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참 예쁘네요.”
맞은편 의자에 한 남자가 앉았다.
소소가 자주 이용하는 이곳은 보행로보다 조금 높은 테라스가 마련된 대형 편의점이다. 테라스에는 파란색 플라스틱 테이블 세 개가 항상 펼쳐져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파란색 대형 파라솔까지 세트로 펼쳐두었기 때문에 혼자 맥주를 마시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남자는 비어 있는 두 테이블을 두고 양해도 없이 굳이 소소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소소는 남자를 흘끗 쳐다보고 보행로 쪽으로 몸을 돌려 앉았다. 아파트 건물 사이로 남자가 말한 달이 낮게 보였다.
남자도 소소를 따라 몸을 돌려 앉았다.
소소는 테이블 위에 놓아둔 맥주 캔을 들고 크게 한 모금 벌컥 들이켰다.
“예쁘네요, 달.”
“그렇죠?”
“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가만히 앉아 달만 바라보았다.
“저기……, 고민 있으면 제가 들어드릴게요.”
“네?”
소소는 그제야 남자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서글서글하게 생긴 남자는 태평하게 부스럭거리며 마카롱의 비닐 포장을 뜯었다. 마카롱을 입에 넣으려다 소소와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었다.
“아니, 이마에 ‘고민’이라고 크게 쓰여 있어서요.”
남자는 마카롱을 한 입에 쏙 집어넣고 우물거렸다.
소소는 조금 성가시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저게 그믐달인가요?”
“초승달이죠, 아마?”
“초승달. 그렇구나.”
“오늘처럼 저렇게 오른쪽이 밝으면 초승달이고, 반대로 왼쪽이 밝으면 그믐달이에요. 쉽죠?”
“아, 네…….”
“그게 고민은 아니었죠?”
“네, 뭐 그냥.”
“아이, 진작 저한테 물어보시지.”
“하하.”
“차오르는 게 고민이에요, 이지러지는 게 고민이에요?”
잠시 머뭇거리다 맥주 캔을 손에 들고 대답했다.
“둘 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소소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었다.
“그, 제가……, 곧 마흔이 되거든요.”
“곧 마흔이라.”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몇 년 전에 퇴사를 했어요. 그리고 거기서 아르바이트를 쭉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오늘, 재입사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묻더라고요.”
“흐음, 전 직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면 동료나 상사랑 관계가 좋았었나 봐요.”
“좋았다고 할 수도 있고, 뭐 나쁘진 않았어요. 어차피 서비스직인 데다가 지점이 나뉘어 있어서, 사이가 좋고 나쁘고 보다는 당장 일손이 필요하니까 불렀겠죠. 저도 돈이 필요했고요. 그런데 그 기간이 생각보다 많이 길어지네요.”
“얼마나 하실 생각이었는데요?”
“모르겠어요.”
“아르바이트로 일한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글쎄, 아마 3년쯤 됐을 거예요.”
“그럼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회사를 그만뒀다고 했잖아요. 혹시 그 일이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부끄럽지만 일인 출판사를 하고 있어요.”
“그게 왜 부끄러워요.”
“수입이 정말 없다시피 하거든요.”
“에이, 수입이 다가 아니죠.”
“맞아요. 수입이 다가 아닌데, 수입이 다이기도 해요. 출판사 수입이 먹고 살 정도가 되면 그만둬야지, 하고 다짐했는데. 도무지 그날이 다가오질 않네요.”
“먹고 살 정도라고 하면?”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어느 날은 백만 원만 벌어도 된다고 생각했다가 또 어느 날은 그래도 혼자 살려면 적어도 삼백 정도는 벌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가. 아니야, 오백? 이렇게 자꾸 생각이 바뀌어요.”
“그런데 다시 입사를 제안할 정도면 일을 잘 하시나 봐요.”
“그렇지도 않아요. 제가 일을 잘하고 회사에 필요한 인물이라기보다, 회사 사정이 힘든 만큼 결국 효율적으로 더 잘 부려먹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거죠.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니까 제가 너무 옛날 사람 같고 좀 이상하네요. 굳이 세대를 나누자면 MZ세대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까. 한동안 받은 만큼 일한다거나 워라밸이 중요시됐잖아요. 인사를 담당하는 부장이란 사람은 사람 좋은 척 신입 사원들 비위만 맞추며 어르고 달래기 바빠서, 이것도 해 주겠다 저것도 해 주겠다 말만 하고, 중간에 끼인 기존 직원들은 또 억지로 그걸 맞춰주려니 죽어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신입들은 몇 년이 지나도 신입인 채로 머릿수만 채우거나 더 이상 제 비위를 맞춰주지 않으면 그냥 퇴사해 버려요. 그럼 또 부장은 그들의 상사나 매장 관리자의 책임으로 떠넘기죠. 제가 만약 다시 입사를 하게 되면 그 기존 직원들처럼 일해야 해요. 직속 상사였던 과장님은 제게 지난 경력을 인정해서 퇴사 전 직급으로 입사시켜 주겠다고 했지만 그게 그렇게 마냥 달갑지만은 않은 조건 같아요.”
“그럼 안 하면 되죠.”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분명 안 하겠다고 확실하게 마음을 먹었는데.”
“마음이 흔들리세요?”
“네, 과장님이 출판사 수입이 얼만지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한 달에 만원이라고 대답하는데, 제가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제 사정을 다 아는 분이라 이런 얘기해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요. 길게 보고 가야 하는 일이라고 덧붙이는 나 자신이 한심했어요. 길게 보고 가는 일인 거 아니까 나도 너한테 재입사를 권하는 거다, 글 쓰고 번역하는 일은 네가 부지런만 떨면 다 할 수 있지 않냐, 탄력 근무하고 연차 쓰면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다, 경기도 안 좋은데 통장에 돈 쟁여 놔야 한다, 이렇게 권할 때 못 이기는 척 넘어와라, 네가 그 일로 먹고 살만큼 벌면 나도 이런 말 안 한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단호하게 거절을 할 수가 없었어요. 다 맞는 말이라. 고민해 보겠다고 대답한 뒤로 내내 그 생각만 드는 거예요. 재입사를 할까, 말까. 재입사를 하면 내가 쉬는 날 제대로 책 만드는 일에 전념할 수 있을까. 다시 입사를 하면 내 성격상 역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텐데. 하지만 안정적인 수입이 생기니까 가족들은 좋아하겠지? 이참에 오래된 노트북도 바꿀까, 뭐,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요.”
소소는 크게 숨을 내쉬고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어쨌든 그분도 호의로 한 제안이니까, 그 자리에서 바로 단호하게 거절하는 일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니죠. 저라도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 같은 매장에서 일하는 어린 직원이, 과장님 퇴근하시는 걸 확인하고는 저한테 다가와서 말을 거는 거예요. 재입사하실 거예요? 하고. 사실, 같이 일한 지 이주쯤 됐지만 마주칠 일이 거의 없던 직원이라 인사 말고 제대로 된 대화는 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 제안을 알고 있어서 당황하기도 했고, 흔들리는 제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불쑥 다가와서 묻기에 좀 놀라기도 했어요.”
“마음이 그쪽으로 기울었나 봐요.”
“조금.”
남자는 다시 부스럭거리며 에끌레어의 비닐 포장을 벗겼다.
“단 걸 좋아하시나 봐요.”
“조금 그런 편이죠. 씁쓸했던 하루의 끝을 달콤하게 바꿔주잖아요.”
하고 에끌레어를 한 입 베어 물고 우물거리며 물었다.
“술 좋아하세요?”
“술을 좋아한다기보다, 음, 맥주를 좋아해요. 벌컥 들이키면 답답했던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랄까.”
“좀 시원해지셨나요?”
남자는 웃으며 물었다.
“어째 오늘은 더 답답해졌어요.”
“그 직원한테는 뭐라고 대답했어요?”
“모르겠다고,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대답했어요.”
“그랬더니 뭐래요?”
“지난번에 퇴사하신 이유가 있지 않냐, 다시 입사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고 단호하게 말하더라고요.”
“흠, 그럼 전에 회사를 그만둔 이유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그거 하나가 아닌가요?”
“네, 꼭 꿈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애초에 오래 다닐 마음으로 입사한 건 아니었거든요. 처음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번역 공부를 했는데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우선 돈을 좀 모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였어요. 같은 매장에서 일하던 저와 동갑인 주임이 직원으로 입사하라고 제안을 하기에 그러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서비스직에 맞는 성격은 아니거든요. 겉보기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래 보여요.”
남자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의지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말 믿으세요?”
“글쎄요.”
“저는 믿었어요. 그런데 그 믿음이 내 마음을 병들게 했어요. 막 입사했을 때 회사에서는 쾌활한 성격을 요구했어요.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서비스직이니 당연한 요구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바꾸려고 많이 노력했고요. 처음 몇 달은 내가 나 같지 않았어요. 억지로 다른 나를 만들어야 하니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회사에서 다른 자아로 생활했더니 에너지 소모가 너무 컸거든요. 그래도 점점 나아졌어요. 어쨌든 사람들 앞에서는 밝은 척이 편해졌고, 퇴근 후에도 여유가 생겼어요. 그래서 내 의지대로 진짜 성격이 변했고, 힘든 일을 극복했다고 믿었어요.”
“그런데 아니었나요?”
“네, 아니었어요.”
조금 풀 죽은 목소리도 대답했다.
소소는 새로운 맥주 캔을 따고 입 안 가득 맥주를 머금었다가 삼켰다.
“언젠가부터 잠이 오지 않았어요. 조금 졸린다 싶어서 자려고 누우면 그때부터 심장박동이 온몸에 울릴 만큼 크게 뛰기 시작했어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면서 울림이 가라앉길 기다려요. 어느 날은 금세 잔잔해지지만, 어느 날은 한참 동안 울려서 이러다 심장이 오작동으로 터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죠. 울림이 잔잔해지면 눈을 뜨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봐요. 그러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 때도 있고, 뜬눈으로 날을 샐 때도 있어요. 그러면 오전 내내 머리가 지끈거리고 정신은 흐리멍덩한 상태예요. 하지만 오후가 되면 살아나죠. 그렇다고 피곤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 오전보다는 살만한 정도죠. 다시 밤이 되면 심장박동이 크게 울리고, 또 잠을 설치고. 만신창이란 말이 어떤 건지 알겠더라고요. 몸도 마음도 다 황폐해졌어요. 퇴사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결국 꿈보다는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냥 이렇게 살다가는 곧……. 돈이고 꿈이고 다 무슨 소용인가 하고.”
“고생하셨어요.”
그윽하게 바라보며 남자가 말했다. 소소는 자신의 노고를 위로해주는 듯한 그 눈빛에 괜히 멋쩍어졌다.
“별 얘기를 다 하네요.”
주뼛거리며 맥주를 마셨다. 남자도 남은 에끌레어를 한 입에 다 넣고 우물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왜 거기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거죠?”
“지금 재입사를 제안한 과장님이 그때도 제안해주셨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오빠가 하는 가게 일을 돕고 있었는데, 마침 가게가 폐점할 즈음이었어요. 전화로 한 번 놀러 오라고 하시기에 커피를 사들고 정말 놀러 가듯 찾아갔죠. 책을 만들던 뭘 하던 돈이 든다, 커피 값이나 벌게 나와라, 하고 말씀하셨어요. 아르바이트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거 같아요. 파트타임이라 시간이나 체력도 많이 들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책임감과 중압감이 없어서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정규직이 되면 달라지겠죠. 아무리 그때와 지금의 업무환경이 다르다고 해도. 제가 너무 무책임한가요?”
“스스로 무책임하다고 생각하세요?”
“조금요.”
“왜죠?”
“모두가 싫고 힘들지만 견디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이미 한 번 도망친 경험이 있고, 지금도 제안만 받은 상태에서 벌써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잖아요.”
“도망치는 게 어때서요. 그럴 수도 있죠. 가끔은 도망칠 필요도 있어요.”
“재입사도 안 했는데 출판사도 잘 안되면 어쩌지? 재입사를 하면 내가 책을 부지런히 만들 수 있을까? 예전처럼 이도 저도 안되면? 자꾸 이런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심란해요.”
“제안을 받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네, 돈은 부족해도 나름대로 충족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미 깨져버렸네요.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지금 이 순간이 기점이 될 거예요. 내가 그때 왜 그랬지 하며 후회하는 순간이 될 수도 있고, 그때 이 선택을 하길 참 잘했어하고 만족하는 순간이 될 수도 있겠죠.”
“어떤 선택을 하든 잘할 수 있을 거예요.”
“그걸 어떻게 아시죠?”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요. 잘 헤쳐 나갈 것 같은 느낌?”
남자가 눈알을 한 번 굴리고 환하게 웃었다.
“느낌만으로는 부족해요.”
소소도 탄식하듯 숨을 내뱉고 슬쩍 웃었다.
“잠시 생각을 멈춰보세요.”
남자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어떻게 하는 거죠?”
“음……, 어떻게 하더라?”
“흠-.”
“기분이 좀 나아졌나요?”
“덕분에, 좀 나아진 것 같아요.”
“어떤 선택을 할지 기대가 되네요.”
“기대하지 마세요. 그것도 제게는 부담이니까.”
“음, 그럼 지금 기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아요?”
“일단 오늘은요, 역시 안 하는 게 좋겠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힘들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역시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결심하지만, 내일이 되면 변심할지도 몰라요. 불안한 지금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니 안정적인 수입에 홀려, 해볼까, 하고. 요즘에는 N잡러가 많잖아요. 나도 못할 건 없지. 그러니까 일단 가벼운 마음으로 해보자. 누군가의 기대에 못 미쳐도 돼. 정 안 되면 또 도망쳐, 하고.”
“그럼 이 고민은 대체 언제 끝나죠?”
“음, 기한이 없다면 아마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영원히?”
남자가 놀란 체하며 과장되게 말했다.
“네, 영원히.”
소소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캔에 남은 맥주를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달은 아파트 건물 뒤로 숨어 희미하게 달무리만 보인다.
남자는 인사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