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15
“자영씨의 존재 자체가 가능성이에요”
이틀 전 상담 선생님이 하신 이 말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나는 치료의 시작부터 5년째 정신과, 심리상담에서 다루었던 내용을 매번 간략하게나마 기록해두고 있는데, 이 날의 글 제목이 이 문장이었다. “자영씨의 존재 자체가 가능성이예요”.
나의 어떤 것을, 어떤 가능성을 보고 치료를 계속했는지 물었다. 그에 선생님은 이 대답을 하셨다. 뒤에 구체적으로 몇 가지 더 얘기해주셨지만, 어째서인지 그것들보다는 이 문장만이 강하게 마음에 남았다.
사실은 이 글 또한 이 내용으로 시작하려 했던 게 아니었다. 나는 ‘글’ 자체에 대한 글을 쓰려 했다.
오랜 기간동안 나는 글로 치료자와 소통했다. 상담이든 정신과 진료이든, 나는 들어가자마자 그동안 쓴 글을 내밀었고, 치료자들은 글을 먼저 다 읽은 후 대화를 나누었다. 이 행동은 정말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2025년 초반에는 양 쪽에서 비슷한 말을 들었다. 이제는 글 말고 말로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나는 곧바로 반항했다. 나는 글이 더 편한데.. 말로는 못하겠는데. 그래서 K 선생님에게 ‘그럼 이제 글 안 가져올 거예요!’라고 선언을 했고, 선생님은 ‘글을 가져오지 말라는 말이 아니었다는 건 알죠?’라고 반응하셨다. 그 때 나는 겨우 한 주 글을 건너뛰었고, 다시 글을 가져갔다. 계속해서.
비슷한 시기에 K 선생님이 한 주 자리를 비웠던 때가 있었다. 그 때 나는 아주 고통스러운 2주를 보냈다. 선생님의 공백이 문제였던 건 아니고, 내가 과거에 대해 제대로 ‘직면’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치료자 없이 혼자서. 나는 십 수년 간 쌓인 기억을 장문의 글로 써내려갔고, 그건 대부분 오랜 기간 지속된 —의 기록이었다. 한번 기억이 떠오르자 멈출 수 없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에 대한 기억들은 둑이 터져나오듯 폭주했다. 나는 그 후폭풍을 견디기 위해 매일 글을 써내려갔다.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은 채 핸드폰으로 글을 쓰고 또 썼다. 나의 마음에 대해, 증상에 대해, 끔찍한 꿈에 대해, 이 모든 강렬한 고통과 충동에 대해.
2주 뒤 선생님을 마주했을 때 나는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10장의 글을 내밀었다. 그것도 최대한 줄이고 줄인 분량이었다. 선생님은 10장의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으셨고, 나는 그 동안 눈물을 뚝뚝 흘리며 기다렸다. 글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선생님은 버티느라 고생했다고 말하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치료를 시작하지 말 걸, 하는 생각도 들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못 하겠다고, 이제는 못 버티겠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선생님은 꽤 단호하게 다시 말하셨다. 정말 포기할 생각이었으면 2주 동안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버티지 않았을 거라고, 네 안에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만 있는 게 아니라고.
그리고 이 날 선생님은 이렇게도 말하셨다. 글을 쓰는 건 좋은데, 쓰고 나서 혼자서는 읽고 또 읽지 말라고. 소화하는 건 치료자와 함께 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오늘까지도 그러지는 못하고 있다. 나는 내가 쓴 글을 계속 읽고 또 읽는다. 그것이 고통스러울지라도, 그렇게 한다.
선생님은 휴직 전 이렇게 말하셨다. 안전한 정신치료 틀에 들어간다면, 그리고 그 틀과 내가 쓰는 글이 결합된다면 정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정말 변화가 있을 거라고. 이 말을 들은 나는 내심 기쁘기도 했다. 내가 쓰는 글이 ‘치료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 받은 것 같아서.
그래서 작년 7월, 새로운 병원 초진 때 나는 글을 가져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 도전적인 글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초진 때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셨다. 심리치료의 자유연상에는 확장성이 중요하다고, 그리고 글은 확장성이 부족하다고. 나는 선생님의 그 말에서 거절 당하는 느낌을 받았고, 그 후 병원에는 글을 거의 가져가지 않았다. 이후 선생님도 글을 가져오지 말라는 건 아니었다고 하셨지만, 어째서인지 그 말이 나에게는 완전한 거절로 다가왔다.
그래서 최근 써내려가고 있는 이 글들을 다음 진료 때 선생님에게 드리려고 생각하고 있는 이유는, 그에 대한 자그마한 반항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또는 선생님이 나를 좀 더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인 것 같다. 치료가 없는 기간동안 나는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고, 이렇게 버틴다고. 나에게는 사실 글이 아주 많이 중요하다고.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는 여전히 믿는다, 글에도 힘이 있다고.
말도 중요하지만, 글이 가진 힘도 그만큼 동등하다고.
하지만 내가 지금 이렇게 글을 매일 써내려가는 이유는, 과거를 반복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치료자가 없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나를 해체해서 고통의 이유를 찾기 위해, 또는 과거를 재현하기 위해.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이제 글을 고통의 연장으로만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글은 어느 시점부터 강력한 자기 이해의 도구가 되었으니까.
그럼에도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까지 내가 왜 ‘존재 자체가 가능성’이라는 문장으로 글을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지금 머릿속에 한 문장이 더 떠올랐다. 나는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