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리피언 Aug 31. 2022

정산기가 정이 없네요.

로봇 세상이 온다면

얼마 전 아이와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는데, 정산기에서 주차료를 내야 한다는 메시지가 나온다. 무료주차 되는 시간에서 조금 지난 모양이다. "에이, 몇 분 안 지났는데." 이상하게 주차료는 많든 적든 참 아깝다.


운전석에서 지갑을 뒤적이고 있자 이걸 지켜보던 아이가 말했다. "엄마, 저 정산기 참 정이 없다."

그 말이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깔깔 웃다가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요즘은 참 주차료 정이 없구나.


요즘 정산기는 정말 정이 없다. 옛날에도 주차요금은 내야 했지만, 보통 주차하고 나가는 입출구 쪽에 주차요금 부스가 있고, 그 안에 사람이 있었다. 그 때는 이런저런 사정을 봐주는 경우가 있었다.

우수리는 떼고 계산해주거나 무료 주차 시간에서 몇 분 정도 넘어가도 모르는 척 차단기를 열어주시곤 했다.


그런데 요즘 많은 건물에서 무인 정산기를 설치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사람을 부를 수 있지만, 호출 버튼 너머에서 대답한 사람은 그 건물에 없는 경우가 많다. 주차관리대행 업체 사람인데 그 업체 사무실에 있어서 현장 사정을 설명하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봐주는 것도 거의 없다.


이것 때문에 문제가 복잡해지는 경우도 왕왕 있다. 얼마 전에는 마트에 갔다 나오는데 차단기 앞에 한 차가 움직이질 않고 있다. 잠시 후 운전석에서 사람이 내려 호출을 누르는 것 같은데 별다른 움직임은 없고, 운전자가 갑자기 바로 뒤차인 내게로 다가왔다.


"아니, 정산을 다 하고 나왔는데, 문이 안 열려요"라는 말에 정산기 화면을 보니 수백만원의 주차 요금이 찍혀있었다. 뭔가 오류가 난 모양인데 호출 버튼을 눌러도 대답이 없다는 것이 앞차 운전자의 하소연이었다. 마트들의 열악한 주차장 입구 구조상 내가 후진할 상황도 아니고, 내 차 뒤에도 차들이 슬금슬금 올라와 붙기 시작한 터라 앞차가 안 빠지면 방법이 없다. 나랑 앞차 운전자는 정신없이 정산기에 붙은 전화기로 연락을 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한참을 응답하지 않던 세 대의 전화기 중 한 대에서 사람 목소리가 나왔다. 뒤차 운전자들에게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있던 앞차 운전자가 노발대발해 소리를 질렀다. 빨리 차단기 올리라고!


고속도로 톨게이트도 비슷한 상황이다. 아직 직원들이 징수를 하는 곳도 있지만, 무인부스도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그러고보면 주차에서 없어진 건 사실 정이 아니고, 사람. 정은 사람에게만 있는데 사람이 없으니 정도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저런 사정을 봐달라고, 이건 좀 봐주면 안되냐고 진상을 부리던 사람들이 많았을텐데, 이제는 사람이 그런 일을 겪지 않아도 돼 다행인 부분도 있다.


둘째는 로봇에 관심이 많다. 특히 귀찮은 일을 대신해주는 로봇이 빨리 개발돼 집집마다 한두대씩 두고 썼으면 좋겠단 말을 자주 한다. 아이에게 물었다. "로봇이 있으면 니말대로 정이 없는데, 그래도 좋아?" "괜찮아. 그런 것까지 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들면 되지."

아이는 일말의 고민없이 대답한다. 아따, 시원시원하니 좋구나. 괜한 걱정을 했구나. 응원한다, 너의 그 패기!

매거진의 이전글 내 아이는 엄마의 맛을 무엇으로 기억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