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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유 Nov 22. 2021

아름답지 않은 청춘의 면모

<콩트가 시작된다>

드라마 <콩트가 시작된다>(2021)의 스포일러가 있음.


@한국일보


이제 너무도 식상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청춘은 썩 아름다운 시절은 아니라는 말에 공감한다. 당장 내 청춘만 해도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다. 지나고 보면 가치 있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고마운 추억이 될 수도 있겠지만(지금 돌아보는 십 대 시절이 그러하듯), 당장 이 시기 안에 있는 사람에게 삶은 언제나 피곤하고 눅진할 뿐이다.

예쁜 청춘 이야기는 세상에 많다. 청춘의 애환을 다루는 듯하면서 결국 찬란한 결말로 끝을 맺는 청춘의 이야기 역시 많다. 그런 이야기들도 좋아해 왔다. 하지만 때로는 피로감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저 드라마 주인공들과 달리, 저 영화 속 사람들과 달리 내 인생에 불만이 많다. (혹은 마냥 싫어하지만은 않는다.) 내가 나누는 사랑은 저렇게 예쁘고 화사한 빛깔이 아니다(동시에 저렇게나 비참하지 않다.) '위로'가 되어 준다는 청춘물을 볼 때면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뒤엉켰다. 물론 엉킨 생각의 타래를 한편에 치워 두고 이야기 속에 과하게 몰입해 있는 모습도 나였지만.

몇 달 전 방영한 일본 드라마 <콩트가 시작된다>를 봤다. 드라마의 남녀 주인공인 스다 마사키와 아리무라 카스미가 나온 영화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그들이 또다시 공연한 드라마를 기어코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드라마를 무척이나 좋아하게 되었다. 십 년간 콩트를 해 왔지만 무명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개그팀 '맥베스'를 중심으로 여러 의미에서 실패하거나 헤매고 있는 20대들의 이야기다. 소개만으로도 초라하다. 그렇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사실 나와 내 주변의 삶에서 크게 멀어져 있지 않다. 포기해야 하나 포기하지 말아야 하나의 영역에서 하는 자기 자신과의 자존심 싸움. 성실하게 사는 일에 배신당하고 피로를 느끼는 마음. 나아가는 일을 회피하게 되는 매일. 자살사고(나는 꽤 최근까지도 친구들이 죽을까 봐 걱정했다). 가족과의 갈등. 무엇 하나 나 혹은 내 주변과 먼 이야기가 없었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좋았다. 위에 나열한 우중충한 말들은 결코 내 삶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부분들이다. 결국 이고 살아가야 한다면 그런 영역을 과하게 연민하기보다는 조금씩 극복하고 성장해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그런 극복이나 성장이 대단한 여정은 아니었으면 하는 심정도 있다. 매일의 사소한 변화나 결정으로, 조금씩 해나갈 수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왔다. 

나는 <콩트가 시작된다>가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것을 그대로 돌려주는 드라마라 무척 반가웠다. 드라마의 톤은 (일본 드라마 치고) 매우 덤덤했다. 모든 인물들이 아주 중대한 고민들을 헤쳐내 가는 과정을 그리면서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 정도의 톤이었다. 그들이 때로는 어처구니없이 실수하고, 실없는 농담을 나누고, 그러다가도 결심을 내리는 과정 하나하나에 진득이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위에도 썼듯이, 얼핏 아주 특수한 상황에 놓인 것 같은 그들의 이야기가 너무도 가까이 놓인 듯 선명했기 때문이다. 마치 드라마가 끝난 지금도, 등장인물들의 삶이 끝없이 이어질 것처럼.

이렇게 길게 썼지만 결론은, 요즘에는 아주 드라마틱한 이야기보다는 그냥 가까이 있을 것 같은 사람들 이야기가 좋다는 말인 듯하다. (아니면 아예 세계관 자체가 다르거나.) 바로 옆에서 숨 쉬는 듯한 인물들과 이야기 덕에 또 힘을 얻어 가는 연말이다. 

후술할 '얼굴합'...

+ 상기한 스다와 아리무라 주연의 영화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최근 일본에서 크게 히트한 영화다. 생각해 보니 '콩트가 시작된다'와 어느 정도 상통하는 결이 있는 듯하다. 그건 그렇고 덕질해본 사람이라면 무척 좋아할 듯하다 이 영화. 나는 좋아했다 적어도. (그리고 삽입곡들도 너 무 좋음)

++ 스다 마사키 이 드라마에서 스타일링 마음에 든다. (어떻게 단발이 잘 어울리지?) 드라마 보면서 그의 노래도 자주 들었는데(제일 좋아하는 건 ばかになちゃったのか(바보가 돼 버린 걸까). 명곡...) 얼마 전에 결혼했다고 해서 슬펐다. 왜냐면 나는 아리무라와의 얼굴 합을 밀고 있었기 때문.(제발 미디어 속 커플과 실제 배우의 삶을 혼동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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