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좋았을 뿐인데

2026.02.17

by 이자영

나와 가장 친한 친구 두 명은 서로를 모른다. 하지만 둘은 동시에 나를 이렇게 묘사한다.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내가 보는 나는 굉장히 내향적인 사람이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무료 MBTI 검사를 하면 I가 98% 비중이 나올 정도이니까. 집 밖에 나가거나 사람들을 만나면 실시간으로 에너지가 빨리니까. 외부 활동보다 카페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선호하니까. 혼자 있는 시간이 가장 좋으니까. 그래서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의 나는 조금 달랐다. 신기할 정도로 지금과는 달랐다. 나는 고등학교 때 2년 정도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처음에 엄마는 기숙사 입소를 반대했었다. 집에서 5분 거리인 학교인데 왜 가냐고, 집에서 다니면서 공부하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 때 꽤 강하게 기숙사를 고집했다. 왜인지 모르게 그러고 싶었다. 그곳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특별하게 관리해주는 곳이었고, 결국 엄마는 내 의견을 받아들였다.

나는 상당히 외향적인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3년 내내 학급 임원을 했고, 전국 토론 대회에 학교 대표로 나갔으며, 심지어 교내 동아리를 직접 창설했다. 그 때 나는 외교관이 꿈이었고, 그래서 비슷한 진로의 친구들을 모아 외교 동아리를 만들어 교내 최초 모의 UN 회의를 열기까지 했다. 그런 것들이 즐겁고 재미 있었다.

그러다가 2학년 2학기 때 번아웃을 겪었다. 별 이유 없이 에너지가 확 낮아졌고, 공부도 하기 싫었다. 1점대를 유지하던 내신 성적이 2점 후반대로 급락했고, 3학년이 되기 직전 나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몇 달만 모든 학원, 과외를 끊어 보겠다고, 나 혼자 공부해보겠다고. 가장 중요한 고3을 앞둔 상태에서 내리기 힘든 결정이었지만, 나는 꽤 강경했고 엄마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모든 사교육을 끊고 혼자서 공부한 3학년 1학기, 나는 수학을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1등급을 받았고, 떨어졌던 평균을 확 끌어올렸다. 대학 입시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후 3학년 입시 상담을 할 때 담임 선생님이 2-2학기 때 성적이 떨어진 이유를 물었고, 나는 멍하니 앉아 아무 것도 떠올리지 못했다. 그저 이렇게 말했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내가 공부만 한 것은 아니었다. 고 3때 처음으로 스마트폰이 나왔었고, 나는 한창 바쁠 시기에 쿠키런이라는 게임에 빠졌었다. 그것도 꽤 중독적으로. 기숙사생은 밤 11시까지 야자가 필수였는데, 나는 독서실에 앉아 핸드폰으로 쿠키런만 했다. 몇 시간이고 반복해서. 그걸 지켜보던 기숙사 사감 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와 이 행동을 제지한 적은 아주 많았다.

그리고 나는 잠이 아주 많았다. 11시까지 공부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저녁을 먹고 8시쯤 방으로 올라와 몰래 잠들곤 했다. 11시 반 경에는 이름을 부르면 대답해야 하는 점호를 했는데, 나는 이 때 대부분 잠들어 있어서 다른 친구들이 대신 대답해주는 경우도 잦았다. 자영이는 이미 잠들었어요-. 그러게, 나는 이 때부터 잠이 아주 많았다.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기억이 있다. 언제였는지 시기가 구체적으로는 기억 안 나지만, 기숙사 독서실에서 내 머리카락을 계속 뽑았던 시기가 있다. 그 때 나는 반곱슬이 심했고, 머리숱도 굉장히 많았다. 어느날 그 구불거리는 잔머리들이 너무나 거슬려서 그것을 하나씩 하나씩 뽑았다. 하루에도 수십 가닥씩. 이 행동은 몇 달이나 지속되었지만, 나는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 짓을 멈췄다.

아, 내가 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 계기가 떠올랐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공부에 흥미도 없었고 성적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때 과학에 아주 깊게 빠졌다. 과학이 너무 재미 있었다. 특히 생물 과목이. 그래서 나는 중3 때 고등학교 과학 문제집을 미리 사서 혼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용은 꽤 어려웠고, 나는 그럴 때마다 과학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의 이름이 아직도 생각날 정도로, 거의 매일 찾아가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귀찮을 법도 한데, 내가 매일 찾아가도 매일 웃으며 반겨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 선생님에게 원했던 게 과학 지식이었는지, 다른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고1 첫 시험 때 과학에서 100점을 받았다. 우리 학교는 여고였고, 지역 내에서 내신이 어렵다고 알려진 곳이었는데, 100점을 받았다. 2등을 한 친구가 92점이었는데. 이것을 아직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그 2등을 한 친구가 내게 직접 공부를 어떻게 했는지 물어봤었기 때문이다. 이후 우리 반에 들어오시던 과학 선생님이 농담조로 이렇게 말하시기도 했다. ‘자영아, 너는 문과에 갈 건데 너가 100점을 받으면 어떡하니’. 그러게, 나는 문과 지망이었으니 과학은 하등 쓸모 없는데. 하지만 나는 정말이지 과학이 좋았다.

생각해보면, 정말 신기하게도 내 성적은 고등학교에 입학한 시점부터 급상승했다. 중학교 때 전교 100등도 못했던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는 거의 반 1-2등, 전교 10등권을 유지했으니. 엄마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다. 내가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선행을 잘 시켜둬서 그런 거라고. 하지만 나는, 선행을 전혀 하지 않았던 ‘과학’이 좋았다. 그리고 중 3때 찾아온 과학에 대한 강렬한 흥미는 곧 공부 전체에 대한 흥미로 이어졌다.

고등학교 때 나는 분명 외향적이었다. 하지만 꽤나 감수성이 강하기도 했다. 3년동안 친했던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나와 같이 영문과에 가고 싶어했었고, 결국 목표 대학에 최종합격 했었다. 이 친구와는 고 3때도 같은 반이었고, 친구의 합격 발표가 나온 날 나는 옆에서 함께 울음을 터뜨렸다. 친구가 3년 동안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아니까, 너무나 기뻐서. 그래서 오랫동안 같이 울었다. 그 친구는 성인이 된 후에도 나에게 말했었다. 자신이 대학에 붙었을 때 같이 울어준 친구는 너밖에 없었다고. 그것이 너무 고마웠다고.

떠오르는 10대 후반의 기억들을 적으며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10년, 20년 가까이 본 친구들은 왜 나를 외향적인 사람으로 보는 걸까?

나는 그저 과학이 좋았을 뿐인데. 그 뿐인 일인데.


치료를 시작한 이래로 중고등학교 때의 기억을 이렇게까지 꺼내본 건 처음이다. 왜 하필 지금일까? 이번 주는 병원도 상담도 가지 않는다. 두 치료자가 동시에 자리를 비웠다. 그래서 나는 이 시점에서 자꾸만 과거의 ‘선생님’들을 꺼내오는 걸까?

지난 주에 의사 선생님에게 치료를 그만둘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그럼에도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물었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예약이 잡혀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저 과학을 좋아했던 것처럼 예약이 잡혀 있었으니까. 그 이유 뿐이었다. 나 스스로도 이것이 굉장한 방어인 걸 머리로는 알지만,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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