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6
상담 선생님이 상담실을 옮긴다. 2021년 12월 처음 그곳에 갔을 때부터, 2026년 3월이 된 지금까지 나는 거의 매주 그곳에서 선생님을 마주했다. 200번에 가까운 만남. 이 길고 긴 기간 동안 나는 무엇이 변했나. 그리고 이제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나. 나도 안다, 이제는 내가 ‘선택’할 시점이 되었음을. 슬프지만,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과거 선생님 앞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저는 아무 것도 바랄 자격이 없으니까, 이곳에 있게만 해주세요. 저를 포기하지만 말아주세요”
선생님은 이건 당연한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네가 바라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 기본적인 것이라고, 무언가를 더 바랄 자격이 있다고 하셨다.
언젠가부터 나는 선생님이 나에게 해주는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고정된 금요일 첫 타임, 8-90분에 육박하는 상담 시간, 세션 외 카톡과 전화, 떠나기 전 문 앞에서 항상 건네 주시는 바나나. 그리고 오늘은 선생님이 사주신다던 걱정 인형까지 당당하게 받아왔다. 분명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나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선생님에게 죄송하고 또 죄송했는데. 나는 이 모든 것을 받을 자격 따위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선생님은 끊임없이 말과 행동으로 그것이 아님을 알려주셨다. 나도, 이런 걸 받을 자격이 있다고.
나는 이제 선생님이 해주시는 것들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이 정도는 받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내 마음이 웃기기도 하지만, 솔직한 마음이기도 하다. 선생님이 해주실 만 하니까 해주시는 거겠지. 그리고 나도 받을 만 하니까 받는 거겠지.
오늘 상담이 마무리될 무렵, 안 좋은 소식이 있다는 선생님의 말에 잠깐 긴장했다. 그리고 3주 뒤부터 상담실을 옮기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선생님은 다른 내담자들은 마음에 걸리지 않지만 나에게는 미안하고 마음에 많이 걸린다고 말하셨다. 옮기는 곳이 상당히 먼 위치이기도 하고(편도 1시간 반), 내가 집과 학원 위치를 생각하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선생님은 내가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횟수를 조정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나는 이 상황에 대해 계속 짜증을 냈다. 선생님은 정말 미안하다고, 천천히 생각해보고 알려달라고 하셨다.
잠시 후 선생님에게 물음 하나를 던졌다.
“현실적으로,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치료’로서의 상담의 종결 시점은 언제인 것 같아요?”
그러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치료는 끝났다고 생각해요. 프로이트가 그런 말을 했어요. 끝이 있는 분석과 끝이 없는 분석이 있다고. 어떤 환자는 종결이 있고 어떤 환자는 없다고 하거든요. 어떤 환자는 수십년 간, 늙을 때까지 해야 되는 분도 있다. 루이즈 부르주아도 30년 넘게 받았잖아요. 그렇게 오래 하는 분도 있어요. 그리고 정신병적 증상이 있으면 평생 약을 먹고 상담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렇지만 내가 얘기하는 분석이나 치료는, 이제 증상이나 문제가 해소되는 치료가 있고, 또 하나는 ‘삶으로서의 치료’가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알지는 못해요. 하지만 어느 정도 알고, 내가 원하는 삶을 누릴 수 있으면 그 다음 단계는 삶으로서의 치료라고 생각해요. 자영씨는 후자의 단계로 접어들었어요”
“하지만 아직 이렇게 흔들리는 걸요?”
“물론 우리는 흔들리지만, 후자의 단계에 접어든 것 같아요. 이제 어느 정도 내 인생을 살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자기 통찰을 할 수 있는 힘이 있잖아요”
나는 정말이지 이제서야 치료가 ‘시작’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선생님의 의견에 반대했다.
“아니요, 저는 다르게 느꼈어요. 이렇게 오래 치료받았으면 대상에 대한 안정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번에도 보면 여전히 공백에 흔들리잖아요. 같은 상황이 생기면 또 불안정해지잖아요. 그럼 해결이 안 된 거 아닌가? 앞으로도 다른 관계에서 또 이럴 거 아니에요”
선생님은 그럴 수 있다고, 아직 경험을 통해 소화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차츰차츰 내 것이 될 거라고 하셨다. 그 기간은 짧게는 1-2년, 길면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고.
나는 속마음을 내뱉었다.
“저는 상상이 안 가요. 치료가 없는 제 삶이 상상이 안 가요”
선생님은 웃으시며, 그건 좋은 건 아니라고 하셨다. 과의존일 수도 있다고. 이 말을 들은 나는 또 짜증이 났다.
“언제는 평생 한다더니, 너무하네요!”
그러자 선생님은 조금은 단호하게 대답하셨다.
“나는 평생 할 거예요. 그러나 나에게 의존하거나 의사 선생님에게 너무 의존하는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아요. 조건이 있어요. 자영씨가 자기 인생을 잘 살고, 삶을 누리고, 그걸 누리면서 나에게 오는 것은 괜찮지만, 그렇지 않는 건 원하지 않아요. 일주일에 한번은 지속할 거고, 자영씨가 나중에 결혼을 하거나 더 중요한 게 생길 수 있잖아요. 그러면 횟수를 좀 줄여서 2주에 한번 정도가 타당하다고 생각해요. 어때요?”
“..다 때려칠까?! 왜 자꾸 독립 시키려고 하세요?”
내 말에 선생님은 웃으셨다.
“그렇게 받아들였네요. 그런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데, 자영씨가 자기 삶을 잘 살기 바라는 거예요. 그리고 자리를 옮기는 건 현실적인 부분이니까, 상황이 좀 그래요. 그러니까 생각해보고 알려주세요”
상담실을 빠져나온 순간부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의외의 감정을 발견했다. 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내가 예전처럼 많이 흔들리지 않았음을. 종결에 대한 얘기가 언급만 되어도 싫다고 난리를 치던 과거와 달리, 나는 이 상황을 차분히 관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는 선생님을 조금 덜 봐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 그 이유는, 내가 앞으로도 도움을 요청하거나 선생님이 필요하다고 하면 선생님이 언제든 나를 반겨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주 오랫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거리가 조금 멀어질지라도, 선생님은 내 옆에 있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그리고 이제는, 그런 선생님을 마음 안에 품고 내 삶을 조금 더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슬프지만, 그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