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14
상담 선생님은 이번 연휴 기간 동안 내가 걱정된다고 하셨다. 내 기억으로도 2025년 1월, 그러니까 1년도 더 전에 선생님의 비행기가 결항되었을 때 이후로 세션이 없던 적은 없었으니까. 심지어 그 때 나는 그 한 주의 공백도 버티지 못해서 선생님에게 연락을 했었다. 이런 얘기도 하고 저런 얘기도 하려고 했는데 못 봐서 서운하다고. 선생님은 자신도 서운하다고, 미안하다고 하며 따뜻하게 받아주셨다. 아, 그 후 작년 여름 내가 치과 수술로 입원을 해서 상담을 못 갔을 때도 있다. 그 때는 공백이 있던 주에 선생님이 먼저 전화를 걸어주셨다. 수술은 무사히 마쳤는지, 잘 회복되고 있는지를 물어보셨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선생님은 여러 번 다른 날에 상담을 하자고, 또는 전화로라도 하자고 하셨지만 나는 계속 거절했다. 연휴에 오기도 싫고, 전화도 싫다고. 예전처럼 선생님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가 아니었다. 요즘 들어 꽤 뻔뻔해진 나는, 선생님이 여러 번 그랬던 것처럼 나를 위해 연휴에 상담실에 올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알고 있기에 굳이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굉장히 모순적인 말이지만. 선생님은 오늘 세션이 끝나기 직전까지도 반복하셨다. 자신은 안 바쁘니, 네가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 얘기를 적으려고 시작한 글이 아닌데, 왜 이걸 먼저 적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쓰려고 한 건 ‘자기 관찰 능력’에 대한 것이었다. 오늘 상담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 스스로는 믿지 않을 수도 있지만, 너는 자기 성찰 능력이 뛰어나다고. 선생님이 어떠한 능력에 대해서만큼은 빈말을 절대 안 하시는 걸 알기에 기분이 묘했다. 다른 치료자들에게 들은 적은 많지만, 상담 선생님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이 말을 하신 건 처음이라서.
자기 관찰 능력이 뛰어나다. 이 말을 처음 들은 건 2022년, 첫 번째 병원을 다니던 때였다. 그 시기의 나는 진료 시간 동안 대부분 침묵했고, 선생님이 써오라고 하는 글만 계속 써갔었다. 그러던 어느날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셨다. 너는 자기 관찰 능력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하지만 뒤이어 이 말도 하셨다. 이건 분명 재능이지만, 고통이기도 하다고. 남들이 못 보는 걸 보고 남들이 못 느끼는 걸 느끼니까 더욱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똑똑하고 예민한 사람이 안 똑똑해질 수는 없으니 어쩌냐는 말까지 하셨다. 이게 다였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말은 없었다. 똑똑하다는 말을 스스로 하려니 환멸감이 들어서 덧붙이지만, 나는 정말 내가 똑똑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K 선생님과의 치료 기간에도 몇 번 들었다. 필력, 언어 능력, 자기분석 능력 및 지능에 대한 것들. 정말 이해할 수 없지만, 치료 초기 종합심리검사를 받고 결과지를 보신 선생님의 첫 마디도 ‘똑똑하다’는 말이었다. 정확하게는, 똑똑하다는 건 우리가 확인을 했지만 지금은 이 좋은 머리를 자책하는 데에 다 쓰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모든 불안이 세세하게 다 그려지는 타입이라고. 아, 그리고 아주 높은 연대감 점수와 바닥을 친 자율성 점수에 놀라셨던 기억도 난다. 나는 이 때도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무엇을 보고 똑똑하다고 하신 거지? 결과지에 적혀 있는 웩슬러 지능검사 점수는 그리 높지 않았는데.
상담 선생님은 최근 이런 말을 하셨다. 네 글이 아주 많이 좋아졌다고. 네 지적 능력과 문장력이 함께 돌고 돌아서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고. 나는 이 때도 ‘문장력’의 발전은 수긍했지만, ‘지적 능력’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쩌면, 치료자들이 언급한 똑똑함은 지능 지수의 영역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기준에서의 똑똑함은 아인슈타인이나 셰익스피어 정도이기도 하고. 내가 가진 지적 능력이 곧 자기 관찰, 자기 반성 능력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뒤따라온 생각은, 첫 의사에게 들었던 그 말이었다. “이건 분명 재능이지만, 고통이기도 해요”.
오늘 상담 선생님 앞에서 나는 내내 짜증을 냈었다. 힘들다고, 나는 자꾸만 혼자서 치료 작업을 하는 것 같다고, 글을 쓰고 고통을 받고 과거를 연결하고.. 이 모든 짓을 이제 못 해먹겠다고. 글을 쓰는 지금은 K 선생님이 했던 말이 다시금 떠오른다. “지금은 이 좋은 머리를 자책하는 데에 다 쓰고 있어요”. 그렇다면, 이걸 자책이 아닌 자기 보호, 회복에도 사용할 수 있는 걸까?
어쩌면 나는 이 9일의 치료 공백동안 그걸 시험해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이제는 나를 찌르기만 하지 않아. 나도 회복을 위한 글을 쓸 수 있어. 나도 무언가를 증명해보이고 싶어.
그 증명이란, 내가 가진 것들을 ‘나를 위해’ 사용해보겠다는 마음이었다. 비록 미약한 마음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