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시장에 꽃 도매상가가 있다. 동네 꽃집보다 싸기도 하지만 시장의 생기와 저마다 미모를 뽀내는 꽃을 구경하는 재미에 처음 찾은 뒤로는 한달에 두세번은 발걸음을 하게 된다.
금요일 오후, 이 곳은 서너시면 닫기 때문에 이 시간이면 사실상 파장 시간이다. 떨이로 나온 하젤 장미가 한단 5천원이라길래 헉하고 발이 멈췄다. 순백에 복숭아빛이 살짝 도는, 부케에도 많이 쓰인다는 이 장미는 지난 주 졸업시즌에는 단에 2만원도 넘게 팔았다.
물론 이 5천원짜리는 아마 아주 좋은 상태는 아닐 것이다. 슬쩍 들여다보니 두 단이 남았는데 그 중 한 단은 그래도 상태가 썩 쓸만하다. 달라고 했더닌 내가 본 단은 내려두시고 상태가 더 안 좋은 단을 내미신다. "사장님 저는 저 단이 더 좋은데요" 했더니 사장님이 잠깐 멈칫하시다 "두 단 9천원에 안 할랍니까? 한 단 남으면 팔기가 어려워서"라신다. 나도 잠깐 망설였지만 도매시장에서 너무 깍쟁이처럼 구는거 아니다 싶어서 그러마고 들고 돌아왔다.
집에 와서 다듬다보니 역시 한 단이 상태가 더 좋지 않다. 그래도 물병에 꽂아 물을 올리면 번듯하게 살이 오르긴 할 거다. 아주 상품은 아니었으니 아주 오래 가진 않아도 그래도 며칠은 그 자태와 향기를 뽐내며 오고 갈때마다 나를 즐겁게 해 줄 것이다.
흥얼흥얼 콧노래를 해가며 즐거운데 툭 한 대가 고개를 숙여버린다. 자세히보니 대가 꺾여있다. 유난히 시들해보이더니 아마 대가 꺾여서 그랬던 것 같다. 아이고, 어디서 그랬을까. 고운 자태가 아깝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다듬고 나온 이제는 쓰레기인 잎사귀들과 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다시 보니 너무 아깝다. 대가 꺾였어도 장미, 너는 너무 예쁘구나.
다른 대들보다 좀 짧게 잘라 앞쪽 밑에 섞어본다. 그래, 너는 키가 좀 작긴 하지만 그래도 장미는 장미구나. 아직 쓰레기가 되기엔 너무나도 꽃이구나.
짤뚱한 장미는 기특하게도 꺾인 줄기로 물을 잘 올렸다. 아이고 버렸으면 어쨌을까 싶게도 그야말로 물오른 꽃의 절정을 한껏 뽐내고 있다. 꺾였어도, 잘리지는 않은 목은 적은 양이라도 꽃을 살릴 정도의 물은 길어올리는 모양이다.
보고 있으니 흐뭇해진다. 살아있는 것의 생기라는 게 이런 것인가 싶다. 시들했던 것이 한껏 물오른 모습을 보며 나도 그 생기를 전해받는다. 그 생기를 지켜주려고 부지런히 새 물을 받고 꽃을 오래보는 법을 검색한다. 아름다운 것을 곱게 지켜내고 싶은 마음이 자꾸 꽃시장에 들락거리게 하는 것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