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리피언 Oct 01. 2022

내 아들보고 나쁜 녀석이라니!

고맙다, 아들 친구야

개학하면 너의 본모습을 다 폭로해버리겠어, 나쁜 녀석


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여름방학, 안방에서 들려오는 아들 친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싸우나?

하지만 스피커폰으로 들려오는 녀석의 목소리는 느낌상 즐겁다. 그러니까 장난이라는 말.

그런데 내 아들 본 모습이 뭐길래?


아들은 반에서 별명이 '현자'라고 했다. 언젠가 학급회의에서 뭔 의견을 냈다는데 선생님이 "우리 반에 현자가 있구나" 하셔서 생긴 별명이란다. 아이들 톡방에서 아이에게 '현자야'라고 부르는 애가 있을 지경(요즘은 변형돼 감자라고도..).


융통성 없는 둘째가 교과서에 나올 법한 비님 같은 소리나 하고 있는게 선생님 입장에서는 예뻐서 붙여주신 별명이었던 것 같다.


영광스런 별명이지만 나는 좀 걱정이 됐다. 이 녀석이 친구들에게도 틈을 안 주면 사람 사귀기가 쉽지 않을텐데. 동네 친구녀석들이 요즘도 "xx야 너무 착하게 살면 안돼"라고 조언 아닌 조언을 한다는데 괜찮을까.

사전 같은 둘째녀석

다른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둘째는 좀 독특한 데가 있는 녀석이었다. "선비님이야 뭐야" 싶었던 녀석에 대해 특히 내가 했던 가장 큰 걱정은 사회성이었다. 저 쓸데없이 대쪽같은 녀석이 각양각색 남자애들 사이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실제로 1학년 가을 쯤 "내가 왕따를 당하는 것 같아서 홈스쿨링을 해야할 것 같다"고 말해 나를 들었다 놨던 녀석이기도 하다. 세상사 책으로만 배운 녀석은 책같지 않은 실제 세상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심리검사, 심리치료 등을 통해 이 녀석에 대해 좀 더 알게 된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이는 아주 편안해져야 본모습을 보여주는 성격이. 말하자면 편치 않은 이들에게는 엄청나게 예의를 차리는 녀석이라는 얘기.


그런 녀석이 친구와 저렇게 보통의 남자아이들이 하는 대화를 하고 있다니. 내가 새삼 감개무량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주말이라고 몇 시간씩 친구와 게임만 하고 있 녀석의 모습에 짜증이 나다가도 아, 너는 이제 잘 자라고 있구나 싶으니 참 엄마 마음이란게 뭔지.


내 아들의 본 모습을 아는 친구야, 나는 너에게 참 고맙다.   아들 본 모습을 알아줘서. 앞으로도 잘 지내렴.


나의 아이야, 세상에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니 반갑구나. 편안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 반가워. 너를 지키면서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렴.

매거진의 이전글 정산기가 정이 없네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