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고 처음 마주하는 공간은 나를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게 만든다.
후다닥 전화를 받고, 2층 데스크로 내려오니, 내국인 뿐만 아니라, 각국의 문화권에서 나온 다양한 사람이 입구부터 쭉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처음 본 나는 속으로 "우와, 이렇게 병원이 잘 되는구나."와 동시에, 이 환자분들을 어떻게 케어해드리지?"라는 걱정이 두배 더 앞서게 만들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는 찰나, 2층 데스크 벽면 한 쪽에서 서류를 급히 넘기면서 무언가를 체크하고 있는 한 직원이 나에게 형식적이고 다소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찾았다.
"저기, 영어과에서 새로 오신 분 맞죠? 여기, 새로오신 환자분들 차트를 우선 작성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외국인 분같은 경우는, 00앱을 저희가 쓰는데, 그 앱도 쓰시는지 같이 체크해주세요. 그리고 차트 작성할 때 유의점 알려드리면, 인적사항, 수술 희망 부위, 기본 지병같은 것들이 있는지 등등 기본적인걸 빠르고 정확하게 기입 도와주신 후에, 대기하게 하시면 되요."
"아..네, 알겠습니다." 나는 겉으로는 이렇게 답했지만, 순간적으로 내 머릿속에 너무 많은 인풋이 들어와서 순간 벙쪄 있었다. "뭐라고.. 방금 내가 들은 게 무엇이지?" 라고 생각했지만 길게 생각을 허락하기에는 그 당시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갔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차트를 몇 개씩 손 한 쪽에 들고, 한 쪽으로는 펜을 든 후에, 내방객 한 분 한 분을 정성스럽게 응대했다.
먼저, 내국인 분부터 차례대로 차트 작성을 도와드렸다. 한 분은 딸과 같이 오신 어머님이셨는데, 딱 봐도 고급스럽고 부티나 보이는 숄과 무스탕, 이너로 호피무늬 스웨터를 입으신, 한마디로 돈 꽤나 있어보이는 사모님 같으셨다. 그 어머님은 따님과 함께 오셨는데, 이번에 수능시험 성적이 꽤나 잘 나와서 원하는 선물이 쌍커풀 수술이라고 해서 그 소원 성취를 들어주기 위해 같이 내원했다 하셨다. 짧은 에피소드, 형식상의 스몰토크가 몇 차례 오고 간 뒤에, 나는 잠시 대기를 하라고 하신 후에, 내 직속 상관을 호출했다.
잠시 뒤, 내 직속 상관인 상담실장이 2층에 도착했고, 그 환자분을 어디론가 데려갔다. 바로 상담실 안이었고, 거울과 계산기, 펜 같은 것을 들고 환자분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잠깐 찰나로 본 결과 소위 말하는 수술 하기 전에 '디자인'을 구상하는 의례적은 프로세스 같아 보였다. 그러면서, 계산기로 두드리면서 소위 이렇게 수술을 진행하면 얼마가 나올지까지 총합을 뽑아주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러는 동안, 나는 숨가쁘게 다른 외국인들을 맞고 있었다. 한 분은 필리핀에서 오신 분이셨는데 영어는 쓰지만, 언어 자체의 악센트가 내가 소위 들리고, 익숙한 그 느낌의 언어가 아니라 매우 투박했다. 초반에는 너무 듣기가 힘들어서, 계속 "Could you say that again, please?" 라고 말하였고, 그 분은 다행히도 인자한 미소를 띄면서 "Yes, sure. I got a problem.. I want to get a surgery in my eyes, nose." etc...등 차분하고 담담한 어투로 대화를 이어 나가셨다. 다른 문화권에서 온 분이라, 어떻게 대해야 하나, 걱정이 되었지만 첫 출근에서 응대한 것 치고는 나쁘진 않았다라고 나 스스로 자족하면서 한 분씩 응대하고 마침내 큰 실수 없이 마무리가 되었다.
"저기, 이제 차트 작성은 다 도와드린 것 같은데요.. 이제 4층 올라가면 될까요" 라고 2층 데스크 직원 한 분에게 물어보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방대한 자료들을 나에게 주고, 3층과 4층 사이에 비상문이 하나 있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는 비밀번호와 이 자료를 어떻게 보관하고 다루는지도 함께 알려주었다.
"네." 알겠습니다. 하면서 나는 또 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지인 3층 반, 그러니까 비상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띠띠띠 ~ 띠리리리. 경쾌한 소리음과 함께 문이 딸깍 하고 열렸다. 안에는 정말 도서관같이 많은 책들, 자료들이 어떤 조건에 맞게 분류되어 있었고, 년도도 정말 예전 자료들부터 있어서 한참을 찾아야 했다.
이 자료를 찾는 목적은, 예전에 수술한 환자분의 기록이나 경과를 볼 때 참고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 보는 아주 중요한 자료이다. 성형외과의 특성상, 수술을 하고 나서, 크고 작은 부작용을 경험할 수도 있고, 개인의 체질상 수술로 인해 많은 변수를 맺기 때문에 꼭 살펴야 한다.
한참을 매서운 눈을 크게 뜨고 자료 탐색에 시간을 들인 후, 끝내 하나를 발견했다. 그래도 다행히, 내국인의 자료를 찾는거라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특정인 한 분의 진료 이력, 질병, 인적 사항, 수술 이력, 경과 등이 자세히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조심스레, 자료들을 챙기고, 2층 데스크 직원에게 건넨 뒤에, 나는 다시 4층인 영어과 사무실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내 배 안에서는 꼬르륵 거리는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손목 시계를 쳐다보니, 오후 3시 반이었다. 점심시간이 한참 흐른지도 모를만큼 바쁘게 움직인 터였다. 옆에서는, 링거를 들고 환자복을 입은 내국인 두분과, 내가 차트 작성했던 필리핀 출신 분이 나란히 서 있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 3층에 쪽문으로 들어갔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허리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라,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기서 일한지 꽤나 되어보이는 식당 조리원 아주머님 세 분이 날 반갑게 응대해주셨다.
"아이고, 얼른 와, 의사 분들만 빼고 거의 다 드셨어."라고 하신다. "앗 네!! 알겠습니다."라면서 식판을 하나 들고 부지런히 음식을 담았다. 겨우, 한숨 돌리고 먹기 시작할 즈음, 내 뒤로 비상 전화가 띠리링~울려댔다.
"네, 3층입니다."
"아, 네. 4층 영어과에 호출했는데 지금 아무도 안 계시네요. 여기 영어권 환자분이 한 분 도착했는데 통역이 필요해서요."
아..이게 뭐람. 이제 막 식사하기 시작했는데, 또 일을 해야한단 말인가! 황급히 수저를 내려놓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그대로 주욱 하고 미끄러져 넘어졌다.
그 광경을 보자, 세 분의 식당 조리원 아주머님들이 황급히 와서 나를 일으켰다. "아이고, 괜찮아? 조심하지."
"네, 감사합니다."
속으론 엄청 아팠지만, 나름 프로정신을 발휘해서 몸을 일으키고, 나의 도움을 요청하는 곳으로 빨리 걸음을 옮겼다.
"아..이번엔 또 무슨일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한층으로 내려갈 수도 있었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싶었다.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 흰 가운을 입은 훈훈한 의사 선생님이 계시는 것 아닌가!
이 분은 처음 뵙는것 같은데..음 인사를 먼저 걸어볼까?라고 생각하면서 속으로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