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토론토랑 안녕

피어슨 국제공항에서

by 권유
KakaoTalk_20191221_104706741.jpg 마지막으로 본 네이선 필립스 스퀘어. 스케이트장 뒤편에는 홀리데이 페어가 열렸다.

비행기 탑승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서 부랴부랴 글을 쓴다. 약 한 시간 뒤에 비행기가 뜨면 난 네 달 동안 동고동락한 토론토를 떠난다. 이번 글은 토론토에서 마지막 일주일과 전반적인 토론토/교환학생 생활에 대한 의식의 흐름이 될 예정.


마지막 일주일 동안 하루 빼고 꼬박꼬박 다운타운에 나갔다. 그래도 토론토 다운타운을 잘 알고 많이 즐겼다고 생각했는데 매일이 새로웠다. 어느 날엔 친구와 너무 추운 와중에 세인트 로렌스 마켓에 갔다가 강아지 분수를 구경하고 네이선 필립스 스퀘어에 갔다 .그날은 차분해 보이는 토론토가 얼마나 즐거움에 가득 차 있는 도시였는지를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됐다. 혼자 로열 온타리오 박물관에 가기도 했다. 그곳에서는 지구가 요람이 된 것 같았다. 관람객은 요람 속의 아기에 불과하다. 그러는 와중에 하루에 영화 한 편 보기 프로젝트를 했고, 어느 날에는 두 편을 봤고 어느 날에는 안 보기도 해서 2주 동안 열한 편의 영화를 봤다. 가장 좋았던 영화는 '매기스 플랜'과 '결혼 이야기'다. 어제 밤에는 기숙사의 holiday closure로 인해 갈 곳이 없었는데 고마운 친구 덕분에 토론토대 기숙사에 얹혀 잤다. 비건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고 친구의 친구가 구운 비건 컵케이크(엄청 맛있었다)를 먹었다. 저녁에는 펍에 나가 맥주를 마셨고 이야기 도중 '토론토에서의 best night과 worst night 을 꼽아봐라'라는 질문을 받았다. 행복한 하루 뒤에 찾아온 모종의 사건 덕분에 worst night은 어제였다고 이제 와서는 대답할 것 같지만, 친구들의 환대 덕분에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다.


나는 토론토의 대마 냄새, 구질구질한 지하철, 배차 간격 안 지키는 버스, 이국적인 매력의 결여, 어딜가나 부딪힐 수 있는 한국 사람들이 싫었다. 그런 것들이 머릿속에 번잡하게 섞여서 어느 날엔 토론토 생활에 학을 뗐다. 난 다운타운의 벽돌색, 구불구불한 길, 인터넷 안 되는 지하철, 산만한 문화 행사, 겨울의 스케이트장, 팀홀튼을 비롯한 모든 곳에 범벅되어 있는 빨강, 하늘, 하얗게 떨어지는 눈을 좋아했다. 토론토와 전혀 상관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게 무섭다.


다시 교환학생 생활을 해보라고 한다면 공강을 이렇게 많이 만들지 않을 것이다. 생각보다 많이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기숙사에 꼼짝없이 묶여만 있어도 하루가 다 가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경험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무방비로 시간이 잔뜩 쥐어진 건 수능 끝난 11월 이후로 정말 오랜만이었다. 물론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시간은 아니었어서(나름 과제도 있고 시험공부도 해야 했으니...) 그 사실이 날 괴롭히기도 했고, 한국에서의 불안감과 산만하게 널부러져 있던 생각들이 늘어난 시간 안으로 한데 모여서 날 더 힘들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하면 그런 힘듦은 내가 수업을 더 채운다고 사라지는 건 아닐 듯하다.


그때 이럴걸 저럴걸 하는 후회가 생각보다 좀 있다.


한국 가면 면허 따고 돈을 모을 예정이다. 바깥에 나와 있으니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는다. 아이러니하게도 토론토에서의 4개월은 내 한게를 뚜렷이 확인해 날 좌절하게 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이 세상에 가능성은 무한하니 날 너무 테두리 짓고 그 안에 가두지 말자는 생각도 하게 했다는 것이다. 양립할 수 있는 생각일까?


한국에 가면 마주해야 하는 현실은 날 숨막히게도 하면서 기쁘게도 한다. 뭔가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덜 좌절하고 싶다.



왜 갈수록 문단 짧아졌는지 모르겠는데 탑승시간이 다가와서 여기까지 써야겠다. 많은 값진 경험과 교훈과 추억을 안겨 준 토론토에서의 시간에 정말 감사한다. 영영 떠난다고 말하지 않겠다 언젠가 돌아 올 수 있으면 좋겠다.


KakaoTalk_20191221_104912616.jpg 텅 빈 내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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