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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유 Oct 27. 2021

1-4. 설탕과 카페인이 흐르는 도시

포틀랜드에서 먹은 것들


빨갛고 귀여운 포틀랜드 역. 여기서 어딘가로 이동할 때는 대중교통보다 우버를 추천한다.


시애틀 → 포틀랜드

2019.08.24~2019.08.27

동행: 엄마

방문한 장소: 다운타운, 워싱턴 파크(장미정원, 포틀랜드 일본 정원), Powell 서점, 각종 가게, 각종 카페. 


포틀랜드는 시애틀에서 기차로 약 세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도시다. 내가 미국을 여행할 무렵, 포틀랜드는 힙의 도시로 한국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특히 힙에 죽고 힙에 사는 우리 언니는 애초에 같이 미국 여행을 가기로 계획했을 때, 포틀랜드 여행을 가장 기대했었다. '베리 포틀랜드'라는, 또 다른 힙에 죽고 힙에 사는 사람이 쓴 포틀랜드 책을 구매해 읽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언니와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밴쿠버에 오래 머무는 대신 시애틀 여행에 머무는 기간을 줄이고 포틀랜드에 오래 있기로 합의를 봤다. 그리고 언니 대신 엄마가 여행을 하게 되었고... 포틀랜드는 힙을 잘 모르는 나에게 딱히 잘 맞는 도시는 아니었다. 

한편, 나는 또 물 같은 성향이 있어서 같이 여행하는 사람에 따라 스타일이 많이 바뀌는 편이기도 했다. 언니와 여행했다면 힙죽힙살 언니를 따라 각종 힙한 장소들을 즐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동행은 힙보다는 랜드마크나 아름다운 자연을 더 좋아하는 우리 엄마였다. 엄마는 포틀랜드 장미정원이나 미술관에 갔을 때 가장 환하게 웃었고 나머지 시간에는.. 좀 지루해하셨던 것 같다. 타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 역시... 덩달아 지루해졌다... 내 기억 속에 포틀랜드는 그렇게 예쁘고 힙한 벽돌 건물들을 바라보면서 지루함에 하품을 한 곳, 내지는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주는 와인을 받아먹다가 다음날 숙취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곳으로 기억된다(엄마 미안)

사실 포틀랜드에서 먹었다고 하긴 뭐하고 시애틀에서 포틀랜드 가는 기차에서 먹은 시나몬롤과 바나나 브레드... 바나나브레드가 있어 북미 생활 행복했다.

라고 하면 과장이고, 그럼에도 포틀랜드에는 기억할만한 것이 있었다. 카페인과 밀가루와 설탕! 포틀랜드에는 맛있는 음식, 특히 달고 맛있는 음식이 많았다. 음식이 달고 맛있으면 아주 반기는 나로서는 살짝은 지루한 포틀랜드에서도 먹을 때만큼은 행복했다. 게다가 포틀랜드는 왠지는 몰라도 카페의 도시이기도 하다. 카페를 찾아가는 게 지겨울 정도로 이 카페 저 카페를 찾아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소개하려고 한다. 내가 어디에서 뭘 먹었는지. 


왜 아이스크림 사진을 찍을 때 기차에서 챙긴 휴지를 치우지 않았는지는 의문...

1. Ruby Jewel Ice Cream- North Mississippi Ave (폐업)

Ruby Jewel Ice cream은 포틀랜드에 지점이 세 개나 있을 정도로 핫한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가게 분위기는 정갈하고 귀여운 느낌이었다. 사실 먹었을 때 아주 특별한 느낌을 받지는 않았고, 전형적인 달고 사르르 녹는 아이스크림이었지만 뭔가(당연히 그래야겠지만) 배스킨라빈스보다는 깔끔한 맛을 자랑했다. 

가게가 위치한 North Mississippi Avenue는 우리가 머물던 숙소가 있던 곳이기도 했다. 근처에 있던 태국 음식점이 마음에 들어서 두 번이나 방문해 식사를 했다. 아이스크림 가게 외에도 수공예품이나 차를 파는 가게 등이 있어서, 식후나 비는 시간에 구경하러 돌아다니기 좋았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지도 앱에 찾아보니, 세 개의 Ruby Jewel 지점 중 두 개는 폐업했다고 나온다. 내가 방문했던 지점도 폐업이다. 코로나의 영향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여섯 달 전에는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 하나 남은 건 다운타운 쪽에 있는 듯하다. 혹시 포틀랜드 다운타운을 돌아다니다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졌다면 Ruby Jewel을 추천하겠다.

2. 미안하지만 어딘지 잘 모르겠는 브런치 가게.

정말이지.. 상호가 생각이 안 난다. 사실 상호를 기억하고 있는 게 더 이상한 일이라고는 생각하긴 하지만... 구글 지도가 소름 돋을 정도로 내가 어디 있었는지 잘 추적하기에 구글의 힘을 빌려 상호를 알아내 보려 했으나, 구글에도 안 나오는 거 보니 폐업했거나 한 것 같다.

그렇지만 저 가게에 가게 된 경위는 뚜렷이 기억난다. 부두 도넛, 스텀프 타운 로스터스(는 포틀랜드 여기저기 있긴 하다), 마더스 비스트로 등 포틀랜드의 맛집이 많은 올드타운에 있는 가게였다. 우리는 마더스 비스트로에서 브런치를 하러 올드타운에 갔는데, 주말이라 그런가 마더스 비스트로의 대기가 꽤 길었다. 마더스 비스트로는 다음에 가기로 하고 갔던 옆집이 저기다. 

메뉴판의 화려한 비주얼에 혹해서 팬케이크를 주문했는데, 맛은 비주얼을 따라주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확실히 미국에 있으면서는 저렇게 달고 자극적인 음식으로부터의 접근성이 높아서 재미있기도 했다. (그만큼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3. Mother's Bistro - 올드타운

한국으로 따지자면 엄마 식당. 포틀랜드 여행 전에 관련 정보를 찾으면 꼭 등장하던 곳이다. 웨이팅을 감수해서라도 먹을 가치가 있다나 뭐라나. 그렇지만 내가 처음 방문했을 때는 웨이팅이 심각하게 길었기 때문에, 한산한 평일에 먹기를 선택했다. 도저히 주말에 밖에 시간이 안 난다면 일찍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가게 분위기는 미국 동화책에 나올 거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 테이블을 담당했던 사람은 'gotcha'라는 말을 아주 좋아하는, 쾌활한 아저씨 웨이터였다. 전날 팬케이크를 먹었던지라 와플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와플을 달라고 했더니, 그날은 스페셜 메뉴로 베리와 휘핑크림을 올린 와플이 있다고 그걸 먹겠냐고 했다. 설명만으로도 충분히 맛있어 보여서 당장 달라고 했다. 엄마는 조촐하게 베이글을 시켰다.

스페셜 메뉴였던 베리 와플은 꽤 맛있었다. 생크림도 적당히 달짝지근했고, 내 기억에 베리는 냉동이 아니었다. 와플에서도 밀가루 냄새가 너무 나지 않아서 베리-생크림-와플과 시럽의 합이 참 잘 맞았다. 쾌활한 웨이터 아저씨와 맛있는 와플 덕에 즐거운 브런치를 했다.

사진 보니까 또 가고 싶다.

4. Blue Star Donuts - 다운타운

북미에 있는 동안 제일 많이 먹은 빵이 뭘까? 주저 없이 도넛이라고 답할 듯하다. 이때 이렇게 도넛을 먹고 한국에서는 도넛 섭취량이 10분의 1 정도로 준 듯하다. 물론 제일 많이 먹은 도넛은 팀 홀튼의 기름 눅눅한 싸구려 도넛이지만, 가장 '맛집'스러운 곳에서 먹은 도넛은 이곳, Blue Star Donuts의 도넛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포틀랜드에는 voodoo dunut이라는, 관광객들에게 꽤나 유명한 도넛 프랜차이즈가 있다. Mother's Bistro 옆이라 나도 지나가다 봤는데 도넛이 예쁘고 가게 분위기가 귀여운 게 매력이었다. 그렇지만 어디선가 부두 도넛은 너무 달고, 찐은 블루스타에 있다고 해서 다운타운에 갔을 때 맛봤다.

엄마와 나는 애플 사이더 프리터와.. 그리고 뭐였는지 생각 안 나는 도넛 하나를 나눠 먹었다. (위의 사진 상에서 오른쪽에서 네 번째 도넛을 먹었는데 뭐였을까) 이 가게 도넛이 좋았던 이유는 너무 기름지지 않다는 점이었다. 도넛을 잘못 만들면 눅눅하거나 지나치게 느끼해질 수 있는데, 이 가게 도넛에는 산뜻한 단짠이 있었다. 여행하다가 지쳤을 때 들어가서 커피 한 잔이랑 갈라 먹기 딱 좋은 맛이었다. 



Stumptown Coffee Roasters. 가게를 찍으려 했으나 사람이 더 많이 찍힌... 그나저나 마스크 없이 저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니 좋은 시절이었다.  

커피, 커피, 커피!

그 외, 포틀랜드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카페가 많은 도시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커피 투어를 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포틀랜드에서 시작해 캘리포니아, 뉴욕 등으로도 진출한 Stumptown Coffee Roasters부터 정말 다양한 카페에 방문했다. 사실 포틀랜드는 많은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진 Powell's City of Books 서점, 그리고 넓어서 구경할 거리가 많은 장미정원과 포틀랜드 일본 정원, 포틀랜드 미술관(추천함) 정도 말고는 딱히 구경거리랄 게 없는 도시다. 그렇기 때문에 다운타운이나 펄 디스트릿, 노스 미시시피 등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아무 가게나 구경하고 다리 아프면 카페에 들어가기 쉬운 구조였다. 좋은 점은 일정에 쫓길 일은 없어 마음이 편하다는 것인데, 단점은 사실 카페의 분위기라는 게 (위에 다양한 개성을 가졌다고 쓰긴 했지만...) 유별난 곳은 없어서 결국 내가 어디 갔는지 또렷이 기억은 안 났다는 점이다. 


내가 방문한 카페:

- Stumptown Coffee Roasters (Old Town 지점을 갔는데 여기저기 있다.)

- Sisters Coffee Company in The Pearl District (이름처럼 Pearl District에 있음. 여기서 파웰 서점에서 산 책을 조금 읽으려고 시도했다.)

- Public Domain (다운타운 어드메였던 것으로 기억)


구글 지도에 따르면 커피 로스터스에는 이 정도 방문한 듯하다. 포틀랜드 특유의 벽돌 건물들이 그 사이에 둘러싸여 커피를 마셨을 때 나를 힙스터처럼 느끼게 해주기도 했다. 물론 일주일 넘게 여행한 여행자의 행색상 그러기 쉽지는 않았지만. 


아주 전형적인... 포틀랜드 길.. 예쁘다...


결국 포틀랜드를 내 식대로 정의하자면 맛과 멋 그리고 여유가 있는 도시라고 할 수 있겠다. 도시를 떠나고 나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한국의 연장선 같았던 밴쿠버나 북적거리는 시애틀 다음 도시로 이렇게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고 정겨운 포틀랜드를 선정한 것은 꽤 괜찮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여기까지가 엄마와 함께한 북미 서쪽 여행기의 끝이다. 엄마는 나와 함께 토론토까지도 갔다가 한국으로 돌아갔다. 출국하면서 엄마는 자신이 너무 마음이 급해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하셨지만, 한편으로는 엄마가 아니었다면 아주 루즈하고 저효율적인 여행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분도 들었다. (퀘벡 편을 참조)



+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포틀랜드를 아주 살기 좋은 도시라고 표현했는데,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게 물건을 살 때 세금이 하나도 붙지 않아서 물가가 아주 싸게 느껴진다.

++ 이상하게 거기 있을 때는 그렇게 좋다는 느낌 안 들었는데 한국에서 생각 많이 나는 도시다. 이곳만의 독보적인 분위기(자유로우면서도 차분한)가 있어서 그렇다는 생각. (그래도 3박 4일은 너무 길고 2박 3일이면 충분한 듯) 

+++ 이제 바쁜 게 거의 끝났기 때문에 나의 여행기 연재 역시 계속될 예정이다. 몬트리올-퀘벡 여행기를 가지고 돌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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