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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유 Nov 11. 2021

2-1. '아시아인 여자 혼자 여행'

몬트리올 여행을 떠올리다 든 생각 - 자유는 모두의 몫이 아니다

몬트리올/퀘벡 여행

2019.10.03~2019.10.16

동행: 혼자

방문한 장소(10.04): 올드 몬트리올, 노트르담 대성당, Crew Cafe, 몬트리올 다운타운, 몬트리올 미술관, 몽루와얄 공원, 맥길대학교


 

성당 문이 열렸다. 온 공간이 장엄한 오르간 소리로 채워지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조각들을 하나씩 눈에 담았다. 사람들은 조용히 대화하고 있었다. 그들과 동떨어진 의자에 자리 잡고 앉아 한참 동안 거대한 제단을 바라봤다. 성스럽다는 말은 이런 때 쓰는구나, 마음속으로 감탄했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유럽의 다른 성당들의 모습을 상상했다. 오르간 연주는 계속되고 있었다. 몬트리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 갔을 때의 일이다.


퀘벡 주의 두 도시를 여행한 경험은 교환학생 생활 중 큰 안식이었다. 당시 나는 무기력 및 우울에 시달리기 직전의 단계였는데 여행은 좋은 환기가 되었다. 몬트리올은 내가 주로 생활하던 토론토와는 전혀 다른 도시였다. 도심은 유럽식 건축물과 현대식 건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유명한 언더그라운드 시티(를 열심히 다녀 보진 못했지만)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영어(와 한국어)가 많이 들리던 환경에 있다가 모두가 나에게 봉쥬르라고 인사하는 곳에 도착하니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일상적인 공간을 진정으로 벗어난 느낌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혼자였고, 그래서 그 누구와도 좋은 공간의 기쁨을 바로 나눌 수 없었으나, 동시에 모든 공간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다는 자유를 느꼈다. 몽루와얄에서 석양에 잠긴 도시 풍경을 바라보면서 꼭 이곳으로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여행이 끝나고 나서 아는 언니에게 몬트리올 여행이 얼마나 좋았는지 이야기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몬트리올 여행을 했던 언니는 몬트리올에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당시 한 현지인에게 인종차별적 언어폭력을 당한 경험 때문이었다. 구체적으로 표현하기에는 과할 만큼 듣기만 해도 끔찍한 기억이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즐거움이 가득해야 할 여행이 살면서 다시 볼 리 없는 사람의 악의적인 잘못 때문에 망쳐졌다고 생각하니 내 속이 다 상했다. 


저렇게까지 심각한 일은 아니었지만 몬트리올을 여행하는 과정에서 나도 불쾌한 일을 두어 번 겪었다. 첫 번째는 토론토에서 몬트리올로 가는 기차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기차 시간 때문에 저녁을 먹지 못했는지라 기차 안에서 간단하게 뭔가 먹고 싶어서 그릭요거트와 바나나브레드를 주문했다. 직원은 백인 남자였다. 계산을 하려고 동전을 꺼내려는데, 내가 모든 동전을 카드지갑에 넣어 다니다 보니 꺼내기 힘들어서 살짝 뒤적거렸다. 주문한 것들을 받고 보니 뭔가 이상했다. 내가 내야 했던 돈은 x달러이고, 내가 낸 돈은 x+y달러인데 거스름돈을 받지 못한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내가 낸 x+y달러는 모두 동전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크기는 다르지만 같은 개수의 동전을 내면 x달러를 만들 수 있었다. 직원이 뭔가 착각을 했나 보다 하고, 그가 돌아올 때 거스름돈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바로 말했다. '아 맞아, 너 거스름돈 y 달러 받아야 하지?' 그리고 그는 y달러를 돌려주었다. 나는 그에게 거스름돈이 필요하다고만 했고, 내가 무엇을 샀는지만 말했지 내가 얼마만큼의 거스름돈을 못 받았는지는 말한 적이 없다. 그가 내가 낸 돈을 정확히 기억하고, 자신이 실수로 더 가져간 돈이 얼마인지 아는 게 아니었다면 나올 수 없는 답변이었다. 내가 동전을 내는 과정에서 꾸물대는 모습과 비 서구적인 외모가 겹쳐 보여서 나를 어수룩하게 봤을 확률이 매우 높다고 생각했다. 무척 불쾌했다. 

그다음 날 아침, 게이 스트리트에 있는 숙소에서 올드 몬트리올로 걸어가고 있었다. 올드 포트 근처에 노숙인이 많은 데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너무 없어서 위축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때, 한 남자가 내쪽으로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물론 자신을 보고 멈칫하는 사람에게 불쾌함을 느끼는 일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다음에 그가 보인 태도가 가관이었다. 그는 내 옆을 지나가면서, 내 귀에다 대고 아주 크게 트림을 했다. 귀가 더럽혀진 기분은 물론이고, 아침부터 재수 없는 일을 당했다는 생각과 각종 당혹감 및 모멸감에 시달려야 했다. 지금 이 기억을 떠올려 볼 때, 그마저도 내가 만일 남자였어도, 아시아인이 아니었어도 그런 일을 당했을까 생각한다. 물론 그 작자가 되어먹지 못한 사람이라서 내 정체성과 상관없이 당한 일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최소 내가 그를 보고 멈칫하지는 않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가 내 귀에다 트림을 한 것이 그런 내 행동 때문이라거나 내 정체성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냥 그가 미친놈이라서 그랬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북미에 있는 동안 혼자 여행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몇 번의 여행 중 대부분은 부분적으로라도 동행이 있었다. 그렇지만 몬트리올에서 혼자 여행하면서, 혼자 여행하는 자유가 사람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느꼈다. 다른 사람에게 맞출 필요가 없는 여행, 나와 여행지만이 존재하는 여행이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를.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거기 여자 혼자 가도 괜찮니? 그런 데 여자 혼자 가면 좀 그렇지 않을까? 거기 좋다고 들었는데 여자 혼자 가기는 좀 무서울 것 같아서. 난 그런 걱정들이 안타까워서 걱정을 버리고 떠나라고 말하고 싶었고, 실제로 몇 번 그렇게 했다. 내가 걱정에 갇혀 아무데도 가지 않았다면, 몬트리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얼마나 멋있는 공간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가득한 도시에 홀로 있는 기분이 어떤지 영원히 알 수 없었을 테니까. 

그렇지만 무턱대고 그러라고만은 말할 수 없었다. 난 올드 포트에서 혼자 걷다가 어깨를 움츠려 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러 가기 위해 환승하는 과정에서 내린 낯선 동네에서 온갖 멸시와 비웃음이 담긴 눈빛을 받으며, 두 명의 나 같은 친구와 침묵 속을 걸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덥고 습한 어느 도시에서 자신의 말에 대꾸해주지 않았다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욕을 퍼붓는 남자의 목소리로부터 찌드는 듯한 불쾌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치들이 내 안에 쌓이면 피로가 된다. 영영 내 영역에 마음의 발이 묶이게 된다. 여기에 사람들이 얹는, 충고나 걱정의 탈을 쓴 간섭은 덤이다. 


나는 안전하고 싶었다. 안전을 위해 불시에 들이닥칠지 모르는 위험을 경계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조심하고 싶었다. 하지만 동양인 여자라서 조심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여느 여행지에서나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어 있는 나를 볼 때면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별 걱정 없이 여행을 다니는 남자인 친구들을 볼 때는 자기혐오가 더욱 강하게 밀려들어왔다. 어느새 내 정체성에 대한 나의 감각은 객관적인 피해의식과 열등감 사이를 아슬하게 줄타기하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미워해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도 그랬다.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경험이 수많은 층위를 이루며 만들어진 나의 태도가 쉽게 바뀌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코로나 때문에 최소한의 자유도 오랫동안 제한당한 채 살아왔지만, 다시 세상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게 된다고 해도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세상을 누리고 싶다. 다른 사람들도 느끼는 가능성을 맛보고 싶고, 온갖 경이로운 풍경을 바라보며 행복을 느끼고 싶다. 마치 몽루와얄에 올라 도시를 바라보며 아침의 기억은 모두 잊었던 것처럼, 해가 진 그곳에서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숲길을 내려오면서도 공포보다는 희열이 앞섰던 것처럼 말이다. 걱정 때문에, 타인의 잘못 때문에 압도적인 경험으로부터 차단되고 싶지 않다.


다시 어딘가를 여행하게 된다면, 겁을 내며 몸을 사리고 있는 내 여행 자아의 기를 살려주고 싶다. 먹어 본 적 없는 음식을 먹이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애매하게 뜬 시간을 아무 카페에서 지루하게 보내게 하면서.


몬트리올 미술관

그래서 몬트리올의 어디가 그렇게 좋았느냐 묻는다면 몬트리올 미술관에 가 보시라고 하고 싶다. 몇 동의 건물로 되어 있어서 꽤 크니까 몇 시간을 잡고 일찍 가라고도. 

++ 위에 몇 번 언급한 몽루와얄 언덕에는 일출시간을 정확히 재서 갔다. 위의 사진처럼 몬트리올 시내 전경이 다 보인다. 낮에 가도 좋을 것 같고, 일출시간이나 야경을 보러 밤에 가도 좋을 것 같지만 돌아가는 길에 가로등이 하나도 없어서 꽤나 어둡다.

올라가는 길에는 이렇게 멋있는 호수도 있었다. 

Crew Cafe에도 몇 시간 앉아있었는데 커피랑 베이커리도 맛있고 좋은 공간이었다. 원래 캐나다 왕립은행이었던 공간을 카페로 만든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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