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먹은 학식 파스타. 파스타는 커스텀메이든데 protein을 넣지 말아달라고 했다. 왼쪽은 비건쿠키고 오른쪽은 체리맛 탄산수.
제 식단은 현재 락토오보에 가깝지만, 비건의 문제의식에 동감하며 실천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계속 '비건', '비건지향'이라는 말을 그냥 썼습니다.
토론토에서 생활에 있어 한국에 비해 달라진 점을 꼽자면 식습관이다. 물론 단 음식을 많이 먹게 된 것(줄여야 할 텐데)이나 술을 덜 마시게 된 것도 꼽을 수 있겠으나, 무엇보다 큰 변화는 육류가 들어간 음식을 훨씬 덜 먹게 되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항상 목표를 페스코(육류는 섭취하지 않되 생선/해산물을 먹는 식단)에서 락토오보(유제품/난류/꿀 정도를 먹고 동물성 식품은 섭취하지 않는 식단)에 맞춰 둔 채 이따금씩 고기 국물 등을 먹기도 했다면, 여기서는 목표를 비건으로 잡고 육류(해산물 포함)는 거의 먹지 않는다. 물론 간혹 가다가 잘 모르는 사람을 만나거나 옵션이 없어 보일 때는 먹은 적도 있지만, 혼자 밥을 먹을 때는 특히나 육류를 먹은 적이 거의 없는 듯하다. 토론토 생활이 그것을 가능케 해 줬기 때문이다.
채식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야?
사실 한국에서는 내가 고기를 먹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사실마저도 잘 밝히지 못했다. 그러니까, 샤이 비건이었다. 토론토에서는 뭔가 할 수 있을 듯해서 같이 교환을 온 친구들에게 용기를 내서 말했다. 그러고 나니 여기저기서 어쩌다가 채식을 하게 됐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게 되었다. 말해 주다 보니까 정리가 됐는지 스스로도 의문이라서 이 지면을 통해 이야기해 본다.
시작은 친구였다. 중학교를 같이 나온 친구는 대학에 들어가더니 놀랍도록 섬세한 비건페미니스트가 되었다. 그 친구가 공격적(?)으로 포스팅하는 인스타 게시물에 감화되어 교지에 동물권에 대한 글을 쓰기로 했다. 친구가 같은 대학을 다니니, 우리 학교 비건 학우로서의 견해를 밝히는 친구의 인터뷰와 동물권에 관한 정보를 전체적으로 풀어 놓은 글이 묶여 있는, 이른바 '동물권 기획'이었다. 교지에 글을 쓰다 보면 많은 부분에서 세상을 보는 관점이 변화하곤 했는데 이 문제에서도 그랬다. 인터뷰를 하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동물권 문제 전반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나 또한 생각이 정리되었다. 이후 트위터의 여러 비건 계정도 팔로우하고 관련된기사도 읽기 시작했다. 그 결과 고기를 보거나 먹으러 간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고, 고기를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 행위가 가지는 여러 문제들이 떠올랐다. 결정적으로 고기 사진을 보면 먹음직스럽지도 않고 기분이 나빴다.
많은 이들이 도와줘서 내가 정리한, 현대인의 육식이 가진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더 자세하게 쓸 수도 있겠지만 이미 교지(고대문화 2018 겨울호)에 한 번 관련된 글을 길게 쓴 경험이 있는데다가 이 글의 요지는 이게 아니므로 간략하게 쓰겠다.
1. 동물은 고통을 느끼는데, 공장식 축산은 인류가 먹을 고기를 위해 인위적으로 동물을 생산하고 다시 살생한다. 한반도 인구가 5000만 명인데 한국에서 한 해동안 죽는 닭이 9억 마리를 넘는다. 태어나지 않아도 될 생명이 태어나서오로지 인간 때문에 고통 받다가 죽는다. 그럼에도 한국의 미디어는 육류소비를 부추긴다.
2. 동물의 소수자성은 나의 소수자성과도 연결지을 수 있다. 내가 그리고 내 주변이 타자화되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페미니스트가 되었으면서 동물을 생명으로, 존재로 보려고 노력조차 않는다는 건 내 안에서 어느 정도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3. 인간만을 생각해도 공장식 축산의 생산품..(생명이고 동물이다)은 소비를 멈춰야 한다. 공장식 축산은 엄청난 양의 오염물질을 생산하고, 공장식 축산을 위해 세계 곳곳의 숲이 불타고 있다. 어류/해산물 포획 또한 해양 생태계를 교란한다. 공장식 축산을 계속해서 소비하는 것은 자연과 개발도상국을 향한 착취를 동시에 딛고 서는 일이다.
특히 2번의 이유가 내게 가장 와 닿았다. '난 동물은 이입이 잘 안 돼서.' '난 동물 오히려 싫어해.' 다 할 수 있는 말들이다. 그러나 이것을 '난 여자들한테는 이입이 잘 안 돼서.' '난 여자들 오히려 싫어.' 라고 '동물'을 '여자'로 치환한 뒤 비교해 봤을 때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동물'일 때든 '여자'일 때든, 실생활이나 미디어에서 전부 들어본 말들이었다.)
1번에 관해서는 저 9억 마리라는 숫자도 충격이지만 다른 종류의 충격도 꽤 받았다. 친구와 인터뷰를 할 때 무심코 꿀떡이 비건인 것처럼 말했다가 꿀떡은 비건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꿀은 생명인 벌을 착취해 만들기 때문이다. 비건에 대해 공부하면서 젤리가 비건이 아님을 알았을 때의 놀라움도 잊을 수 없다. 간혹 비건 젤리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젤리는 돼지의 연골에서 추출한 젤라틴으로 만든다. 이런 식으로 머리를 몇 대 얻어 맞고 깨달았다. 우리는 온 세상 동물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착취하며 살아가고 있다.
결정적으로 난 동물성 단백질 좀 안 먹는다고 건강이 안 좋아지는 체질은 아니었다. 건강상의 이유로 채식할 수 없는 분들도 계시다길래 이 문장을 쓴다. 그러나 대체로 동물성 단백질은 오히려 몸에 안 좋은 경우가 더 많다고는 들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물성 단백질을 먹지 않는다고 건강에 큰 지장이 가는 건 아니라고들 한다.
근데 왜 토론토에서 더 열심히 해요?
앞서 한국에서는 샤이 비건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정말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잘 이야기하지 못했다. 심지어 스스로의 실천에도 언제나 자신이 없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일단 선택지가 정말 없다. 요즘 서울에는 좋은 비건 레스토랑들이 많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경제적으로 아주 풍요롭지 않은 내가 항상 그런 식단을 택할 수는 없다. 저렴한 음식들은 다들 왜 그렇게 고기에 미쳐 있는지 고기가 안 들어가 있는 음식이 없었다. 학교 앞에서 5000원짜리 샐러드를 사기에도 쪼들릴 때는 학교 앞 분식집에서 야채김밥에 햄을 빼달라고 해서 그 집이 질리도록 먹었다. (아니 야채김밥인데 햄 왜 있냐고) 이건 꽤나 본질적인 문제라서 육류(여기서는 해산물 제외)만이라도 먹지 말자는 목표로 음식을 고르곤 했다.
둘째, 눈치가 보인다. 왠지 내가 고기 안 먹는다고 하기엔 눈치 보인다. 뒤풀이 장소는 반드시 고기집으로 예약이 되어 있고 기본적으로 고기라고 하면 신나야 한다는 공식이 당연하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그렇게 단체로 뭔가 먹는 상황이 아니라 소수인원으로 뭔가 먹으러 갈 때도, 그들이 비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먼저 고려하기보다는 그냥 나 자체가 주눅이 들었다. 여기에 고기 안 먹고 싶은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여럿이 무언가 나눠먹어야 할 때 자신있게 '여기엔 햄 들어있으니까 시키지 말자' 하기 힘들었다. 좀 덜 소심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 만날 때는 1인분씩 시키는 음식(특히 이탈리안)을 먹으러 가서 알리오 올리오를 시키거나, 일행에게 '난 고기가 안 땡겨서 그런 것만 아니면 될 것 같아' 라며 은근슬쩍 메뉴를 바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래도 최소한의 기준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국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준을 세워서 음식을 먹었다.
- 육식을 전시하지 말자. (생선사진을 몇 번 올리면서 실패.)
- 식육식당에 가지 말자.
- 무한리필 000엔 특히 가지 말자.
- 먹방을 보지 말자.
토론토에 온지 얼마 안 됐을 때는 한국에서의 습관도 있어서 초밥도 몇 번 먹고, 베지 음식을 시킬 때 언제나 위축된 자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살다 보니 이곳에서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식당에 가면 비건 메뉴, 비건은 아니라도 최소 베지터리안 메뉴가 90%는 있다. 뭐 빼달라고 해도 군소리 없이 빼주고 심지어 먼저 '계란 넣지 말까?' 물어봐 주기까지 한다. 한국 식당에서는 그러기 눈치 보이기도 하고 실제로 눈치를 주거나 부탁을 안 들어주기도 하는데 말이다.(위축된 내 자아는 그런줄도 모르고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발라달라고 했지만. 앞으론 잘 빼달라고 할 거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비건 생활도 어느정도 한계는 있다. 일단 식당들 중에는 '비건'은 아니고 '베지테리안'이긴 한 메뉴가 있는 곳이 많다. 그러면 유제품이나 달걀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도 grilled vegetable wrap이라고 해서 비건이겠거니 하며 성분표를 제대로 안 보고 샀다가 치즈가 들어 있어서 놀란 적이 있다. 달걀보다도 특히 유제품은, 아무래도 우유 소비량이 워낙 많은 곳이다 보니까 정말 빠지지 않고 많이 들어간다. 그리고 한국보다 두유가 비싼 건지 두유로 바꾸면 가격이 높아지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두유 옵션이 없는 경우는 많아도 추가되는 경우는 잘 못 봤다.) 아메리카노나 블랙티가 마시기 싫을 때는 라떼의 유혹에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 먹으면 되는 문제가 아닐까요? 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내 마음이 많이 약한가보다. 나는 고기보다도 유제품 끊는 게 더 힘들다. 워낙 단 음식, 베이커리, 라떼류, 피자 등을 좋아했던지라 나도 모르게 자꾸만 유제품이 포함되어 있는 음식을 주문하고 있는 나를 본다. 사실 '절대 먹으면 안 돼!'라는 마음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고, 중요한 것은 동물 착취를 조금이라도 줄이겠다는 마음임을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목표에 못 미치는 내 행동을 마냥 정당화할 수만은 없기에 마음 한 켠이 항상 씁쓸하다.
토론토에서의 이러한 도전은 한국에서의 내 삶에도 영향을 미칠까? 솔직히 한국에서는 멸치 육수도 많이 먹고, 김치도 그냥 먹을 것 같긴 하다. 오늘 먹을 수 있는 비건식을 찾아 표류하는 일도 실은 피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이유 때문에 자꾸 들뜨기 시작했다. 그것은 요리다. 사실 한국에서도 몇 번 비건 요리를 시도했다. (그렇게 비건 순두부는 처참하게 망했고, 카레에 채수랑 사과를 넣으면 태어나서 먹어 본 카레 중에 제일 맛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런데 여기 있으면서 트위터의 여러 비건 계정을 팔로우하다 보니 시도해 보고 싶은 요리들이 정말 많아졌다. 이곳에서 이런 저런 음식들을 주문해 먹으면서 채소 재료들(특히 브로콜리..브로콜리가 이렇게 맛있는 건 줄 알긴 했지만 요즘 더 느끼고 있다.)을 활용하는 방식에 대한 열정이 생겼다. 토론토 식당에 아무리 비건 내지는 베지테리안 메뉴가 있다고 해도 보통 하나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좀 더 다양하게 먹어 보고 싶은 열망도 솟아 오르고 있다. 게다가 여기에는, 전에 내가 언급한 바 있는 '한국의 음식'이 없으니까 그런 '한국의 음식'을 비건으로 먹는 재미를 요새는 상상하고 있다.
하여튼 결론은
- 남은 두 달도 열심히 남의 생명을 해치지 않으려 노력해 보자
- 돌아가서도 잘해보자.
+)
이 글을 쓰는 지금은 11월 2일 오전 12시 12분. 13분전까지만 해도 세계 비건의 날이었다. 한국 기준으로는 13시간 13분 전이겠다. 더 빨리 썼으면 좋았을 텐데.
지난 몇 달 동안 동물성 식품 소비를 최소화 해보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는 사람들을 몇 명 만났다. 나도 채식을 시작한지 몇 달밖에 안 된 새내기인데다가 비건 식단을 잘 지키지도 못하고 있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마음을 먹는다.
앞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고기를 절대 먹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으로 살면 어딘가 우울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내가 동물성 식재료를 어떻게 하면 최대한 먹지 않을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좀 더 즐겁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건 어떤 트위터리안 분이 써 주신 말씀인데, 오늘 하루 육식했다고 실패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목표를 최대한 동물성 재료를 소비하지 않는 데 두는 편이 좋은 듯하다.
식습관을 바꾼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위에서도 다 이야기 한 것이지만 건강, 습관, 입맛의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만약 너무 바꾸기 힘들다면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물건들로부터 동물성 원료를 줄여보자. 가령 똑같은 외투를 입어도 울이 들어간 건 사지 않는다거나, 패딩을 사도 라쿤털이 붙어 있는 건 소비하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말이다. 또, 적어도 달걀 등을 살 때 어떻게 유통되는 달걀인지를 살펴서 사는 방법도 있다. 내가 먹는 달걀이 적어도 A4용지만한 케이지에 닭 두 마리를 구겨 가둬 놓고 재생산을 강요해 만든 건 아님을 확인해 보는 것이다.(이 방법은 주변에서 실제로 많이들 실천하고 있었다.)그리고 육식을 전시하지 않는 것도. 내가 동물을 희생하고 있음을 자랑하는 데서 기쁨을 느끼고, 또 다른 사람의 육식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행위라도 덜 하려고 노력해 보면 어떨까? 동물을 희생해 살아가는 데 문제의식을 느끼지만 비건을 지향하기 너무 힘들다면 시도해 볼만한 방법들이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내 시작도 저 지점들이었다.
오늘의 트리비아
- 할로윈 주간은 신난다. 어제 오늘 단 음식을 엄청나게 먹고 있다. Trick or Treat은 아이들을 위한 이벤트라고 생각했는데 머리 굵은 우리가 계속 단 걸 주워 먹고 있으니 너무 웃겼다. 어제는 일본인 교환학생 친구네 집에 가서 홈파티를 즐겼고, 오늘은 한류동아리에서 주최한 할로윈 (일명 'Hallyuween') 파티에 갔다. 즐겁다.
- 한편으로는 요즘 과자를 과잉섭취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물론 먹을 때 즐겁게 먹었으면 그만이지만, 확실히 지난 두 달에 비해 단 음식을 많이 먹고 있다. 그만 먹자! 쿠키와 프라푸치노와 기타등등을 그만 먹으면 유제품 소비도 줄어든다!
- 11월의 날씨가 참 궂다. 오늘은 편지를 부치고 우표와 샴푸를 사기 위해 Eglington East에 나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E.E까지는 버스로 15분이 걸리는데 도보로는 23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매번 버스를 탔다. 진작 알고 날씨 좋을 때 많이 걸어 다녔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Lawrence역 근방은 많이 걸었는데 그래도. 아쉬웠다. 오늘 날씨는 도무지 걸을 수 없어서 버스를 탔다.
- 솔직히 좋아하는 날씨이긴 하다. 우중충하고 살짝 추운 오묘한 날씨. 하지만 너무 이상하기도 하다. 한국에서 잘 못 보던 흐리고 추운 늦가을-초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