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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피언 Jan 29. 2023

슬램덩크 전집이 나타났다

레트로가 유행이라 다행이다

"오늘 온대"

글자임에도 뭔가 두근두근함이 느껴진다. 남편이 결국 본인의 인생작, 슬램덩크 전집을 주문했는데, 최근 극장판 슬램덩크의 조용한 열풍(?)에 품귀 현상을 보이더니 근 열흘만에 귀한 자태를 드러냈다.


우리 어릴 적, 특히 남자중고딩들, 특히 농구를 좋아하던(어쩌면 이것때문에 농구를 좋아하게 된) 친구들의 인생 교과서 같은 책이 슬램덩크다. 나는 그저 방송 애니메이션을 통해, 혹은 학원, 병원 등에 무료 비치된 책을 조금씩 본 게 다지만 남편은 주인공 이름은 당연하고 등장학교 이름, 명대사를 지금도 기억할만큼 열렬한 팬이다. 타케히코 이노우에가 얼마나 통찰을 가진 작가인지 설명할 땐 이렇게 진지할 일인가 싶을 정도다. 그렇게 좋아하면 전집을 사는게 어떠냐고 여러 번 물었는데 "아니 , 이제 뭘"하던 남자는 이번 극장판 출현에 점점 슬램덩크 얘기가 많아지더니 결국 지름신에게 무릎을 꿇었다.


스무권짜리 특별판을 넣어둘 자리를 아직 마련하지 못하고 식탁 위에 책이 널려져 있던 사이, 학원 시간 때문에 홀로 저녁을 먹던 중일이가 자연스럽게 책을 연다. 넷플릭스에 슬램덩크가 들어왔을 때 재밌다고 보래도 매번 배구 애니메이션 하이큐만 보던 중일이(올림픽의 영향이었다)는 슬램덩크 속에서 하이큐를 찾는다. 이봐이봐, 그 책이 바로 스포츠만화의 원전같은 책이라고.


아무튼 하이큐도 조금 알고 슬램덩크도 조금 아는 나는 아이와 말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지금 읽는 슬램덩크와 15세가 읽는 슬램덩크는 좀 다르겠지만, 그저 아이의 눈높이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거다. 만화책을 보며 깔깔거리는 아이를 보니, 30년 전 유머코드가 아직도 먹히다니, 명작은 명작인가 싶기도 하다.


슬램덩크 말고도 요즘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우리 시대의 것들이 종종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아이돌이 다시 공연을 한다고 유퀴즈에 출연하고, 우리 때 열광적인 인기를 얻었던 곡들이 리메이크된다. 요즘 중일이가 매일 흥얼거리는 노래는 내가 중2 때(헐) 데뷔한 hot의 캔디(중일이에겐 nct의 캔디겠지만)다.


나 어릴 땐 중학생만 돼도 부모님이랑 공통분모가 없었다. 트로트만 들으시던 아빠는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한 랩송이 노래같지 않다고 못마땅해하셨고, 개그 프로그램을 보며 깔깔거리는 내게 저게 뭐가 재밌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흔드시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걸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부모님과 함께 대화할 수 있는 것은 점점 줄어들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보니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세계로 자꾸만 가버리는 딸이 서운하기도,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 같은 당신 모습이 불안하거나 두렵기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어렸고, 뭔가 내 세계에 대한 이해를 거부하는 것 같은 느낌에 서운함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러니 내 입장에서는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레트로가 유행인 시대다보니 내가 강요하지 않아도 나의 시대를, 나의 세계를 아이가 먼저 들어와 구경해주기도 하지 않는가. 아이와 내 소통의 창구가 계속 열려있도록 도와주는 레트로 유행이 좀 오래갔으면 하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나의 세계를 구경하는 중일이처럼, 나도 그의 세계를 들여다보려고 조금은 노력한다. 중일이가 종일 틀어대는 뉴진스, 아이브를 나도 흥얼거린다(사실 너므 흥얼거려서 모를 수가 없기도 하다). 아이가 보는 별 재미 모르겠는 유튜브를 투덜거리면서 같이 앉아 본다. 유튜브보다는 시답잖은 걸 보면서 깔깔거리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듣기 좋아 그저 옆에서 있다. 냥 너의 유년에 마음이 비어있는 시절은 없기를 바라면서. 재미없고 시끄러운 너의 세계를 나는 그저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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