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별이다(에세이)

순환: 불멸의 이야기

by sleepingwisdom

순환: 불멸의 이야기

바위가 다시 바위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억 년 정도이다.

암석학을 조금 공부해 보면 알 수 있다.

산 위에 아무리 큰 바위도 결국 풍화를 겪고 닳아 없어진다.

미세한 가루가 되어 비가 오면 바다에 흘러들어 가 퇴적층으로 쌓인다.


중력으로 무거워진 퇴적암층은 지구 표면을 뚫고 맨틀층으로 들어간다.

맨틀층에서 열과 압력 속에서 마그마로 변화한다.

이후 화산폭발, 지각변동으로 다시 지표면 위로 올라와 큰 바위가 된다.


풍화되고 침식되어 모래가 되고, 그 모래가 다시 바다로 흘러가 퇴적층을 이루며 암석이 되는 장대한 여행을 계속한다.

2억 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바위는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며 영원히 살아간다.



바다가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시간은 대략 수 시간에서 수백년이면 족하다.

지금 내리는 장맛비도 며칠 전까지 태평양 어딘가에 있던 바닷물이었을 것이다.

태양의 열기로 증발하여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었다가, 비가 되어 땅에 내려와 강을 이룬다.

일부는 지하수가 되어 수십 년을 땅속에서 머물다가,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끝없는 순환.

물의 여행은 바위보다 훨씬 빠르다.

바다는 바다가 되기 위해 하늘과 땅을 여행할 뿐이다.





밤하늘의 별들도 마찬가지다.

저 반짝이는 점들 하나하나가 사실은 거대한 핵융합로이자, 원소들의 연금술사다.

우주의 미세먼지가 중력으로 뭉쳐 별이 태어난다.

강한 중력으로 원자들은 부딪쳐 폭발을 거듭하며 수십억 년간 자신의 몸을 태우며 빛을 발한다.


마침내 연료가 떨어지면 초신성 폭발로 장렬하게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별이 죽으며 흩뿌린 무거운 원소들은 다시 성운을 이루고, 그 속에서 새로운 별이 태어난다.



지구도 죽은 별들의 재로 만들어졌고, 언젠가 폭발하고 다시 별이 될 운명이다.

그곳에 사는 우리들은 별의 자손이고 별 자체이다.



이런 거대한 순환들 사이로, 더 정교하고 빠른 생명의 순환이 존재한다.

식물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광합성하고, 동물이 그것을 먹고 다시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탄소의 순환.

대기 중 질소가 땅으로 내려와 식물의 단백질이 되고, 동물의 몸을 거쳐 분해되어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질소의 순환.

봄이 오면 새싹이 돋고, 여름엔 무성해지고, 가을엔 열매 맺고 잎이 지고, 겨울엔 모든 것이 고요해지는 계절의 순환.

이 모든 것이 생명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어 있다.



몇일 전 내가 좋아하는 북튜버가 소개한 책의 일부가 인상깊다.

인간의 세상에도 비슷한 순환이 있다.

힘든 사회가 강한 인간을 만들고, 강한 인간이 편안한 사회를 만든다.

편안한 사회가 약한 인간을 만들고, 약한 인간이 다시 힘든 사회를 만드는 순환.

마치 자연의 순환처럼 피할 수 없는 인간사의 법칙.



그리고 우리 자신도 이 순환의 일부다.

내 몸을 이루는 세포들은 끊임없이 죽고 태어난다.

피부세포는 28일마다, 적혈구는 120일마다 완전히 새것으로 바뀐다.

7년이면 뼈세포까지도 모두 교체된다.

나는 7년 전의 나와 물질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존재이지만, 여전히 '나'라고 부른다.

마치 강물이 계속 흘러도 내용이 바뀌어도 강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더 놀라운 것은 내 안의 생각과 감정도 순환한다는 사실이다.

파도 사고로 건강을 잃고 죽을 뻔한 경험을 해보니 삶과 건강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 상실감과 괴로움이 깊어질수록 남은 일상의 소중함을 더 절실히 알았다.

당연시하던 것을 잃어보니 감사함도 깊어졌다.

숨 쉬는 것, 물 마시는 것, 햇빛쪼이는 것, 그리고 걷는 것이 좀 더 나아가 혼자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갈 수 있다는 것도 큰 축복임을 깨닫게 되었다.


일부 종교에서는 이 순환을 영혼의 윤회로 표현하기도 한다. 종교적 교리를 논외로 하더라도 자연을 관찰하면 계절의 순환부터 아침저녁의 순환부터 유기체 생명이 무기체 비생명으로 무기체가 유기체 생명에 흡수되어 생명을 얻는 과정까지 너무나 많은 사실들이 순환을 설명하고 있다.


결국 죽음이란 무엇인가?

형태의 변화일 뿐이다.

내가 숨을 멈추는 순간, 내 몸을 이루던 탄소와 질소와 인은 흙으로 돌아가 풀이되고 나무가 되어 다른 생명을 키운다.


내 몸의 칼슘은 언젠가 새로운 바위가 될 것이고, 내 안의 물은 구름이 되어 다른 누군가의 눈물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남긴 말과 행동들은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새로운 생각과 행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시간의 층위는 다르다.

물은 며칠 만에, 감정은 몇 주에서 몇 달에, 생명은 수십 년에서 수백 년에, 사회는 몇 세대에 걸쳐, 바위는 억 년에, 별은 수십억 년에 한 바퀴씩 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환한다는 진리는 같다.



가끔 사람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저 사람의 몸 안에도 공룡이 숨 쉬던 공기의 산소가 흐르고 있을 것이다.

저 아이의 뼛속 칼슘은 고대 바다의 조개껍질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138억 년 우주 역사의 산물이자, 앞으로 펼쳐질 무한한 미래의 재료다.



자연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모든 것은 변할 뿐이라고.


우리는 이미 수십억 년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수십억 년을 살아갈 것이라고.

다만 그 형태가 달라질 뿐이라고.

때로는 바위가 되고, 때로는 구름이 되고, 때로는 꽃이 되고, 때로는 별이 되어.


바위도, 하늘의 구름도, 밤하늘의 별도, 내 곁의 사람들도, 그리고 나 자신도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영원한 순환의 이야기를.

불멸의 이야기를.

그리고 그 순환 속에서 우리가 한 때 별이었다고 그리고 생명이 다하면 별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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