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듯 축축한 밤공기를 마시며 소소는 버스 정류장에 서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 정류장 앞 아스팔트 위에 선명하게 쓰인 ‘BUS’라는 글자를 완전히 가리며 버스가 멈추었다.
승객은 대여섯 정도.
소소는 자연스럽게 뒷문을 지나 일인용 좌석에 털썩 앉았다.
의자 등받이에 고단한 몸을 맡기고 시선을 창밖으로 던졌다.
버스는 이미 달리고 있었다.
창밖으로 눈에 익은 아파트 단지의 상가가 눈에 들어왔다.
네일숍, 주민 센터, 떡볶이 가게, 식육 식당, 카페, 김밥집…….
벌써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인데, 배가 고팠다.
언제나 늦게 마치는 탓에 야식을 먹는 습관이 생겼다.
아, 안돼. 살도 살이지만 건강을 생각해야지.
벌써 건강을 챙겨야 하는 나이에 접어들었다며 소소는 한숨을 푹 내쉬고, 시선을 위로 옮겼다.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된 아파트 조명이 점점이 불규칙하게 켜져 있다.
이 아파트로 이사 온다고 했는데, 저기 어딘가에 살고 있겠지.
문득 그 아이가 떠올랐다.
첫 입사 후 1년쯤 지났을 무렵으로 기억한다.
직원 Y가 병가로 오래 자리를 비워, G 지점으로 파견 근무를 갔었다.
다른 지점 두어 곳에서 차례로 파견을 보냈는데, 소소가 그중 하나였다.
소소가 2주간 G 지점으로 출근할 때, 마침 P 지점의 아르바이트 몇 명도 그곳에 파견을 왔다.
아르바이트 파견은 흔하지 않은 경우인 데다 G 지점의 아르바이트 인력이 부족하지도 않았던 상황이라 조금 의아했는데, 사정은 그곳에 첫 출근을 하고 얼마 후 바로 들을 수 있었다.
P 지점이 내부 수리를 하는데, 예상보다 길어지자 신청을 받아 일을 할 수 있게 파견을 보낸 것이다.
소소는 평소 낯을 많이 가리고 성격도 소극적인 편이라 친하지 않은 직장 상사와 동료와는 사적인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았다.
대외적인 성격으로 밝은 척했으나 사무적인 태도일 때가 많았다.
그러니 2주 뒤면 다시 만날 확률이 극히 낮은 P지점 아르바이트에게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도, 사무적인 태도로 일관한 것도 소소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C군은 달랐다.
그는 준수한 외모와 밝고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살갑게 대하며 허물없이 말을 건넸고, 싱거운 장난을 치며 금세 G 지점 사람들과도 편하게 지내는 듯 보였다.
레스토랑 매장이었지만 홀보다는 주방 경력이 더 길고 적성에도 잘 맞았기 때문에, 소소는 서류 업무 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주방에서 보냈다.
때문에 자연히 주방 아르바이트였던 C군과는 얼굴을 많이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C군은 같은 파견으로서 동질감을 느꼈는지 한가한 시간이면 강아지처럼 따라와 소소에게 말을 붙이곤 했다.
대부분 일과 관련 없는 사적인 대화였다.
“매님.”
C군은 ‘매니저 님’을 줄여 이렇게 불렀다.
“매님은 어느 매장에서 왔어요?”
“나는 A점.”
“매님은 원래 이 일을 하고 싶었던 거예요?”
“아니.”
“그럼 왜 여기서 일해요?”
“그냥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취업을 하긴 해야겠고,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매님은 전공이 뭐예요?”
“졸업은 안 했는데, 공대야.”
“공대?”
놀란 듯 되물었다.
“응.”
“공대 무슨 과에요?”
“기계공학과.”
“진짜요?”
“응, 왜?”
“아니, 문과 같아 보였는데.”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다시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XXX가 꿈인데, 이러쿵저러쿵 …….”
“그렇구나.”
“매님은 꿈이 뭐예요?”
“지금은 번역이 하고 싶어.”
“역시, 문과 계열이네요.”
“그런 말 많이 들었어.”
소소는 옅은 웃음을 띠고 말했다.
“그럼 지금도 공부하고 있는 거예요?:”
“아니, 일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쳐서…….”
“미래를 위해 돈을 모으는 중인 거네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근데, 번역은 어떻게 공부해요?”
“글쎄, 정도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번역 아카데미를 다녔어.”
“그런 것도 있어요?”
“응, 서울에만 있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왔다 갔다 했지.”
“우와,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을 왕복했다고요? 대단하네요.”
“대단할 것 없어. 서울에 사는 사람들을 빼면 나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으니까.”
“그럼 나중에 서울에서 살 거예요?”
“쭉 살진 않겠지만, 얼마간은 서울에 살지도?”
“저, 곧 군대 가는데, 어쩌고 저쩌고…….”
“아, 군대를 아직 안 갔다 왔구나?”
“네, 좀 늦어졌어요.”
“빨리 다녀오는 게 낫다고들 하던데…….”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조심하고, 건강하게 다녀오렴.”
“제대하면 서울에 갈 건데, 이러고저러고 …….”
……
소소는 그저 신기했다.
그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쏟아내자, 소소 역시 어느새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그에게 하고 있었다.
그에겐 어떤 힘이 있는 걸까.
아니면 자신과 상관없는 누군가에게 자기의 이야기를 털어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소소가 그랬던 것처럼.
열흘쯤 지난 어느 날, 파견 근무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소소는 퇴근 후, 버스를 타기 위해 길 건너편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공기가 축축했다.
곧 장마가 시작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버스 정류장에 낯익은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조금 전까지 함께 일한 C군과 같은 지점 소속의 N 양이었다.
소소는 귀에 꽂았던 이어폰을 빼고, 애써 웃으며 손을 들어 인사했다.
이어폰을 다시 꽂을까 말까 고민하며 그들과 두어 걸음 떨어진 곳에 서서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두 사람은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이윽고 버스 한 대가 정류장으로 다가왔다.
N양이 버스에 탔다.
C군은 타지 않았다.
이어폰은 아직 손에 든 채였다.
C군이 소소에게 다가왔다.
“몇 번 타세요?”
“58번.”
“어! 나도 그거 타는데.”
“아, 그래?”
소소는 C군과 같은 버스를 탔다.
두 사람은 버스에 나란히 앉았다.
평소와 달리 C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소는 먼저 말을 꺼낼까 고민했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하지?
C군을 흘끗 보았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소도 고개를 돌리고 가만히 창밖을 바라봤다.
“나 제대하면 저 아파트로 이사해요.”
완공이 코앞인 한 아파트를 가리키며 C군이 말했다.
“아, 그렇구나.”
부모님이 어떻게 저 아파트를 사게 되었는지 소곤소곤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소소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C군이 다시 조용해졌다.
소소는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무슨 이야기든 곧 다시 시작하겠지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참 침묵한 끝에 C군은 고개를 돌리고 소소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 7년 뒤에 서울에서 만날래요?”
소소는 조금 의아했다.
서울은 그럴 수 있다고 치지만, 왜 7년일까.
고개를 갸웃하고 C군을 보았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에 기대감이 가득 차 있다.
소소는 잠시 망설인 끝에,
“그래, 그러자.”
하고 대답한 뒤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실현 불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현재 그의 기대에 부응해주고 싶기도 했다.
소소의 대답을 듣고 C군도 미소 지었다.
“저, 그럼 먼저 내릴게요.”
C군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소소는 조금 놀랐지만 이내 놀란 기색을 숨기며 인사했다.
“응, 잘 가.”
“오늘 수고하셨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소소는 정차 버튼을 누르고 뒷문으로 걸어가는 C군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버스가 멈추자 C군은 고개를 돌리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소소도 덩달아 손을 들어 흔들었다.
그게 C군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후로 C군은 G 지점에 출근하지 않았다.
사정을 캐묻지는 않았다.
그냥 파견이 끝났나 보다 하고 마음속으로 추측할 뿐이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소소의 파견 근무도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