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쁨 속에서, 채워지고, 배워가는 여정들

성장은 스스로 역경을 극복해나갈때 얻을 수 있는 선물이다.

by 이유미

한참동안 의학용어들을 줄줄이 나만의 노트에 작성해나갔다. 쌍커풀은 Double fold eyeliplasty, 매몰법은 절개가 없는 쌍커풀로, 약어로는 NI (Non incision double), 앞트임 epi ( Epicanthoplasty )등등. 간략하게 용어들을 정리했고 특히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은 눈 관련 성형을 환자분들이 많이 수술하고 가시는 병원이기에 인터넷 자료들로도 많이 찾아보기도 하고, 직속 상관분께도 열심히 도움을 요청하고 배워나갔다.


사실 지난 일주일동안 무엇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몸과 마음이 24시간 긴장한 채 세팅이 되었고 그에 따라서 생체 시계가 돌아갔던 터라,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몸이 먼저 반응하고 일어났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아, 오늘은 퇴근하고 집에 가서 바로 쉬어야지." 유니폼을 환복하고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나서, 구두를 편한 플랫 슈즈로 갈아 신었다. 신사동에서의 일주일은 이렇게 또 정신없이 갔다.


집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해가 한참 지고 난 오후 8시 반이었다. 땀 냄새가 조금 배어든 유니폼을 세탁기에 영혼 없이 던져놓고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앞으로, 한달, 두달 그 뒤는 어떻게 될까? 생각하며 양 한 마리, 두 마리를 세었다. 그대로, 잠들었다.


다음날이 되었고, 다시 출근날이 다가왔다. 아침 7시가 되니 자동으로 눈이 떠진 터였다. 어제 퇴근 시간에 쭉 정리했던 나만의 성형외과 자료 용어 모음집 노트를 가방에 밀어넣고서, 다시 신사동으로 향했다. 마음은 여전히 여러가지 걱정, 불안들로 소란했지만 어제 퇴근하고 바로 잠들었던 탓인지 몸은 한결 가벼워졌다.


4층 영어과 사무실에 짐을 풀고, 유니폼으로 다시 환복하고 구두를 챙겨 신었다. 다시 업무용 나로 돌아온 나는, 그에 맞게 다시 가면을 써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특히, 성형외과에서는 환자에게 보여지는 이미지가 곧 병원의 신뢰도로 이어지는데, 그 이미지라는 것이 외모가 거의 100% 차지했다. 아니, 90% 이상이라고 보는게 맞겠다. 왜냐하면, 정말 말그대로 풀메이크업을 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가끔은 마음의 압박으로 작용했다. 물론, 회사에서는 일정 정도 깔끔하고 단정하게 보인 채로 출근을 하는 것은 맞지만, 특히 이 업계에서는 그러한 요구 조건이 강했다.


화장할 시간이 없어서 가방에 잔뜩 챙겨온 화장품이 담긴 파우치를 조심스레 열어서 샘플용 스킨과, 눈 화장을 순서대로 하고, 립스틱을 발랐다. 그러고 나니, 차례대로 나의 직속상관 두 분이 사무실로 들어오셨다.


"아,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네, 00씨, 좋은 아침이에요. 오늘은 오전부터 할 일이 많네요. 오늘부터 3일간 수술을 참관하시는 레지던트 한 분이 외부에서 오시는데 통역이 필요해요. 저번처럼 경과 보는 통역이나, 수술할 때의 통역은 아니지만, 새로 오신 의사분이 긴장하지 않도록 우리 병원 잘 안내해주시고, 수술 참관하실 때 주의사항, 궁금한 점을 잘 들으셨다가 통역 해주시면 됩니다."


오자마자, 업무 전달을 받으니 살짝 정신이 멍했지만, 마음과는 달리 몸이 먼저 "네, 알겠습니다!."라고 기계적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이쯤이면 벌써 사회적 가면이 단단히 입혀진 것인가, 생각하며 속으로 웃었다.


통역이 필요한 곳은 저번처럼 수술실 7층이었다. 이상하게 수술실만 들어가면 긴장이 두 배, 세 배가 증폭이 된다. 심장박동은 더 빨리 뛰고, 신경계는 초비상 상태가 된다. 물론, 나의 신경계 알람 덕택에 바짝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제어해주고 만들어주긴 하지만 말이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7층에 도착했다. 7층 수술실에 들어올 때는 늘 힘차게 "안녕하세요, 영어과입니다,"라고 외치면서 들어가라고 하셨던 직속 상관분의 당부가 있으셨던 터라 이번엔 잊지 않고서 연신 인사를 정중하게 하면서, 이윽고 긴장감이 펼쳐질 수술실 앞 작은 문으로 들어갔다. 기다리고 있으니, 수술실 간호사 분으로 보이는 한 분이, 한 손엔 차트를 들고 계셨다. 그리고, 바로 그 뒤로, 파란 색 얇은 수술실 가운을 입으신 외부에서 참관하러 오신 의사분이 오셨다.


"안녕하세요!" 저는 영어과 000입니다. 통역하러 왔는데요.


"아, 네! 여기는 새로오신 레지던트 분이시고, 저희 병원 수술 참관 차 3일간 수술 집도하시는 걸 보실 예정이세요." 궁금한 점 있으신지 여쭤보시겠어요?


간호사의 말에, 나는 병원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는지, 수술할 때 주의 사항 같은 것을 간호사 분이 전달한 대로 그대로 옮겼다.


"Hi, My name is you mi Lee. I'm from English department in this hospital. I'm here to let you know the regulation of this hospital. First, You wash your hands thorougly before you enter the surgery room and be very careful when you use the tools that placed in this surgery room. Second, do not allowed to take pictures on the surgery progress or in this room. If you have any questions, feel free to contack me.


간단하게 몇 가지 주의사항을 전달한 후, 참관 의사 분은 알겠다고 하셨고, 처음 오셔서 약간 긴장한 모습을 보였지만, 수술 경험 많은 우리 병원에서 많이 배우고 싶어하는 열렬한 학생과도 같은 모습이어서 나도 마음 속으로 잘 하시길 기도하고, 응원했다. 나의 임무를 마치고, 난 다시 4층 사무실로 내려갔다.


나를 채용해 주셨던 직속상관 분은 내가 차트 정리 하는 법을 아직 시간이 없어 못 알려 주신것 같다고 하면서, 꼼꼼히 알려주셨다. 우선 환자분의 인적 사항부터 기록하시고, 그 다음에는 환자분의 희망 수술 부위를 약어로 기입하시면 되요. 예를 들면, 눈 수술 중에 매몰법을 희망하시면, NI(Non incision double) 이렇게 표기하시면 되요.


친절하고 상냥한 직속상관분 덕택에 나는 한결 더 용기낼 수 있었다. 워낙 정리 되어야 마음 편한 J형 스타일인데, 이 분 또한 나와 왠지 비슷한 성향과 결을 갖고 계신 것 같아서 한결 편해졌다. 그리고, 어떤 업무적 도움 뿐 아니라 편하게 사담을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연대감도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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