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토론토의 첫인상

토론토에서 약 일주일을 살았다

by 권유
KakaoTalk_20190906_221735018.jpg 토론토 국제영화제가 열리던 거리의 노릇한 불빛


8월 28일 토론토로 날아온 이후, 어느덧 일주일이 넘는 시간(정확히는 아흐레)이 흘렀다. 에게, 이제 아흐레? 싶다가도 토론토의 첫 숙소였던 올드 토론토의 풍경이 추억 같이 느껴지는 데서는 시간이 그래도 흘렀음을 느낀다. 기숙사에 쳐박혀 있기도 하고, 학교도 가고, 발 닿는 대로 돌아도 다녀 보면서 내 나름대로 토론토와 대화하려고 노력했다. 이번 글은 그 며칠간 구축한 토론토의 첫인상에 대한 글이다.


i. 자유분방함


토론토에 와서 딱히 컬쳐쇼크를 받지 않았던 나는 개강날 그 비슷한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등교를 해 보니...


- 강의 시작까지 시간이 떠서 아침 겸 점심으로 팀홀튼에서 도넛과 아이스캡을 사서 건물 복도의 벤치에 앉아 먹고 있었다. 오랜만에 사람 구경해서 들떠 있는 내 앞으로 스케이트보드를 탄 사람이 복도를 휙 통과해 지나갔다.

- Health Psychology 교수님은 수업을 시작할 때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은 손 들어보라고 하셨다. 갑자기 왠 강아지? 싶었는데 강의가 끝나자 자기 강아지들이라며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푸들 두 마리를 강의실 안으로 들였다. 쿨하게 "쓰다듬어 보고 싶은 사람은 앞으로 나오세요." 라고 말하기까지.

- The Musical Experience 강의에서 교수님은 말하다가 노래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교수님에게는 다양한 종류의 중세 악기들, 시대별/크기별 리코더들이 있었고 수업 중간중간에 연주해 주셨다.


흥미로운 개강 풍경이었다. 실은 북미가 한국보다 자유분방하리라는 것을 예감이야 하고 있었지만, 실재하는 현상을 직접 목격하니 놀랍기도 했고 덩달아 에너지가 생기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 컬쳐 쇼크는 아니었지만, 비슷한 인상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도 받았다. 기숙사 운영진이 신경쓰는 것은 사생들의 안전뿐, 그 외의 생활에는 별다른 터치를 하지 않는다. 프런티어관에서 생활할 때의 부자유를 떠올리면 이곳 기숙사의 운영진은 사생들을 관리 대상이 아닌, 입주민으로 대한다는 느낌이 난다. 보장된 자유 덕에 기숙사 생활은 편리하기도 즐겁기도 하다.


ii. 공존


이 문단의 이야기는 꼭 토론토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처음 밴쿠버에 와서 나는 서울에는 무용지물인 저상버스가 실제로 휠체어를 타거나 유모차를 끄는 승객들을 위해 사용되는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랐다. 비슷한 광경은 포틀랜드에서도 반복되었고, 토론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는 '이동권'이라는 말까지 생기며 여전히 많은 교통약자들이 투쟁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부러운 점이었다.


대중교통에서뿐만이 아니라 여러 상황과 장소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워낙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살다 보니 내가 동양인이라고 해서 경계하거나 조롱하는 일이 잘 없다. (잘 없다..라고 쓰는 건 좀 씁쓸하다.) 대중교통을 운전하는 일부터 교직원, 교수까지, 한국이었으면 남성이 주류였을 직업군에도 수많은 여성들이 종사하고 있었다. 웬만한 음식점에는 비건(적어도 베지테리안) 옵션이 있어서 한국에서는 페스코라도 유지하기 위해 꾸역꾸역 편의점 달걀 샌드위치만 먹던 내가 행복하게 주문을 할 수 있다. 종류를 가리지 않은 가게들은 문앞에 프라이드 플래그를 걸어놓거나 무지개 스티커를 붙여 둔다. (물론, 저런 것도 안 붙여도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는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동성혼은 시기상조 이런 말이 나오는 마당에...) 이 사회에도 배척당하는 구성원이 생길수밖에 없을 것이고, 사람 사는 세상인만큼 사각지대가 존재하겠지만, 도시 전체가 다양한 구성원과 어우러지려는 노력을 적어도 하고 있는 듯했다.


여담이지만 우리 학교 캠퍼스에는 거위들이 산다. 교내 구성원들은 거위들이 돌아다니는 잔디밭에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 동물들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서 살아가고 있다.


물론 캐나다가 천국은 아님을 여러 요소들(예컨대 물가)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만, 이왕 떨어진 땅이니 '사람 사는 곳이 그렇지 뭐.' 하는 나이브함을 이 4개월 동안만 가져 보겠다. 지난 2년을 삐딱하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내게 잠깐이라도 필요한 그것, 나이브함과 낙관. 그 렌즈로 토론토를 바라보면 하여튼 이런 점들이 날 들뜨게 해 줬다.


오늘의 트리비아


- 토론토 국제영화제(tiff)가 9월 5일자로 개막했다. 티켓값이 비싸서 부산이나 전주처럼 많은 영화를 예매하지는 못했으나,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차량을 통제해 둔 다운타운 도로 위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그리고 그 사이에 내가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쁜 오후였다. 오늘은 'Rocks'라는 영화를 봤는데(한국에 왠지 개봉 안 할 것 같고 보길 잘했다.) 내가 여기에 리뷰를 쓰겠다고 기록해 둔다면, 마지못해 쓰겠지?

- 영화제 구경을 하다 너무 들떠버린 나머지 칵테일이 너무 마시고 싶어졌고, 혼자 칵테일 바에 들어갔다. 시그니쳐 칵테일이었던 'Melrose Mule'을 주문했고 저녁을 먹지 않은 상태여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디저트 안주를 하나 시켰다. 칵테일은 눈이 뜨일 정도로 맛있었는데 안주에서 나던 트러플 냄새 때문에 아직도 속이 미식거린다.

- tiff의 굿즈를 구경하기 위해 tiff shop에 들렀는데 검은 바탕에 흰색의 고딕체 글씨로 '봉준호'라고 적혀 있는 티셔츠를 판매하고 있었다. 심지어 잠시 후 다시 들렀을 때, 그 티셔츠는 팔리고 없었다. (그 아래에 있던 'bjh'가 적혀 있는 티셔츠가 제일 위로 올라와 있었다.) tiff는 봉준호를 너무..사랑하는 걸까?

-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함께 여행하던 엄마가 출국하고, 토론토에 온 이래로 처음으로 애인과 통화했던 날에는 너무 울적하고 막막했었다. 언젠가 또 그런 시기가 찾아 올 것도 같지만, 일단 지금은 마치 새내기처럼 가뿐하다. 언젠가 또 그런 울적/막막한 시즌이 찾아오면 울적함이 잔뜩 묻은 글을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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