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여기저기 토론토

날씨가 추워졌는데 안 가 본 곳이 아직 많다

by 권유
KakaoTalk_20191118_124400383.jpg 보스턴에서 토론토로 돌아 오던 날, 눈이 정말 많이 왔다. 일주일 정도 눈이 쉬지 않고 왔다고 한다. 오늘은 진눈깨비가 내린다.


지난 11월 7일 밤 버스를 타고 뉴욕에 가서 6일동안 뉴욕-보스턴 여행을 했다. 그러던 중 사촌 오빠와 만나서 대화할 시간이 있었는데, 12월 중순 토론토를 떠날 때까지 할 일이 없어서 걱정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오빠는 토론토 구석구석 여행하면서 보내면 되지 않냐고 물었지만 나는 이미 그 과정은 9월에 모두 마친 데다가 날씨가 추워졌다고 답했다. 그러고 나서 토론토에 돌아와 생각을 해 봤다. 정말 난 토론토에서 많은 곳에 가 봤는가? 휴대폰을 두고 나와도 토론토 다운타운에서 길을 잃지 않는 나를 보고 토론토인이 다 됐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곰곰이 생각해 보니 토론토에서 가보지 않은 장소들도 많았다. 가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10년을 넘게 산 고향 진주도, 3년 동안 고등학교를 다닌 안동도, 3년째 대학을 다닌 서울도 마찬가지다. 익숙한 장소들은 눈 감고 다녀도 될 정도로(과연) 친숙하지만, 낯선 곳은 여전히 존재한다. 진주나 안동 같은 작은 동네들도 그런데 캐나다에서 제일 큰 도시인 토론톤가 고작 몇 달 산다고 빠삭해질 리는 없다. 그나마 교환학생으로 왔으니 여기저기 다녀보자는 마인드 덕에 그나마 업타운과 다운타운을 왕래한 게 토론토에 대해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나 할까. 여하튼 그래서 오늘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토론토에서의 공간들과 아직 가 보지 못했고 영원히 못 갈 수도 있는 토론토의 장소들을 기록해 보려 한다.


1. 이튼센터 (Eaton Centre)


20190829_105144.jpg 이튼센터는 통유리라 햇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뉴욕에서 온 친구가 월드 트레이드 센터와 비슷하다고 말했는데 내가 그곳에 가보고서는 이해했다.

토론토 다운타운에 있는 쇼핑몰이다. 웬만한 중요한 브랜드들이 모여 있어서 쇼핑하기도 좋고, 군것질하기도 좋은 곳이다. 엄마와 처음 토론토 시내를 둘러 볼 때 와 본 후로 이튼센터는 다운타운 마실을 나와 덥거나 추운 내게 소중한 보금자리(? 치고는 너무 큰데?)가 되어 주었다. 내부에서 와이파이가 잘 터진다는 점도 한 몫한 듯하다.

아이쇼핑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을 워낙 좋아하는지라 한 번은 별 이유 없이 다운타운에 나왔다가 그냥 이튼센터에서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이튼센터에서 캐나다 생활을 위한 유심칩을 구매했고, 쿠바에 가기 위한 여름 옷을 쇼핑했으며 겨울 나기를 위해 내복과 목도리도 샀다. 처음 이튼센터에서 자라나 h&m 같은 의류 브랜드들을 구경하면서 한국에서 옷을 좀 많이 가지고 올걸 후회를 했다. 캐나다는 옷이 별로 싸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온타리오 주는 세율도 정말 높은 편이라 만일 캐나다에 잠시 거주할 계획이 있다면 옷 같은 건 꼭 한국에서 사 오길 권하고 싶다.

이튼센터가 내가 좋아하는 장소인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좀 필요할 듯하다. 어떤 때는 얼마 전에 봤던 spa 브랜드의 옷들을 또 구경하는 데서 기쁨을 느끼는 반면, 심적으로 문제가 있는 시기에 이튼센터 한 가운데에 있으면 또 급격히 우울해지기도 했다. 하여튼 토론토 생활에서 빼놓을 수는 없는 곳이다.


2. 핀치(Finch)


KakaoTalk_20191118_131848177.jpg 핀치에서 먹은 야채 순두부. 반가운 마음에 시켰는데 비건은 아니었을 것으로 사료되지만 배부르고 등따셨다.

토론토에는 한인타운이 두 개 있다고들 한다. 하나는 다운타운 쪽 Christie역 일대고, 하나는 업타운의 핀치다. 다운타운쪽 한인타운이 더 오래됐고, 핀치 쪽은 개발이 시작된지 얼마 안 된 듯하다. 곳곳에 최신식 콘도 건물들이 서 있는데 저층부를 보면 2000년대 초반 바이브의 한국어 간판들이 즐비하다.

토론토 생활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한국의 문물이 그립다거나 한국의 무언가를 접해야 해서 가까운 한인타운을 찾게 된다. 우리 기숙사에서는 다운타운보다 핀치가 더 가까우니까 당연히 핀치를 비교적 자주 가게 되었다. 노래방이 너무 그리워서 친구들과 찾아간 '트위스트 노래방'은 한 시간에 25불이었는데(다운타운과 비교하면 그것도 싼 가격이었다) 비교적 낡은 설비 때문에 사장님께서 직접 마이크체크를 하셔도 다른 마이크 하나는 잘 안 나오는 슬픈 일이 있었다. 일반 슈퍼에 없는 종류의 컵라면이 먹고 싶을 때도 H마트에 가기 위해 핀치에 갔고, 거기서 한국에서도 안 먹던 꼬북칩을 샀다. (여담이지만 영화 '미성년'을 보고 나면 꼬북칩이 너무 먹고싶다. 나는 그 영화를 한국에서 두 번이나 봤는데 그 이후로 매일같이 꼬북칩 생각을 했지만 캐나다에 오고 나서야 먹은 것이다. H마트에 무한한 감사를.) 워낙 한국인들이 많은 동네라 TD 등 은행에 가면 한국어 구사 가능한 직원이 있다. 그래서 내 계좌를 오픈할 때도 한국어만 썼다. 이쯤 되니까 여기에 살면 영어를 할 줄 알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서울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은 토론토 전체가 무척 질린 적이 있었다. 좀 혼자 있고 싶어서 온 교환학생인데 생각보다 혼자 있을 수도 없고, 토론토는 어딜 가나 한국 사람들이 눈에 밟혀서 낯선 곳에 온 기분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두부를 먹으면서 생각했다. 당장 익숙한 장소, 익숙한 사람들 품으로 돌아가지 못할 때 그것을 재현해 둔 공간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훈훈해진 마음으로 바로 옆집이었던 공차에 갔다가 거기서 5달러로는 아무것도 못 사먹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쓸쓸히 집으로 갔다.


3. 차이나타운 일대


20190830_202155.jpg 흔들린 사진이지만 볼 때마다 묘하게 매력있어서 몇 번 우려먹은 사진임에도 또 쓴다. 아마 여기 온지 얼마 안 됐을 때 숙소에 돌아가는 길에 찍은 사진이지 싶다.

사실 여기가 차이나타운 일대라는 말로 표현되기 적합한지 잘 모르겠는데, 여하튼 차이나타운을 자꾸 지나가게 되는 Saint Andrews-Osgoode-Saint Patrick역 일대를 말한다. 차이나타운이 그 사이에 있으니까 차이나타운 일대라고 표현해 본다.

이 동네는 토론토 다운타운에서 이때까지는 내가 제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동네다. 어쩌면 처음 잡은 숙소가 이 근처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밤 늦게 토론토에 도착해서 처음 먹은 음식은 이곳 차이나타운의 딤섬이었다. 엄마를 보내고 혼자 이 일대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해지는 하늘과 벽돌 건물들이 그렇게 잘 어울려 보일 수 없었다. 개강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근처에서 토론토 국제 영화제가 열렸고 당연히 구경을 갔다. 여기저기 여행을 하기 위해 꼭 들려야 하는 coach terminal도 근처에 있다. 토론토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시간도 이 근처에서 식사를 하며 보내기도 했다. 그 모든 시간들이 예쁜 하늘을 돋보이게 해주는 따뜻한 벽돌빛들과 함께한다는 사실이 참 좋다.

사실 그렇게 깔끔한 동네는 아니다. 업타운에 있다가 다운타운에 가면 진동하는 대마 냄새나 굴러다니는 팀홀튼 쓰레기들이 불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동네가 내게 토론토의 첫인상이고 갈 때마다 에너지를 얻는 곳이라는 점에서 항상 정이 가고, 한국에 돌아가고 나서도 기억에 많이 남을 듯하다. 이제 여기도 눈이 많이 쌓였을 텐데 또 놀러 가야겠다.


4. 몇 번 안 가 본 곳들과 가보지 못한 곳들


KakaoTalk_20191118_135342131.jpg Eglington의 De Mello Palheta Coffe Roasters에서 마신 플랫화이트. 가게 안에 벌이 있었지만 분위기가 좋은 카페였다.


그 외에도 토론토에는 내게 자잘한 즐거움과 안식을 안겨 준 여러 장소들이 존재한다. 토론토에 온지 얼마 안 됐을 때 엄마와 관광객 느낌으로 돌아다닌 장소들도 좋았다. 다신 안 올 거라 생각했는데 뉴욕에서 친구가 오자 그 장소들을 그대로 다시 데려가게 된 것도 재미있었다. 토론토 대학교에서 교환 생활을 하는 친구를 만난 덕에 토론토 대학교도 구경했다. 요크대가 작고 귀엽게 느껴졌다. 자잘한 생활 전반의 일들을 마치고 노스욕 지역에 지겨움을 느낀 날이 있었다. 그 날은 내가 있는 Lawrence역에서 조금만 나오면 있는 핫플 Eglington역 일대에서 (사실 유심 연장하러 간 거지만) 여유롭게 커피를 마셨다. 토론토에서 그래도 여러 카페에 갔는데 유독 이 곳이 기억에 남는 건 왜일까? (인스타에 기록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아쉽게도 토론토 아일랜드를 아직 가 보지 못했다. 별 거 없다고들 하기도 하고 날씨도 추워져서 아마 가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가 보고 싶었던 토론토 아일랜드는 여름 휴가 분위기가 물씬 나는 귀여운 휴양지로서의 토론토 아일랜드였기 때문이다. 나름 수영복도 챙겨 왔는데 토론토에서 한 번도 입지 못해보고 떠난다니 마음이 좋지 않다.

뉴욕에서 친구가 왔을 때 원래는 같이 세인트 로렌스 마켓 구경을 갈 예정이었다. 밴쿠버의 그랜빌 아일랜드도 워낙 좋아했고 심지어 약간 심심하기까지 했던 몬트리올의 장딸롱 마켓도 즐겁게 구경했던 시장구경 쳐돌이인 나였기에 은근 기대했다. 그러나 왠지 몰라도 그날 세인트 로렌스 마켓은 문을 닫았고 아쉬운 마음에 그 옆에 있는 발작 커피에서 커피만 한 잔 마셨다. 가능하다면 떠나기 전에 시장 구경도 하고 발작 커피도 또 가서 이번에는 핫초코를 마시고 싶다.

교환학생을 같이 온 언니가 켄싱턴 마켓을 가 보더니 내가 너무 좋아할 것 같다고 말해줬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잔뜩 있다고 한다. (커피, 맥주, 비건푸드, 탄수화물 등.) 언니가 같이 가쟀는데 가려면 서둘러야 할 것 같다. 언니가 나보다 훨씬 일찍 토론토를 떠나기 때문이다. 하나둘 토론토를 언제 떠나는지, 토론토를 떠나고 어디에서 남은 일정을 소화할 예정인지 이야기하고 있다. 내 교환학생 생활이 끝나간다는 이야기겠지. 이렇게 구석구석 매력적인 토론토인데 떠난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토론토가 지겹다고 노래를 불러 댔던 지난 날이 조금은 원망스럽게 느껴진다. 지겨워하지 말고 좀 더 온몸으로 느낄 걸 그랬다.

추워도 열심히 돌아다녀 보자.


번외. 여행지


KakaoTalk_20191118_140730012.jpg 한동안 내 카카오톡 프로필 배경사진이었다.

토론토 구석구석도 좋지만, 여기 있으면서 밖으로 나간 기억들도 중요한 나의 일부가 되어 가고 있다. 그 중에서는 몬트리올이 제일 그립고, 최근에 다녀온 뉴욕과 보스턴도 벌써 눈에 밟히고, 따뜻한 쿠바도 아련하다.

얼마 전 과제 때문에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이 소설에는 훨씬 중요한 의의가 많지만 지금 내 상황에서 눈에 밟히는 장면이 있다. 김지영의 엄마인 오미숙은 딸들의 방을 마련해주면서 그 벽에 세계지도를 붙이고 말한다. 세계가 이렇게 넓고 서울은 점이다. 너희는 이 점 같은 서울에 복작복작 살고 있는 거야. 낯선 도시에 발을 들이고 토론토에서의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이 넓다는 걸 자꾸만 느끼게 된다. 서울에 돌아간 내 삶은 점 같은 서울에 천착한 채 이어지게 될까?




오늘의 트리비아


- 여행을 다녀와서 정신도 없었고, 무엇보다 지독한 편두통을 앓았다. 아마 최고로 오랜만에 올리는 브런치 글이 아닌가 싶다.

- 글감도 많이 떨어진다. 새로운 글감이 필요해..!

- 뉴욕-보스턴 여행기는 안 올릴 것 같다. 여행도 하긴 했지만 보통 사람들을 만나서 많이 떠들었고, 여행기를 올리기엔 애매한 감상을 얻은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은 엿새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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