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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피언 Dec 25. 2022

우리집에 산타가 없어졌다

불꺼진 크리스마스에 익숙해지기

올해 크리스마스는 유난히 기분이 나지 않는다. 사실 추위에 약해 겨울만 되면 워낙 겨울잠에 드는 곰처럼 움츠러드는 나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열심히 챙기곤 했다. 왠지 12월이 되기 전부터 오너먼트를 산다, 트리를 꾸민다 하며 한 달을 보내고, 당일 날은 아침부터 아이들 선물을 열어보는 걸 사진으로, 영상으로 담으며 설레하곤 했는데 올해는 왠지 별스런 것들을 하지 않게 됐다.


우리집에, 산타가 없어졌다


특별한 이유랄 건 없어서 스스로도 조금 이상하다. 왜일까 곰곰 생각해보면 산타가 없어져서인가 싶다. 분명 어디선가 산타가 열일 중이신 시즌임이 분명하지만 우리집에는 올해 자연스럽게 산타가 없어졌다. 아이들이 크면서 어쩌면 어거지로 산타클로스를 계속 모셔왔지만, 올해는 어쩐지 심드렁해졌다. 아마도 작년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산타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던 둘째마저도 "엄마, 산타는 몇 살일까" 묻더니 "아마 마흔한살(엄마나이) 혹은 마흔네살(아빠나이)이지 않을까"라며 능글능글 웃어버리니 나도 긴장의 끈을 놓아버린 것이었으려나. 애들에게 대놓고 물어도 별로 갖고 싶어하는 것도 없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올해는 안 오셨다. 올해 안 오셨으니 내년도 안 오실테고. 그러니 얘들아 울어도 되겠다. 이제 산타는 없거든.


올해는 이렇게 보냈지만 내년에는 또 이유모를 생기를 흘리면서 장식을 사나르고, 두세달쯤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보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려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오늘의 크리스마스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우리네 삶에 반짝반짝 환하게 빛나는 날이 며칠이나 되겠나. 기분 좀 내보자고 억지로 붙여놓은 불이 꺼지고 나면, 어쩐지 그 반동으로 기분이 더 가라앉기도 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늘 그렇게 차분하고 평안하고 잔잔한 날을 지내는 것은 오히려 나에게 더 필요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산타가 오시지 않아도 우는 아이 하나 없는 것은 아이들이 탈없이 많이 자랐다는 이야기니 어쩌면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도 어쩐지 마음 한켠이 서운한 것을 보면 아이들은 자라는데 나는 어찌 더 미숙해지나 싶기도 하고.

앞으로는 남의 것을 빌려 생기를 돌게 하기보다, 그저 무던하고 잔잔한 날에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기를 불꺼진 트리를 보며 생각해본다. 잔잔하면 잔잔한대로 특별하면 특별한대로 내 삶이 의미있기를. 그래도 아쉬우니 한번쯤은 외쳐본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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