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구르 식당의 스파이시 치킨 photo by 슬리피안 위구르 식당의 양꼬치구이 photo by 남편 '위구르'를 아시는지. 숙소를 옮긴지 얼마 안 됐을 때 구글 지도를 구경하다 '위구르 식당'을 발견했다. 위구르라니. 뉴스에서나 보던 단어를 식당 이름에서 발견하고 참 생소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별점이 5점에 가까웠다. 8월 21일 현재 4.8점. 궁금했다. 숙소에서 도보 5분 거리의 이곳이.
전날 공원에서 둥글거리던 우리는 숙소로 향했다. 오늘은 뭘 먹을까하다가 위구르 레스토랑 생각이 났다. 한번 숙소에 들어가면 나오질 않는 게으른 여행자들인 우리는 마침 나와있기 때문에 이 곳에 가기로 했다. Tarim Uyghur Restaurant
들어가자마자 조용해보이는 한 종업원이 자리를 안내해줬다. 이날도 상당히 걸어다닌 우리는 배가 꽤나 고파서 마구 주문하기 시작했다. 영국이 양고기가 맛있다는 얘길 들어 양고기 꼬치, 뭔가 닭볶음탕 느낌이 나는 매운 닭요리. 오이 샐러드, 공깃밥 등등.
빠르지 않은 속도로 음식이 나왔는데 우리는 한입씩 먹고 진실의 미간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진짜, 너무 맛있었다. 특히 스파이시 치킨. 뭔가 익숙하게 생긴 비주얼이었는데 매운 걸 좋아하지 않는 둘째마저 "아 너무 맛있는데 너무 맵다"며 연신 입에 닭고기를 집어넣었다. 결국 우린 너무 매워서 공깃밥을 하나 시켰는데 여기엔 큰애가 반했다. 엄마, 이 밥 뭐야? 너무 맛있어!
찰밥도 아닌 것이 뭔가 간도 좀 된 것 같은데 윤기기 잘잘 흐르는 이 밥은 대체 무엇인가. 큰애가 기념품으로 위구르 쌀을 사가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어쩜 영국 쌀인지도 모르지만).
한창 극찬하며 먹고 있는데 사장님이 다가와서 음식이 괜찮냐고 물어봤다. 쌍따봉을 날려줬더니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흥분한 사장님이 어떤 영화를 아냐면서 자기 핸드폰을 막 찾아왔다. "이 영화가 어떤 소녀에 대한 이야긴데 한국전쟁이 어쩌고 저쩌고" 변변찮은 리스닝 실력에 흔들릴 때쯤 번뜩 얼마 전 어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본 영화 생각이 났다. 한국전쟁에서 부모를 다 잃은 소녀를 동맹으로 참여한 터키 군인이 지극정성으로 돌봤던 이야기, 영화 '아일라'였다. 같이 흥분하며, "오, 나 그 영화 이야기를 봤다"고 하자 사장님이 너무 반가워했다. 알고보니 사장님은 터키 사람.
터키? 튀르키예? 위구르 식당에 튀르키예 사장님? 뭐 그럴 수도 있지, 생각했지만 궁금했다. 요즘 인터넷엔 없는 이야기가 없으니까 검색을 해봤더니 나무위키 튀르키예와 위구르 관계에 관련 이야기가 나와있었다. 둘은 같은 튀르크계, 중앙아시아 이슬람 문화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친구처럼 잘 지낸다고 한다. 종교 문제로 중국 정부에게 탄압받아온 것으로 알려진 위구르인들이 튀르키예로 망명하는 경우도 상당한 모양이다.
맛있는 음식 덕에 시사 상식도 쌓아가면서 신나게 먹고 있는데 갑자기 아까 그 말없고 앳돼보이던 남자 종업원이 우리 남편에게 자기 머리를 툭툭 치며 쌍따봉을 날린다. "유얼 헤어 이즈 나이스." 응? 우리 4식구는 한 3초쯤 멍때리다 정말 빵터졌다. 우리 남편 머리가 진짜 잘 없는 스타일이긴 하다.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아주 특이하진 않은데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는 아.. 뭐라 설명할 말이 없네. 하지만 이게 런던에서도 이럴 줄은 몰랐다. 남편은 맞따봉을 날려줬다. "땡큐, 유 얼소 나이스!!"
암튼 분위기도 좋고, 기분도 좋은 충만한 식사를 한참에 걸쳐 마쳤다. 어느 정도였냐면 둘째가 나한테 "내가 본 것중에 엄마가 제일 많이 먹었다"고 할 정도였다. 닭도리탕에 도삭면처럼 넓은 국수가 들어가있었는데 당과 고지혈증 때문에 국수를 조심하던 내 고삐를 다 풀어버렸다. 런던에서의 남은 날이 얼마 안돼 다시 못 가보고 온 게 참 아쉬운 식당이다.
다음 날은 두 번째 투어가 예정돼있었다.
역시 집결 장소는 셜록홈즈 박물관 앞.
아이들은 이날을 별렀다. 투어가 기대되는 건 아니었고.. 이전 투어 때 아침으로 근처 베이글 집에서 베이글과 도넛을 먹었는데 엄청 맛있었다며 인근에 갈 일이 한번 더 있다니 그 집 갈일만 고대했다. 쇼디치에서 갔던 유명한 베이글 집보다 여기를 더 좋아했는데 따뜻하게 데워주는게 컸던 것 같다.
이날 코스는 스톤헨지-바스-코츠월드.
스톤 헨지 photo by 남편 henge는 거석, 큰 돌이라는 뜻이다. 그니까 되게 큰 돌이라는 뜻이다. 사진이 눈에 익지 않으신지? 강화도 고인돌과 비슷하지 않나. 가이드님도 친구들한테 사진 보내주면 "강화도냐"고 할 사람들 있을 거라며 웃으셨다.
가까이 가보니 크긴 되게 컸다. 서있는 돌들이 절기, 특히 하지를 맞출 수 있도록 배치된 걸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정이라고 한다. 양에서는 하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데 며칠 전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서도 나왔고, 북유럽 다큐멘터리에서도 하지 축제를 다뤘다.
우리는 스톤 헨지도 대단해보였지만, 그 주변에 도무지 높은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평원인 점이 참 부러웠다. 이런 곳에서 밤에 별을 보면 얼마나 잘 보일까. 둘째가, "엄마 나 지금 지구 절반의 하늘을 보고 있는 것 같아"라고 했다. 그렇구나. 지구 절반의 하늘.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이 광경을 잘 담아두고 가자.
영국, 잉글랜드 땅은 80%가 평지라고 한다. 그나마 좀 높은 곳은 하이랜드라고 한쪽에 몰려 있단다. 최근 날씨가 너무 덥고 일교차, 연교차가 너무 큰 걸 보고 애가 "단군할아버지 부동산 사기 맞으셨나보다"고 해서 깔깔 웃었는데 영국 조상들은 부동산에 와이루라도 좀 먹이셨나.
다음 코스는 바스. 그렇다. '목욕'할 때 그 bath다. 로마인들이 서기 1세기에 유럽을 정복하고 이 지역에 목욕탕을 만들었단다. 그 유명한 로마인들의 목욕 문화를 여기에도 남긴 것. 그리고 귀족들에게 집을 한 채씩 주기는 힘들어 만든 게 로얄크레슨트라고 한다. 초승달 모양의 로얄크레슨트. 대단한 사이즈의 말하자면 아파트라고 해야 하나. 넷플릭스에서 인기가 많았던 브리저튼도 여기서 찍었고, 레미제라블에서 자베르 경감이 뛰어내린 다리도 여기 있다.
이 곳은 도시 전체가 유적지였다. 이탈리아에 온 건지 영국인지 알 수 없을 정도. 런던에서 접근성도 좋은 곳이라 따로 자유여행으로도 한 번 오고 싶은 곳이었다.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자베르가 뛰어내리는 장면을 여기서 촬영했다.photo by 남편 초승달 모양으로 지어진 로얄 크레슨트 photo by 남편 점심은 바스에서의 자유시간에 먹어야했는데 우리 선택은 이탈리안 식당이었다. 자유시간이 짧다보니 간단한 걸 먹고 관광지를 둘러보는 걸 주로 추천했지만, 우리는 뜨거운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곳에서 제대로 밥을 먹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진짜 대단한 직사광선에 체력이 좋은 남편도 약간 멍해졌다. 가이드님은 여기가 영국인지 이탈리아 남부인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였다. 뭐 그래서 사진이 없다. 그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는 이야기. 구글 평점도 높았고, 평점대로 정말 맛있었는데 에어컨이 없었다. 그래도 그늘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니 훨씬 괜찮아져서 관광할 체력을 충전할 수 있었다.
마지막 목적지는 첫 투어에서도 갔던 코츠월드. 같은 곳을 가도 좋을 것 같았는데 또다른 마을이 있었다. 다른 곳들보다 골짜기로 한참 들어가던 코츠월드 마을 캐슬쿰. 계곡이 있는 성이라는 뜻이란다.
정말 소박하고 조용한 마을이어서 우리도 좀 조용히 돌아다니게 됐다. 오래된 교회당 내부도 구경했는데 뭔가 분주했다. 가이드님 설명으론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 같다고. 의자마자 매달린 안개꽃 장식이 소담하니 예뻤다.
지난 번 투어 가이드님은 오후 마지막 투어 간식으로 크림티를 추천하셨는데 이번 투어에서는 아이리쉬펍의 기네스를 추천받았다. 이날따라 우리 투어에 사람이 상당히 많았는데, 여기도 서비스가 느려 애를 먹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사장님이 어떻게든 손님을 더 받으려고 애를 썼을텐데, 여긴 야..우리 자리 별로 없는데 니네 이렇게 많이 오면 어떡하냐.. 뭐 이런 분위기.
기네스는 정말 기가 차게 맛있었다. 참고로 나는 뭔가 비위에 안 맞아서 흑맥주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집 기네스는 정말 훌륭한 맛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지? 가이드님은 이 집이 기네스의 비법을 뭔가 제대로 전수받은 집이라고 했다. 비법이 있긴 있나보다. 나를 흑맥주로 홀리다니.
가이드 투어의 장점은 에어컨이 있는 공간, 차가 확보된다는 점. 스톤헨지와 바스와 캐슬쿰의 추억을 안고 여행은 막바지로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