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교환 '학생' 입니다

요크대학교에서 학업하기

by 권유
Vari Hall에서 바라본 요크대학교 풍경. 항상 이 모습을 바라보며 기숙사에 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린다.


퀘벡시티에 다녀온 날이었다. 한 친구에게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를 받았다.

"언니는 학교 안 다녀?"

내가 자꾸 여행을 다니니까 그 친구 입장에선 학교를 안 다니는 것처럼 보였나보다. 무지 흥미로워 하면서 공강날에 여행을 온 거라고 친구에게 알려줬다.

내가 학생인 걸 잊는 친구도 있었다. 쿠바 여행이 끝나면 시험이라고 하자 그 친구는

"시험? 무슨 시험?"

이라고 메시지 답장을 보냈다. 내가 해외에 있으니까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며 과제를 본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내가 나도 학생이라고 답하자 친구는 당황하며 맞아, 너도 학생이지, 라고 반응했다.

내 시시콜콜한 일상을 듣는 엄마마저도 내게 교환학생이 아니라 교환여행자 같다고 말하는 마당에, 그래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겠다. 한국 학교에서보다야 훨씬 수업도 적게 듣고 학업에 시간도 덜 쏟는다. 한국에서는 가장 적게 들은 게 15학점, 그마저도 계절학기로 만회해야 했고 보통 17~18학점을 들었다. 시험이 다가오면 길게는 2주 전, 아무리 급해도 1주일 전부터는 시험공부를 했고 1주일 전부터 공부를 시작할 때는 대부분 전주에 아팠거나 과제가 많아서 늦게 시작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공부는 고등학교 때처럼은 아니지만 나름 열심히 했다. 세 번 정도는 시험범위를 훑고 시험장에 들어갔다. 반면 여기서는 그나마 12학점 신청해 놓은 수업도 하나는 수강철회를 해서 최소학점인 9학점을 수강하고 있다. 공부는 당연히, 한 번 보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 이건 내가 교환학생을 휴식 목적으로 갔기 때문도 있고, 돌아가면 F를 받지 않는 한 GPA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도 있다.

그러나 파견교를 고를 때 학업을 아예 고려하지 않은 것은 (믿을 수 없겠지만) 아니다. 나는 놀랍게도 학업적인 부분들도 충분히 생각했다. (물론 학업만 생각했다면 토플이나 아이엘츠를 한 번 더 봐서 토론토대를 가야 했겠지만...) 그리고 이곳에 와서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얻고 있는 것들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글은 교환 '학생'으로서 경험하는 토론토 생활, 정확히 요크대학교 생활의 이모저모!


요크대학교(York University)


내가 교환학생으로 다니고 있는 요크대학교는 1960년대에 개교한, 비교적 젊은 대학이고 캐나다에서 세 번째로 규모가 큰 종합대학이다. 캐나다에서 엄청난 명문대로 손꼽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규모가 있는 학교이다 보니 수강신청을 하거나 커리큘럼을 살펴볼 때 흥미로워 보이는 전공이나 과목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어디서 주워 들은 정보에 따르면 학풍이 진보적이라고 하는데 내 비교 기준이 대한민국의 대학에 있기도 하고 정규 학생도 아니기 때문에 체감한 바는 없다.(확실히 한국 대학들보다야 진보적인 것 같긴 한데 그냥 캐나다라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요크대학교의 캠퍼스는 두 개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메인 캠퍼스인 Keele Campus, 하나는 프랑스어 수업이 함께 진행되는 Glendon Campus다. 나는 모든 수업을 Keele에서 들으면서 거주는 Glendon에서 하고 있는데, 두 캠퍼스는 매우 다른 분위기를 자랑하지만 예쁘다는 공통점이 있다. Keele은 넓고 시설이 깔끔하며 활발한 느낌을 주는 반면, Glendon은 고풍스럽고 아담한 분위기다. 학교 다닐 맛 난다. 두 캠퍼스는 모두 토론토에서 업타운에 해당하는 NorthYork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다운타운과는 거리가 좀 있는데(Glendon에서는 30분, Keele에서는 50분쯤 잡으면 될 것 같다.), 이게 공강 때 다운타운에 굳이 가지 않으면 지루하다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토론토 업타운은 다운타운에 비해 쾌적한 편이라 (특히 난 Glendon 캠퍼스가 있는 Lawrence역 일대를 무지 좋아한다.) 등하교나 학교생활도 자연스레 훨씬 쾌적하다는 장점도 있다. (아 그리고 두 캠퍼스 모두 한인타운인 Finch에서 가깝다는 것도 장점.)


수업


한국 학교에서 내 본전공은 국어국문학, 이중전공은 심리학이었다. 외국 대학에서 국문 전공 강의를 듣기도 힘들고 들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곳에서는 심리학 전공생으로 살고 있다. (누가 물어보면 그냥 내 전공은 psychology라고 답하는 편) 따라서 이곳에서는 심리학 전공만 9학점을 듣고 있다. 원래 음악 교양도 넣어서 총 12학점이었는데, 첫 수업에 들어가보고 교수님이 사변이 너무 많으신 타입인 듯해서 드랍했다. 요크대는 수업 하나를 하루에 세 시간씩 진행한다(왜 그러나 몰라 진짜). 이런 특성상, 9학점은 화요일 수업 두 개, 목요일 하나 이렇게 세 개 수업으로 채웠다. (그러니까 나는 화요일에 6시간, 목요일에 3시간 강의를 듣는다.) 수강신청을 할 때 기준은 1. 최대한 한국에서 못 들을 것 같은 강의를 듣자. 2. 팀플이 없는 강의를 듣자(난 교환학생이라 엄청 놀 텐데 민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두 개였다. 그럼 이제부터 내가 듣는 강의들을 소개해 보겠다. 순서는 요일 및 시간 순.


Psychology of Intimate Relationships (화요일 11시 30분)


연인 관계의 심리학에 대해 공부하는 수업이다. 파트너 선택, 만남, 관계유지, 갈등, 이별 등등 연인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각종 심리 현상에 대한 연구를 다룬다. 아직 수업은 관계 유지까지 진도가 나간 상태.

이 수업의 재미있는 점은 교수님이 쓰는 TopHat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수업은 교수님과 학생들이 모두 TopHat을 켠 상태에서 진행하고, 수업 중간중간 교수님이 TopHat을 통해 질문을 던지면 우리가 답을 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짝사랑을 해 본 적 있는지, 연인의 희생을 얼마나 알아차린다고 생각하는지 등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나면, 곧바로 강의실에 있는 사람들의 응답 비율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게 굉장히 21세기스럽고 흥미로운 점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때는 의외의 결과에 놀라기도 하고,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라는 데서 위안을 얻기도 하며, TopHat의 응답결과가 보여준 통념을 뒤엎는 수업내용이 이어지기도 한다.

수업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한창 연애 중이거나 연애하려고 노력 중인 사람들과 수업 내용으로 대화하기도 했다. 예컨대 시험 공부가 하기 싫었던 나는 언니에게 카톡으로 어떻게 하면 사람을 잘 꼬실(?) 수 있는지를 설명하면서 시험 공부의 지루함을 견뎠다. (왜냐면 그게 시험 범위였기 때문이다.) 교수님이 던지는 질문이나 나눠 주는 수업 자료를 소재로 한국의 애인과 대화해 보기도 했는데, 그것 역시 재미있었고 나름 관계를 성찰하는 데도 도움이 된 듯하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 수업의 아주 아쉬운 점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와 과제 두 개가 있다는 것. 과제 두 개를 Syllabus에서 보고 진지하게 수강 철회를 고민했었다. 하지만 과제하느라 재미있는 논문도 많이 읽었고 과제가 있는 게 썩 나쁘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시험은, 이 수업의 내용이 도덕 교과서 같은 느낌이라 공부하는 게 고역이었다. 아주 새로운 사실을 알아나간다기보다는 이미 우리가 어림짐작 할 수 있는 내용들을 이론화 해 놓은 게 수업 내용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진화심리학. 난 심리학을 공부한지 얼마 안 됐으니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얼핏 봐도 진화심리학은 한계가 분명하다는 건 보인다. 진화심리학은 남성우월주의를 정당화하는 기제가 되기 때문에 위험 소지가 있다는 사실은 한국에서 심리학 개론을 공부할 때도 교수님이 짚고 넘어간 부분이다. 진화심리학이 억지로 설명하는 부분은 사회심리학적으로 설명했을 때 오히려 말이 되는 경우가 더 많은 듯한데, 이 수업에서는 전반적으로 그런 건 아니지만 가끔씩 진화심리학을 아주 우호적으로 끌어다 쓰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Psychology of Women (화요일 2시 30분)


Intimate Relationship 수업을 듣고 나면 헐레벌떡 점심을 먹고 (보통 피자 아니면 서브웨이다.) 이 수업을 들으러 간다. 성평등하지 않은 세계에서 여성과 성소수자(그리고 간혹 남성)가 겪을 수 있는 문제에 관련된 심리학적인 내용들을 공부하는 과목이다.

난 이 수업이 사실 그렇게 새롭지는 않다.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뜨거운 감자이기에 나 역시 페미니즘을 어느정도 접한 상태였다. 캐나다라면 한국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여권도 좋은데 여성 심리학 수업에서 어떤 내용을 다룰까 궁금했다. 그런데 듣고 있으면 캐나다도 답이 없는 건 똑같다. 교수님이 흘러 가듯 언급한 캐나다의 남녀 임금격차 수준은 검색해 보니 한국과 비슷했고, 캐나다 여성이 겪는 문제와 한국 여성이 겪는 문제는 상당히 겹쳤다. 그러다 보니 내용도 한국에서 공부한 페미니즘과 상당히 겹쳤고, 심리학적인 내용도 새로운 사실이라기보다는 마음속으로 항상 생각하던 것을 자료로 확인하는 정도일 때가 많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세계 어디에서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는 노력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것, 그리고 어찌됐든 차별의 엄연한 존재와 그로 인한 부작용들을 수면 위로 드러내야 한다는 것.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2, 30대 여성 사이에서는 큰 흐름이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봤을 떄는 비주류 취급을 받거나, 심지어 멸시당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과별로 여성학과 연계된 강의를 개설하는 경우도 많지 않다. (우리 학교는...특히) 그러나 요크대에는 Gender Studies 전공의 수업이 아니라고 해도 여성학과 관련된 수업이 개설된 경우가 많았고, Psychology of Women은 두 개의 분반으로 수업이 진행될 정도로 인기 있는 수업이다. (내가 듣는 강의 중 가장 수강생이 많기도 하고.) 한국과 비슷한 결의 차별이 존재하긴 해도 그것을 수면 위로 아무렇지 않게 끌어낼 수 있는 분위기가 부럽기도 하다.

교수님은 하나의 이슈가 나올 때마다 학생들에게 발언 기회를 많이 주는데,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거기에서 똑같이 캐나다의 90년대생들도 나와 어느정도는 비슷한 문제에 시달리는구나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이 수업은 교수님과 학생들의 커다란 수다의 장처럼 느껴진다. 이게 이 수업의 매력이다. 교수님은 화가 많이 나 있는 페미니스트고, 학생들도 바쁘게 자신의 경험을 공유한다. 이따금 많이 나이브한 말을 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보통 토론의 과정에서 많이 시정되고는 한다. 앞서 소개한 Intimate Relationships 수업에서도 비슷한데, 이곳은 대형 강의에서도 학생들과 교수자가 질의응답을 활발하게 하는 분위기다. 영어만 좀 더 잘했으면 꼈을 텐데 싶기도 하고, 그런 질의응답 과정에서 서로 얻어가는 게 많아서 즐겁기도 하다.

수업의 아쉬운 점은 앞서도 언급했던, 아주 새로운 내용은 없다는 점과, 교수님의 말이 너무 빠르다는 것... 한국과 이곳 통틀어서 이렇게 말이 빠른 교수자는 처음이다.


Health Psychology (목요일 11시 30분)


내일 당장 들으러 가야 하는 수업이다. 심리학과 건강의 상관관계에 대해 공부한다.

한국에서 '심리학의 기초'를 수강할 때 공부했던 뇌과학 부분과 임상심리학 부분이 어느정도 겹쳐서 공부하기 그나마 수월한 편이다. 특히 저 두 파트가 한국에서 강의를 진행할 때도 수업자료는 전부 영어였기 때문에 여기서 들을 때도 그렇게 낯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교수님의 수업 톤이 굉장히 차분하신데, 그런 톤에 잘 어울리는 내용이 수업의 주를 이룬다. 얼마 전까지는 스트레스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배웠다. 이것도 사실 어느정도의 통념이 있으면 그렇게 어려운 내용은 아닐 수도 있지만, 스트레스를 받아들이고 그에 대처하는 과정,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을 때 몸은 어떻게 변화하는지 등을 과학적인 시각에서 접하니까 새롭기도 하다.

개강을 수요일에 했기 때문에 이 수업의 첫 강의는 내가 요크대학교에 와서 처음으로 들은 강의였다. 이 수업은 그런 의미에서 요크대의 훌륭한 첫인상이 되어 주었다. 교수님은 강의의 시작을 자신의 투병 경험으로 열었고, 우리 모두의 마음에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잘못한 것이 아니며 극복해 낼 수도 있고, 가장 중요한 것은 굳건한 사회적 관계임을 역설했다. 사실 처음 듣는 영강이기도 했고 지금과는 달리 적응이 매우 안 된 상태라 교수님의 이야기를 전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경험까지 오픈하면서 우리의 안위를 걱정해 주시니 수업이 아주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 뒤로도 항상 이 수업에서는 비슷한 인상을 받았던 듯하다. (여담이지만 한국의 '심리학의 기초' 시간에 임상심리학을 강의하시던 교수님도 비슷했다. 전공이 교수자의 성향에 많은 영향을 미치나보다.) 이 수업은 정신 질환에 대한 수업이라기보다 정신적인 요소와 신체의 관련성에 대한 수업이다 보니 신체에 관련된 몰랐던 사실도 많이 알아가게 되었다.

그런 만큼 시험 공부를 할 때 정말 피곤했다. 2주차 강의 주제 전체가 우리의 신체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렇기에 신경계, 면역계, 순환계, 소화계, 분비계, 호흡계 모두에 대해 공부해야 했다. 교수님이야 흘러가듯 설명하셨지만 공부하는 나는 죽을맛이었고, 특히 면역계와 분비계는 한국어로도 낯선데 영어로 하려니까 정말 곤욕이었다.


나도 학생답게 살고 있다!


쿠바와 뉴욕 사이에 시험 세 개와 과제 두 개가 있다. 수업을 통해서는 상술한 바와 같이 깨달음을 얻어 가고 있다. 한국의 대학에서처럼 여기서도 공부 비슷한 걸 해나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나저나 꼭 대학 공부가 아니라도, 이곳에서의 생활 자체가 일종의 공부라는 느낌을 받는다. 요즘에는 여행을 많이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혹자가 말했듯, 사실 일상 밖에서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라고 일상 속에서 못 얻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긴 한다. 그러나 내가 머무르던 세계 바깥에서 확인할 수 있는 새로움은 사는 데 큰 영감이 되어 돌아오는 듯하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도 느낀다.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내가 나 자신에게 벽을 치고 있던 걸 조금씩 허무는 기분이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크고 작은 깨달음들이 있겠지만, 최근 많이 생각한 점들을 써 보았다.

하여튼 강의실 안에서도 밖에서도 두 달 동안 많이 배웠다. 앞으로도 많이 배우고 느끼는 교환학생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길 바란다.


오늘의 트리비아


- 시험 끝난 기념으로 온타리오 미술관(Art Gallery of Ontario, AGO)에 다녀왔다. 끝나고 나서는 미술관 근처 카페에서 두유 카푸치노를 마셨다. 그거 마시고도 모자라서 타르트 하나를 먹었고 Dundas 역에 가는 길에 충동적으로 홍콩식 빵집에서 타로 번을 샀다. (내일 아침이 될 예정.) 잊고 기숙사 방에 휴대폰을 두고 나왔는데 잘 돌아다녔다. 이제 St. Patrick 역 일대도 내 나와바리가 되는 것인가.

- 토론토의 땅에는 낙엽이 많이 떨어졌다. 할로윈에는 눈이 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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