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어떻게 알았죠?
-귀문이 열린 무당에게 영체가 보이는 건 당연하다.
놀란 화인의 물음에 태헌이 심드렁하게 답했다.
방안은 낯익으면서도 기이한 광경이었다.
촛불로 밝힌 어두운 방 한가운데에는 음식과 돈으로 가득한 제물상이 떡하니 놓였고, 그 상 너머로 얼굴을 가린 두 남자가 나란히 누웠다.
반듯하게 누운 두 남자는 얼핏 보아도 연령이 달랐다. 오른쪽에 누운 배불뚝이 남자는 머리가 허옇게 세고 손에는 검버섯까지 핀 반면, 왼쪽에 누운 마른 남자는 머리가 검고 피부가 하얘 손등의 핏줄이 선명하게 보였다.
또 나란히 누운 두 남자의 발치 사이에는 오방색의 무복을 입은 무당이 허리를 곧게 세워 앉아 있고, 방자한 미소가 만면에 드리워진 무당 뒤로 하얀 소복을 입은 한 여인이 서 있었다.
조상신으로 보이는 그 여인이 바로 방 안을 가득 채운 악한 기운의 근원이었다.
망자를 인도하기 위해 방문한 차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독안의 눈썹이 저절로 치켜 올라갔다.
그런데 그의 단짝 서도가 무엇 때문인지 잔뜩 겁을 먹고 독안 뒤로 숨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사자님들, 한상 거하게 차려두었으니 주린 배 든든히 채우고, 가벼운 주머니도 두둑이 채우고, 고된 몸은 편히 쉬어 가소서.”
무당이 정확히 두 차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오만, 우리가 바쁜 몸이라 그럴 수가 없구려. 망자만 데리고 떠나겠소.”
독안이 꺼림칙한 마음을 억누르며 정중하게 거절했다.
-인간들이, 특히 무당이 바치는 제물은 절대로 받지 마라.
-왜요?
-제물을 받는 순간 거래가 성립된다. 제물을 받은 만큼 원하는 걸 내줘야 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뜻.
무헌의 설명에 선율이 덧붙였다.
그 사이 무당이 독안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다짜고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이고, 사자님들, 제 얘기 좀 들어보소.
한 젊은 사내가 어머니의 긴 병환으로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하여 깊은 시름에 빠졌다 하더이다.
한데 웬 노공이 나타나 하는 말이 네 어머니의 치료비와 빚을 모두 갚고도 남을 돈을 줄 터이니 내게 네 수명을 잘라 팔아라, 하고 말했다지 뭡니까.
하여 젊은 사내는 흔쾌히 돈을 대가로 제 수명을 잘라 팔기로 하였는데, 어찌 그의 시름을 덜어주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무당이 엎드려 절하며 이야기를 마쳤다.
-수명을 잘라 팔다니.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화인이 황당하여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것이 어찌 젊은 사내의 시름을 덜어주는 것이냐. 간악한 늙은이와 너의 간계겠지.”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에 독안 역시 노기를 드러냈다.
“아닙니다, 사자님. 참말입니다.”
무당은 납작 엎드린 채 가련한 척 말했지만, 그녀의 말투에는 숨길 수 없는 간사함이 배어 있었다.
“염라의 사자인 우리를 기만하려는 게냐!”
독안의 서슬 퍼런 호통 소리가 방을 터뜨릴 듯 울려 퍼졌다.
언제나 인상 좋게 허허 웃던 독안이 이토록 화를 내다니, 화인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웃지 않는 독안의 얼굴은 조금 무서웠다.
-오랜만이네요. 독안이 화를 내는 건.
선율도 조금 놀랐는지 미소가 지워지고 입이 벌어졌다.
“아이고! 사자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요.”
무당이 설설 기는 시늉을 냈지만 독안의 화를 더욱 돋울 뿐이었다.
“꾀부리지 마라! 우리는 예정대로 적배지의 망자를 데리고 갈 것이다!”
“하면 이건 어떠하십니까.”
무당이 적배지와 닮은 붉은 종이와 하얀 부적을 겹쳐 두 남자의 배 위에 올려놓았다.
“지금 무엇하는가!”
독안이 일갈했다. 방 안에 또 한 번 큰 파동이 일었다.
“염라의 사자를 앞에 두고 주술을 행하려는 겐가!!”
무당의 얼굴에 간악한 미소가 피었다.
“예, 그렇습니다. 사자님들이 저의 제물을 받지 않으시니 어쩔 도리가 없지요.”
“무어라.”
“저는 지금부터 혼에 새겨진 이름을 바꾸는 환명술을 행할 것입니다. 금지된 술법이라고는 하나, 사자님들은 적배지의 망자를, 노공은 연명을, 젊은 사내는 부를, 이 모든 바람을 이루어 줄 유일한 방법이니 말입니다.”
무당이 말을 끝내는가 싶더니, 곧바로 주문을 외웠다.
“계사년 사월 이십팔일 최만식의 영에 새겨진 인명을 지우고 신사년 사월 이십팔일 박일태의 인명을 새기어 주시옵고…….”
무당이 외는 주문에 늙은 남자 최만식의 배 위에 놓여 있던 부적이 먼저 반응했다. 불씨도 없이 불꽃이 일더니 붉은 종이와 함께 서서히 타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독안은 황급히 영력을 방출해 방안에 거센 바람을 일으켰다.
불붙은 부적이 소용돌이에 휩쓸려 천장으로 솟구쳤다.
“아이고, 사자님. 노여워 마시고 제 말 한 번 들어주십시오.”
무당이 다시 넙죽 엎드렸다. 순전히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바닥에 이마를 대고 엎드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한껏 올라간 입꼬리가 비스듬히 선 화인의 눈에 선명히 들어와 박혔다.
“들을 것 없다.”
독안이 품에서 적배지를 꺼내 들었다.
“계사년 사월 이십팔일…….”
그때였다.
무당 뒤에 장승처럼 미동도 없이 서 있던 여인이 진득한 악기를 내뿜었다.
“드디어 나설 기분이 드셨소.”
독안이 여인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보시오, 사자님들. 우리 아이가 준비한 성의를 봐서라도 이번 한 번만 고이 넘어가 주소.”
“자손이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바로 잡아 주는 게 조상된 도리이거늘, 어찌 더 부추기는 것이오.”
독안이 나무라듯 말했다. 그러나 여인은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무슨 속셈이기에 저리 여유를 부리는지 넌지시 떠보려는 순간, 서도가 다급하게 독안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도, 독안…….”
서도가 무당을 가리켰다.
무당이 엎드린 채로 계속 입을 웅얼거리고 있었다. 한 번 실패한 주문을 다시 외고 있던 것이다.
“계사년 사월 이십팔일 최만식의 영에 새겨진 인명을 지우고 신사년 사월 이십팔일 박일태의 인명을 새기어 주시옵고, 신사년 사월 이십팔일 박일태의 영에 새겨진 인명을 지우고 계사년 사월 이십팔일 최만식의 인명을 새기어 주시옵소서.”
영에 새겨진 이름이 바뀌는 것은 그 영의 운명이 바뀌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무당이 행하는 금술이 성공하면, 금일 자택에서 죽어야 할 최만식이 박일태의 남은 수명을 살고, 박일태는 최만식을 대신하여 죽는다.
수명을 사고팔다니 이보다 더 황당한 거래가 어디 있을까.
무당과 최만식이 곤궁한 박일태를 돈으로 꾀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독안은 다시 한번 영력을 발산했다. 방 안의 공기가 거세게 소용돌이치다 이내 멎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술을 중단시키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주술에 부적이 사용되지 않은 탓이다.
대신 무당 양 옆으로 누운 두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얼굴에 덮었던 하얀 천이 독안이 일으킨 소용돌이에 날아간 것이다.
그런데 드러난 두 남자의 얼굴이 범상치가 않다. 얼굴에 온통 붉은 글자가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독안이 얼굴을 와락 구겼다.
피로 쓰인 글자였다.
이 수를 숨기려고 얼굴을 가렸구나.
-이거 성가시게 됐군.
무헌이 작게 혀를 찼다.
그런데 화인은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금술이라는 환명술은 물론이고 무당이 행하는 ‘주술’이라는 것 자체를 처음 보는데 말이다.
그와 동시에 뱃속에서 뜨끈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주문을 끝까지 왼 무당은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들고 다시 반듯하게 앉았다.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배후에 선 여인의 얼굴에도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가 가득했다.
두 여인의 미소가 불쾌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독안은 그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당장 눈앞에서 벌어진 금술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이번에는 무당이 행한 주술이 확실하게 성공했다.
두 남자의 육신에서 옅은 빛이 발산되더니 그들의 영이 육신에서 빠져나와 공중으로 떠올랐다.
“을사년 칠월 육일 염라의 사자가 명하노니.”
얼굴에 적힌 글자의 일부에서 환한 빛이 번쩍 솟아났다가 사그라들었다. 영혼에 새겨져 있던 진명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계사년 사월 이십팔일 최만식과 신사년 사월 이십팔일 박일태의 영에 행해진.”
이어 남은 글자에서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 푸른 불꽃이 영혼에 새로운 이름을 새겼다.
최만식에게는 박일태라는 이름을, 박일태에게는 최만식이라는 이름을.
“금지된 주술을 파훼하고 진명을 되돌리노라!”
독안이 서둘러 주술을 파훼하기 위한 주문을 외웠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쯧.”
독안이 혀를 차며 붉은 오랏줄을 던졌다. 이름이 바뀐 두 영이 육신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막기 위함이었다.
“사자님아, 이미 행한 주술은 되돌릴 수가 없소. 이제 그만 그들의 원대로 해 줍시다.”
여인이 구슬리듯 하는 말에 독안이 애써 웃으며 답했다.
“방법이야 찾으면 될 일이오.”
“고작 망자 하나 때문에 큰 일을 치르겠다 이 말이오? 혹까지 달고서.”
여인이 서도를 혹이라 칭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녀의 눈에 서도는 그저 겁먹은 아이였을 뿐이니.
“혹이라니, 내 단짝이오.”
“그럼 그 단짝에게 한 번 물어봅시다. 눈 딱 감고 조용히 덮고 넘어갈 것인지, 파헤쳐 피를 볼 것인지.”
여인을 보는 독안의 눈에 순간 살기가 어렸으나 이내 사라졌다.
“어떠냐, 서도야.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독안이 한층 부드러운 음성으로 서도를 향해 말했다.
서도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독안이 서도의 머리를 쓰다듬고 옆으로 한 걸음 비켜섰다.
나이가 지긋하지만 뱀처럼 요사스러운 여인과 눈을 마주치자 서도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도는 이내 침을 꿀꺽 삼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 나는 명부대로, 망자를 인도할 것이다아!”
서도를 보는 독안의 시선에 기특함이 가득 실렸다.
-옳지, 잘했어!
선율이 두 주먹을 꼭 쥐고 서도를 응원했다.
-그래, 덮긴 뭘 덮어. 여기 차사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화인이 이를 갈며 말을 얹자 선율의 눈이 동그래졌다.
-벌써 차사가 다 되었네요.
아차,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아버렸다.
사실 화인이 말한 ‘차사들’은 독안과 선율, 그리고 무헌을 두고 한 말이었지만 구태여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명부대로’라 하였느냐.”
여인이 서도의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그래, 네 말대로 최만식은 데려가고 박일태는 두고 가면 되겠구나.”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여인의 태도에 수상함을 느낀 서도는 제 말과 여인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환명술로 영에 새겨진 이름이 바뀌었으니 명부대로 데려가도 진짜 박일태가 죽게 된다.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서도는 자신의 말실수로 일을 그르치게 될까 덜컥 겁이 났다.
그리고 끝내 서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금 말장난이나 하자는 겐가!!”
노한 독안의 영체에서 심녹색의 영기가 피어올랐다.
그 순간 화인도 화가 난 탓인지 뱃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