이에요. 하의는 신축성이 없는 대신 바지의 통을 넓혀 활동성을 높였고, 상의는 옷고름을 얇고 짧게 만들어 편의성을 높였죠. 무엇보다 내구성이 강한 천이라 영체의 손상을 막아준답니다.”

화인은 고개를 갸웃하며 펑퍼짐한 바지를 잡고 양옆으로 주욱 잡아당겼다.

‘이 정도면 치마 아닌가.’

“자, 다음.”

딱.

후드가 달린 회녹색 로브에 같은 색의 블라우스와 카고 바지였다.

“이건 몸에 딱 맞는 만큼 신축성이 뛰어나고 주머니가 많아 수납이 용이하죠. 그리고 이 로브로 말할 것 같으면 용암처럼 뜨거운 열도 포근하게 막아주는 기능성 원단으로 만들어졌답니다.”

미호가 로브를 활짝 펼치고 우쭐대며 설명했다.

“자, 다음.”

딱.

미색 블라우스 위에 적갈색 가죽 코르셋과 적갈색 가죽 바지다. 충격을 완화시켜 준다고 한다.

“이런 건 어때요?”

딱.

바지와 셔츠, 하네스가 검정 일색인 무헌과 비슷한 복장이었다. 공격력을 증강시켜준다고 한다.

딱.

이번에는 선율과 같은 온통 백색인 복장으로 바뀌었다. 상처 치유 능력을 강화해 준다고.

딱.

심청색 철릭. 장막 보강.

딱.

먹색 트레이닝복. 민첩성 증가.

딱, 딱, 딱.

미호가 신나게 손을 튕길 때마다 옷이 저절로 바뀌니 화인은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데도 몹시 지쳤다.

몰래 시간을 확인하자 고작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체감상 두 시간은 훨씬 지난 것 같았는데, 설마 저 옷걸이에 걸린 옷을 다 입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눈앞이 핑 돌았다.

“이런.”

화인의 복장이 개량된 하얀 저고리와 통이 넉넉한 검은색 카고 바지, 목이 긴 가죽 워커로 바뀌었을 때였다.

화인의 옷이 십수 번 바뀌는 동안 흠, 하고 침음만 흘리던 무헌이 입을 열었다.

“지원 요청이다.”

미호가 무헌을 흘끗 본 뒤 체념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아, 네, 네, 항상 그렇죠, 뭐.”

무헌이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선율도 곧장 그의 뒤를 따랐다. 화인도 두 상급자를 따라 의복실에서 빠르게 빠져나왔다.

화인까지 의복실에서 벗어나자 선율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무헌에게 물었다.

“또 뻥이죠?”

“아니, 이번엔 진짜다.”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때마침 차사패가 진동했다.

***

어두운 방.

화인의 눈에 들어온 방 안의 풍경은 다소 어지러웠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방 안이 짙은 악기(惡氣)로 가득했다. 화인의 눈에도 선명히 보일 만큼.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설명부터 듣지.”

무헌이 가볍게 손을 뻗어 푸른 영력을 흩뿌리자 차사를 제외한 나머지가 그대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때, 독안 뒤에 바짝 붙어 있는 서도를 발견했다. 잔뜩 주눅 든 서도의 모습에 선율이 눈높이를 맞추며 물었다.

“서도야,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의기소침한 서도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 이거 참.”

독안이 난처한 표정으로 서도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떨림은 멎었지만 아직 얼굴에는 겁이 남아 있다.

그래도 지원군이 도착한 덕분일까. 서도는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르고 의젓하게 두 손을 내밀었다.

*

고급 주택이 모여 있는 부촌 안에서도 눈에 띄게 큰 집, 그곳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대기업 ‘만호’의 회장 최만식의 집이었다.

독안과 서도가 인도할 망자의 집이기도 했다.

-뉴스에서나 보던 집을 실제로 와 보다니.

화인은 사진으로만 보던 대저택의 담벼락 아래에 서서 감탄했다.

조금 일찍 도착한 독안과 서도는 그 집의 너른 마당 한편에 서서 적배지의 때를 기다렸다.

때를 기다리는 동안, 독안은 가만히 집안의 분위기를 살폈다.

-기묘하군.

무헌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하자 선율이 살짝 고개를 까딱여 동의를 표했다.

집안이 너무 고요했다. 생활 소음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대저택이라 불릴 정도로 규모가 큰 집이니 관리인도 여럿 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치 빈집처럼 인기척이 없었다.

“이거 영, 감이 좋지 않구먼…….”

독안이 중얼거리며 건물을 빤히 보았다.

-투시 중인 모양이에요.

선율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때, 3층 구석에서 음산한 기운이 스멀스멀 퍼져 나왔다.

-가정집에서 이런 악한 기운이라니.

무헌이 턱을 쓸며 말했다.

“오늘도 쉽게 데려가긴 틀린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떠냐.”

독안이 침음을 흘리자 서도도 덩달아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때를 기다리지 말고 서둘러야겠구나.”

독안은 곧장 서도와 손을 잡고 방안으로 이동했다.

그 순간이었다.

“사자님들 오셨습니까?”

지금껏 고요하던 방 안에 기다렸다는 둣 무당의 목소리가 울렸다.

“흠.”

화인의 직속 상사이자 수석 차사인 태무헌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목을 울렸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을까.

의도치 않게 상급자 둘 앞에서 근무복 품평회를 열게 된 화인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왜 아직 그 꼴이지?”

출근하자마자 무헌이 화인의 복장을 지적했다.

“어제 회혼부로 지원을 나가는 바람에 근무복을 아직 배급받지 못했습니다.”

네가 승낙하고도 까먹었냐, 하는 속마음이 들키지 않도록 정중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혹시 지금 의복실에 좀 다녀와도 될까요?”

화인이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했다. 그러자 같은 조의 다른 상급자인 책임 차사 선율이 화사하게 웃으며 옆으로 다가와 섰다.

“마침 잘 됐네요. 저도 옷을 수선해야 하거든요. 같이 가요.”

하얀 정장 위에 하얀 도포를 걸친 선율이 찢어진 자신의 하얀 상의를 펼쳐 보였다.

“그래? 나도 같이 가지.”

검은 정장 위에 검은 도포를 걸친 무헌도 의복실에 볼 일이 있는지 지체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국 잠행부 흑조가 의복실에 총출동했다는 이야기다.

*

본청 지하 2층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화인의 입에서 감탄이 절로 터져 나왔다.

유럽의 살롱을 연상케 하는 가구와 실내 장식으로 꾸며진 의복실은 마치 엘리베이터 이편과는 다른 세상 같았다.

“유울채액-!”

방문자의 기척에 저 깊숙한 곳에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한 차사가 달려 나왔다. 암홍색 머리카락을 양갈래로 묶고 담자색 양장 정복을 입은 차사였다.

“이 누추한 곳까지 웬 일로 행차하셨나요?”

의복실의 책임 차사 구미호가 눈을 반짝이며 선율을 반겼다.

“드디어 수석님도 새로운 근무복이 필요해지신 건가요?”

이어 무헌을 향한 눈에도 이채가 번뜩였다.

“응? 처음 보는 얼굴도 있네?”

두 상급자 뒤에 선 화인을 발견하고 미호가 고개를 갸웃하며 미소 지었다.

“혹시…….”

두 눈이 초승달처럼 곱게 휘었다.

“어제 나를 바람 맞힌 신입?”

“헉, 죄송합니다.”

화인이 황급히 허리를 굽히고 사과했다.

“어제 막 정식으로 차사가 된 염화인이라고 합니다. 어제는 갑자기 지원을 나가는 바람에…….”

“아-아, 그런 사사로운 일은 신경 쓰지 말아요.”

미호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이어 두 상급자를 헤치고 기세 좋게 화인을 끌어당기더니 제자리에서 빙글 한 바퀴 돌려 보았다.

“키는 크지 않지만 비율이 좋네요. 근무복을 먼저 고르는 게 좋겠죠? 언제 출동할지 모르니.”

“네, 그러는 게 좋겠어요.”

선율이 대답했다.

“아! 그리고 이거 수선 좀 부탁해요.”

“물론이죠! 율책의 옷이라면 언제든지!”

미호가 선율이 내민 옷을 받아 들고 기분 좋게 짝짝, 하고 손뼉을 쳤다.

그러자 미호의 보조인 채 주임이 긴 옷걸이를 끌고 나왔다.

옷걸이에 걸린 옷이 적어도 수십 벌은 되어 보였다.

“이걸 다……?”

“걱정 말아요.”

미호가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자자, 후보 1번입니다.”

미호가 딱, 하고 손가락을 튕기자 화인이 입고 있던 옷이 저절로 옷걸이에 걸려 있던 옷과 바뀌었다.

화인은 새빨간 치마저고리에 새하얀 장삼, 어깨와 허리에는 홍대를 둘렀고, 머리에는 새하얀 고깔까지 썼다.

이 의복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무복이었다.

그나마 전단후장형 치마라 활동성이 극악은 아니었다만.

‘이걸 입고 고혼들을 잡으러 다니라고?’

이제 막 수습 딱지를 뗀 화인이지만 각 부서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수습 기간에 부서를 돌아다니며 교육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염라국의 오분 대기조이자 최정예 특수 부대라 할 수 있는 잠행부가 이런 옷을 입고 출동한다?

아군에게 방해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적에게는 무조건 첫 번째 표적이 될 것이다.

“호오, 좋은걸.”

미호의 호의적인 반응에 화인이 무헌과 선율에게 눈빛을 보냈다.

“무복이 참 잘 어울리네요.”

무헌은 무시했고, 선율은 환하게 웃으며 미호에게 장단을 맞췄다. 이에 미호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옷은 말이죠, 영기를 주입하면 선행된 주술을 무효화시키는 술법이 내재된 무복이에요. 상성이 맞으면 그 어떤 주술도 무효화시킬 수 있다고요.”

“하지만 아무리 기능이 뛰어나도 이렇게 화려하면 너무 눈에 띄겠어요. 치마가 치렁거려서 움직이기도 불편할 것 같고.”

누구보다 화려한 얼굴이 눈에 띄는 선율이 햇살처럼 웃으며 말했다. 그 미소에 홀랑 넘어간 미호가 선율의 의견에 동의했다.

“역시, 그렇죠?”

아마 그녀는 선율이 무슨 말을 했어도 동의했을 것이다.

“그럼 다음 옷으로 갈아입어 볼까요.”

‘예, 제발요.’

화인이 속으로 답했다.

딱. 미호가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아무래도 첫 번째 옷은 미호가 슬쩍 떠보려고 넣은 후보였던 모양이다. 이후로는 확실히 결이 다른 디자인의 옷들이었다.

“먼저 전통미를 잘 살린 개량 한복이에요. 하의는 신축성이 없는 대신 바지의 통을 넓혀 활동성을 높였고, 상의는 옷고름을 얇고 짧게 만들어 편의성을 높였죠. 무엇보다 내구성이 강한 천이라 영체의 손상을 막아준답니다.”

화인은 고개를 갸웃하며 펑퍼짐한 바지를 잡고 양옆으로 주욱 잡아당겼다.

‘이 정도면 치마 아닌가.’

“자, 다음.”

딱.

후드가 달린 회녹색 로브에 같은 색의 블라우스와 카고 바지였다.

“이건 몸에 딱 맞는 만큼 신축성이 뛰어나고 주머니가 많아 수납이 용이하죠. 그리고 이 로브로 말할 것 같으면 용암처럼 뜨거운 열도 포근하게 막아주는 기능성 원단으로 만들어졌답니다.”

미호가 로브를 활짝 펼치고 우쭐대며 설명했다.

“자, 다음.”

딱.

미색 블라우스 위에 적갈색 가죽 코르셋과 적갈색 가죽 바지다. 충격을 완화시켜 준다고 한다.

“이런 건 어때요?”

딱.

바지와 셔츠, 하네스가 검정 일색인 무헌과 비슷한 복장이었다. 공격력을 증강시켜준다고 한다.

딱.

이번에는 선율과 같은 온통 백색인 복장으로 바뀌었다. 상처 치유 능력을 강화해 준다고.

딱.

심청색 철릭. 장막 보강.

딱.

먹색 트레이닝복. 민첩성 증가.

딱, 딱, 딱.

미호가 신나게 손을 튕길 때마다 옷이 저절로 바뀌니 화인은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데도 몹시 지쳤다.

몰래 시간을 확인하자 고작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체감상 두 시간은 훨씬 지난 것 같았는데, 설마 저 옷걸이에 걸린 옷을 다 입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눈앞이 핑 돌았다.

“이런.”

화인의 복장이 개량된 하얀 저고리와 통이 넉넉한 검은색 카고 바지, 목이 긴 가죽 워커로 바뀌었을 때였다.

화인의 옷이 십수 번 바뀌는 동안 흠, 하고 침음만 흘리던 무헌이 입을 열었다.

“지원 요청이다.”

미호가 무헌을 흘끗 본 뒤 체념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아, 네, 네, 항상 그렇죠, 뭐.”

무헌이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선율도 곧장 그의 뒤를 따랐다. 화인도 두 상급자를 따라 의복실에서 빠르게 빠져나왔다.

화인까지 의복실에서 벗어나자 선율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무헌에게 물었다.

“또 뻥이죠?”

“아니, 이번엔 진짜다.”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때마침 차사패가 진동했다.

***

어두운 방.

화인의 눈에 들어온 방 안의 풍경은 다소 어지러웠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방 안이 짙은 악기(惡氣)로 가득했다. 화인의 눈에도 선명히 보일 만큼.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설명부터 듣지.”

무헌이 가볍게 손을 뻗어 푸른 영력을 흩뿌리자 차사를 제외한 나머지가 그대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때, 독안 뒤에 바짝 붙어 있는 서도를 발견했다. 잔뜩 주눅 든 서도의 모습에 선율이 눈높이를 맞추며 물었다.

“서도야,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의기소침한 서도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 이거 참.”

독안이 난처한 표정으로 서도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떨림은 멎었지만 아직 얼굴에는 겁이 남아 있다.

그래도 지원군이 도착한 덕분일까. 서도는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르고 의젓하게 두 손을 내밀었다.

*

고급 주택이 모여 있는 부촌 안에서도 눈에 띄게 큰 집, 그곳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대기업 ‘만호’의 회장 최만식의 집이었다.

독안과 서도가 인도할 망자의 집이기도 했다.

-뉴스에서나 보던 집을 실제로 와 보다니.

화인은 사진으로만 보던 대저택의 담벼락 아래에 서서 감탄했다.

조금 일찍 도착한 독안과 서도는 그 집의 너른 마당 한편에 서서 적배지의 때를 기다렸다.

때를 기다리는 동안, 독안은 가만히 집안의 분위기를 살폈다.

-기묘하군.

무헌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하자 선율이 살짝 고개를 까딱여 동의를 표했다.

집안이 너무 고요했다. 생활 소음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대저택이라 불릴 정도로 규모가 큰 집이니 관리인도 여럿 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치 빈집처럼 인기척이 없었다.

“이거 영, 감이 좋지 않구먼…….”

독안이 중얼거리며 건물을 빤히 보았다.

-투시 중인 모양이에요.

선율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때, 3층 구석에서 음산한 기운이 스멀스멀 퍼져 나왔다.

-가정집에서 이런 악한 기운이라니.

무헌이 턱을 쓸며 말했다.

“오늘도 쉽게 데려가긴 틀린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떠냐.”

독안이 침음을 흘리자 서도도 덩달아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때를 기다리지 말고 서둘러야겠구나.”

독안은 곧장 서도와 손을 잡고 방안으로 이동했다.

그 순간이었다.

“사자님들 오셨습니까?”

지금껏 고요하던 방 안에 기다렸다는 둣 무당의 목소리가 울렸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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