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8
죽음과 삶 자체를 포함한 모든 것이 내 선택이라는 것을 인지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항상 이리저리 휘둘려서 살아온,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작년에 상담 선생님이 죽음도 삶도 네 선택이라고, 자신은 그 말을 취소할 생각은 없다고 하셨을 때 나는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왜 이제 와서 그런 중요한 게 내 것이라고 하냐고. 지금까지 아무 것도 선택하지 못하게 했으면서, 왜 이제 와서. 물론 이 말을 해야 하는 실제 대상이 치료자가 아님은 그 순간에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 말을 해야만 했다. 왜 이제 와서 그게 내 선택이라고 하냐고.
여전히 많은 것들이 붕 떠 있는 기분이다. 가끔은 내가 정말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있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고, 여전히 많은 것들이 불확실하고, 나는 어떠한 존재감도 없는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순간 지난 주에 병원에서 내가 무심코 내뱉었던 말이 생각난다.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아요.
‘그럴 일’이란, ‘자살’에 대한 말이었다. 조금 더 맥락을 붙이자면, 이런 대화가 오갔다.
“저는 아직 상상이 잘 안 돼요. 한 5년 뒤, 10년 뒤에, 외적인 거 말고,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있을까요? ..이 말을 하면서 신기한 게, 저 원래 이런 생각조차 안 했거든요. 원래는 1월 1일에 올해의 목표는 자살이야! 이러고 몇 년 살았었는데”
“굉장한 발전인 것 같기도 하네요. 5년, 10년 뒤의 모습을 상상한다는 게”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죠~”
“물론 그렇지만, 제 말은 ‘자살’ 얘기입니다”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선생님이 아무렇지 않게 ‘자살’이라는 단어를 직접 꺼내신 순간, 나는 자연스럽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세상에, 몇 년 전만 해도 죽으려고 옥상에 올라가고 마포대교에 가고 약을 털어먹던 사람 입에서 나올 대사가 맞나? 자살할 일이 없을 것 같다니.
몇 달 전 의사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셨다. 주변 사람들이 보는 나에 대해 얘기하는 중이었다.
“그동안 자영님이 스스로는 굉장히 수동적인 위치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셨을 것 같아요. 수동적인 위치라는 게,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수동적으로 끌려가면서 매우 힘들어하는, 이 세상의 희생양 같은 존재로 생각해왔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근데 자영님과 가까운 사람들이 보는 자영님의 모습은 그렇지 않고, 스스로 개척하고 스스로 찾아 나서고, 꾸준히 뭔가를 지속적으로 하고 성실하고. 어떻게 보면 자영님이 수동적으로 힘든 환경에서 끌려가는 존재가 아니라, 힘든 상황 안에서 노력도 하고 또 극복해내고 이겨내고 성취해 나가는, 그런 존재라는 거죠. 이런 인식의 전환으로 내 미래나 상황에 대한 관점도 같이 조금 달라질 수 있거든요”
이때 내가 바라보던 나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균열은 점점 늘어났고, 이제는 커다란 금이 되었다. 조금만 힘을 주면 부서질 정도로.
그리고, 이제 정말 내가 ‘주체적 나’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과 작은 열망이 피어 올랐다.
나는 이제 죽고 싶지 않다.
사실은 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