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최악의 하루를 보내고 나서
오늘 있었던 일
어젯밤에 오늘은 산책을 하겠다고 다짐하며 잠들었는데 눈을 뜨기도 전에 빗소리부터 들렸다. 이대로 계획이 틀어지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아침부터 애인과 별 시덥잖은 이유로 싸웠다. 평화가 찾아 온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이지 옹졸한 이유였다. 그렇게 기분을 망친 상태로 밖으로 나섰다. 오늘은 교환학생 생활을 같이 한 언니의 생일이었기 때문에 케이크를 픽업하러 가야 했다. 날씨가 여전히 흐렸지만 별로 춥지도 않고 비도 오지 않아서 도보 40분 거리를 음악을 들으면서 걸어갔다. 케이크를 찾아 나서는 길에 초를 안 샀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초를 사러 돌아갔다가 왔다. 그쯤 되자 돌아갈 때는 걸어 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가 급하게 정류장에 서서 케이크 상자를 들고 뛰었다. 그래도 버스에 앉으니까 몸은 편했는데 내리자마자 비가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쏟아졌다. 아까 그쳤으면서,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우산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궂은 날씨에 우산과 케이크와, 하여튼 모든 걸 들고 있는 기분은 마치 세상의 짐은 내가 다 진 것 같았다. 기숙사에 도착해 공동현관문을 열려고 하는데 카드지갑에 잘 꽂혀 있어야 할 카드 키가 보이지 않았다. 외출 전 점심을 먹기 위해 전자레인지를 쓸 때도 썼던 카든데... 기억을 되살려 보니 케이크 가게에서는 있었다. 길 바닥이나 버스에 흘린 게 분명했다. 퇴사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난 카드 키를 재발급 받고 추가 비용을 내게 생겼다. 그 사실을 깨닫고 하우징 오피스에 가서 재발급 신청을 하려고 아까 입고 나갔던 패딩을 집어들었는데 기장이 긴 편인 내 패딩의 아랫부분에 노란색 얼룩이 잔뜩 묻어 있었다. 오늘은 어디 딱히 앉은 적이 없으니 언젠가 어딘가 잘못 앉아서 생긴 얼룩임에 분명했다. 캐나다에서 가지고 있는 내 유일한 패딩이었다. 와 진짜 최악의 하루다, 그렇지 않은가?
손에 잡힐 듯한 귀국 날짜와 삶이 된 토론토
어쩌다 보니 출국 디데이와 귀국 디데이를 같이 세고 있다. 출국 디데이는 오늘이 출국한 날짜로부터 얼마나 됐는지 보여 주는 디데이다. 귀국 디데이는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날짜로부터 오늘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나타낸다. 두 디데이 카운터에 따르면 글을 쓰는 이 시점, 난 한국을 떠난지 103일 됐고 돌아가는 날까지 36일 남았다. 100일은 수능 때부터 항상 짧지만 길게 느껴지는 기념비적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을 이미 넘어서 버렸다는 게 기분이 이상하다. 한 달을 보통 30일이라고 하니까 36일 남았으면 한 달 조금 더 남은 것이다. 미 서부 여행이 열흘로 예정되어 있으니까 토론토에서 보내는 시간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수업은 내일이면 다 끝난다.
아주 피곤하고 침울하며 분노에 가득 찬 하루 전반전을 치른 오늘, 그래도 저녁에 Keele 캠퍼스에 건너가서 언니의 깜짝 생일 축하를 해 주고 라운지에서 친구들과 케이크를 갈라 먹었다. 초콜릿 트러플 케이크였는데 무지 달고 맛있었다. 언니는 우리가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서 있는 모습을 보고는 정말 좋아해 줬는데 내가 다 기뻤다. 토론토에서 동고동락한 친구들과 처음 다같이 모인 날을 기억한다. 국제처 교환학생 자격으로 요크대에 오게 된, 나를 포함한 세 명은 이전에 모였었고, 경영대 교환학생인 언니까지 넷이 함께 처음 모였던 자리. 정말 어색했는데 빙수를 먹다가 페미니즘 이야기가 나와서 그 자리에서 매우 즐겁게 세 시간을 연이어 떠들었다. 그 이후 토론토에 도착하고 나서도 이따금 맛있는 걸 같이 먹고 술병도 까고 나이아가라도 함께 갔다.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들인데 각자 인생의 깊은 부분들까지 공유하게 되었다.
Meal Plan에 채워져 있던 금액은 많이 줄어들어 갔다. 질린다 질린다 하면서도 학식과 팀홀튼은 열심히 먹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할 땐 미리 블랙으로 달라고 할 수 있게 됐다. 처음 왔을 때는 '커피를 어떻게 줄까?' 같은 말은 왜 하는지 이해도 못하던 나였다. (캐나다 사람들은 커피에 우유나 크림을 잘 타 먹는다.) 지하철 역도 역 이름만 들으면 대충 몇 호선인지 어디쯤 있는 동네인지도 (1, 2호선 한정..) 알 수 있다. 어떤 동네에 갔을 때 내가 미친듯이 찾아서 구글맵에 저장해 놓은 맛집이 알림으로 뜨기도 한다. 그런 가게를 찾아서 먼걸음 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나 학점교류를 갔을 때, 아니 뭐 대부분의 새학기에 그랬던 것처럼 여기서의 수업도 초반엔 신선하다가 갈수록 권태를 느꼈고 이따금 교수의 싱거운 농담에 웃었다. 영어로 수업을 듣는 건 처음엔 힘에 부쳤지만 지금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해도 나쁘지 않음을 안다. (애초에 한국에서만큼 수업에 부담을 느끼지 않기도 하지만.) 수업은 진행될 때는 째고 싶어 안달이 났다가도 막상 다 끝난 지금 이 시점에선 뿌듯하고 아쉬운 기분이 남는다. 기말고사나 잘 쳐야 할 텐데 말이다.
한국에서 막연히 상상하던 캠퍼스 생활, 토론토의 풍경과 문화, 팀홀튼(특별하다..한국에서부터 소문을 익히 들었으니), 학업 등은 전부 내 현실로 자리잡았다. 너무 낯설었던 인간관계도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전부 마냥 빛나지만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에 익었다. 토론토에 온 초기에 하루하루 두근거리며 다가왔던 날들도 언젠가부터는 그냥저냥 여느 하루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오늘, 기분을 잡친 기념(?)으로 시험 공부를 때려치고 노래 가사 다섯 곡을 필사한 뒤 내 하루를 문장으로 정리해 보았다. 오늘은 엉망이었으니 힐링하겠어! 같은 의식의 흐름이 새삼 새롭게 다가왔다. 그런 생각을 서울이 아닌 이곳 토론토에서 했다는 게 인생 전반에서 특별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이 나에게 평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도 이해 못할 수도 있지만 아무튼 내게는 그랬다.)
그래서 더 아쉽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주절주절 썼다. 아바나의 호세마르티 공항이나 보스턴의 로건 국제 공항에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 그곳은 레이디가가 포스터가 벽에 붙어 있는 기숙사 내 방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난 이 곳이 때로는 불편해서 귀국이 얼마 남은 지금 언제보다도 서울을 강하게 그리워 한다. 그러는 한편 4개월이라는 지난 짧은 시간이 토론토 겉핥기였다는 생각도 자꾸만 든다. 생활한 게 아니라 스쳐 지나간 것 같다. 내가 오늘 최악의 하루를 경험하고 그래, 저녁엔 쉬자 내일 엄청난 행운이 오려나 보지, 따위의 생각을 하는 건 신선한 당연함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고작 4개월 이방인 체험을 한 나의 자기 기만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는 복잡한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