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서 일한다는 것에 대하여

by hyun
거의 평생을 서울에서 살았지만 갈 때마다 설레는 곳이 두 곳 있다. 바로 여의도와 광화문.


삐까번쩍한 빌딩숲이 잔뜩 늘어서 있지만 동시에 조경이 어우러져 있는 곳. 평일 저녁만 돼도 썰물처럼 사람이 빠져나가 한적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곳.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도, 드넓은 길거리가 깔끔하고 깨끗한 곳.


그 중에서도 여의도를 떠올리면 항상 아련한 감정이 따라왔다. 어릴적, 그러니까 우리 아빠가 아직 젊어 좋은 회사를 다니던 유복했던 시절, 아빠를 보러 여의도에 가끔 갔기 때문이다.

아직도 선명히 남아 있는 기억중에는, 주말근무하던 아빠와 점심을 같이 하기 위해 엄마와 동생 손을 꼭붙잡고 사무실을 찾아가, "아빠가 진짜 맛있는 햄버거 사줄게," 하는 아빠를 따라 그 옆에 있던 빌딩의 지하 어딘가로 내려가 버거킹에서 버거를 정말 맛있게 먹었던 추억도 있다.


그리고 좀 더 최근 기억을 되짚어 보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소개팅에서 만났던 친구에게, 해질녘에 처음으로 여의도공원을 거니는 데이트를 하며, 나는 여의도가 참 좋아. 나중에 여의도에서 일하고싶어. 라고 잔뜩 설레는 얼굴로 말했던 기억도 선명하다.



그리고 나는 진짜로 여의도에서 일하게 되었다. 매일아침 8시25분 쯤 여의도역 3번출구에서 나와, 우리 아빠가 일했던 사무실이 있었던 hp빌딩을 지나, 온가족이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버거킹이 있었던 한화빌딩을 지나서, 추억이 많은 여의도공원을 가로지른다.

10살도 채 안됐던 나에게는 그렇게 커보였던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지금보니 너무나도 작다는 사실은 꽤나 충격적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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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기억들이 잔뜩 서린 장소를 매일 오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꽤나 행복한 일이다. 아직 잠이 덜 깨 피곤한 출근길에도, 스트레스를 안고 돌아가는 퇴근길에도 여의도의 반짝반짝함을 보면 마음이 풀린다.

지금은 비록 아빠가 일했던 사무실도, 한화손해보험빌딩 지하의 버거킹도, 그때 여의도공원을 함께 걷던 그친구도 모두 사라지고 없지만, 대신 그 자리에 새로운 기억들로 채워지고 있다.


언젠간 여의도도 지루한 일상의 한켠으로 빛바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특별함으로 오래오래 남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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