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게 전부는 아니다, 결국 보고 싶은 걸 크게 볼 뿐이다.
사람마다 자신에게 없는 부분이나 결점, 부족한 부분을 누군가가 갖고 있으면 뭔지 모르게 공연히 비교도 되고 질투도 나기 마련이다. 그 비교되는 대상은 누군가 열심히 노력해서 쌓아올린 명예일수도 있고, 돈, 사회적 지위, 평판 그 외 다른 무엇일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같은 경우는, 이러한 눈에 '보여지는 것' 외에 다른 것에 훨씬 더 공허함이나 갈증을 자주 느끼곤 했다.
그건, 바로 누군가가 삼삼오오 모여서 신나게 떠들고, 화기애애하게 보이는 모습을 볼 때가 그렇다.
까페에 갈 때, 음식점을 갈 때, 서점을 갈 때 내가 좋아하는 그 어디를 갈 때에도, 그러한 모습은 자주, 그리고 흔히 눈에 띈다. 흔히들 그런말이 있지 않은가.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걸 본다고 했던가. 내 시야와 관점에서는, 누군가와 감정적 교류를 하고, 유대감을 맺으며 정서적 친밀감을 주고 받는, 그로 인해서 서로에게 깊은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사람 대 사람의 모습을 보면 그 모습이 너무 부럽고 질투가 났다.
오프라인에서도 그렇지만, 온라인에서도 각종 SNS 피드를 보면서 주변 아는 사람들이 올려놓은 사진을 볼 때면 하나같이 주변에 무슨 그렇게 사람들도 많아 보이는지, 그 안에서 미소짓고 즐거워보이는 모습을 볼때면, 허탈함이 모자라 울컥하는 날까지 내 감정의 스펙트럼은 다양한 층위를 왔다갔다 하기를 반복한다.
물론, 내 주위에 현재 친한 친구는 일하러 미국에 가 있고, 절친한 친구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연락이 잘 안된다. 그 외에도 친구는 많았지만 언제부턴가 각자 개인 사정으로 유유히 흩어져갔다. 그러면서 내 현재 상황에 잠겨있는 동안에, 다른 사람들이 올려놓은 피드를 보면, 내 주변 사람들은 다 어떤 사정들로 기존에 있는 사람도 연락과 만남이 안되는데, 저 사람들은 어떻게 오래 저렇게도 인연이 유지가 될까, 또 어떻게 저렇게 많을까? 생각이 든적도 많았으니까.
늘, 상대방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배려하고, 좋은 모습을 보이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르게 인연의 깊이나 온도, 그 관계의 유지기간은 늘 내가 기대했던 방향대로, 결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사람들을 좋아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어하고, 늘 누군가를 진심으로 대하려 하지만, 어느 순간에 돌아보면 그저 한때 연락을 유지했었던 관계밖에 남아있질 않다.
한번 그래도, 오랜만인데 해볼까? 라는 마음에 생각이 난 사람에겐 연락을 시도해본 적도 있었으나, 한 두번 의미없는 연락을 주고 받은 후에, 흐지부지 되기 일쑤였다.
관계 안에서 시행착오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다 내 탓이려니 하면서 이어나가려고 했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 노력과 의지와는 다르게 누군가와의 인연이라는 것은 내 마음만 있다고 해서 이어지지도, 또 붙여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사람은 각자 처한 환경도, 처지도, 성향도, 관계 맺는 스타일도, 각자 추구하는 인생의 우선순위나 가치관도, 관심사도, 취향도 다르기에 누군가와 아주 친밀한 관계로까지 발전된다는 것은 사실상 서로의 노력 외에도 여러가지 타이밍, 조건, 운 적인 요소들이 많이 필요한데 그저 나의 노력이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누군가와의 인연은 내가 줄을 100을 당긴다고 똑같이 100을 당기고 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 늘 내가 진심으로 대하고 관계의 온도를 따뜻히 유지한다고 해서 그 모습을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하고,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사람'의 기준이 다르기에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투영될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는다. 물론, 머릿속으로 깨달아진다고 해서 헛헛한 마음까지 사라지는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봤던 그 왁자지껄하고, 웃음 많고, 돈독해 보이는 남들의 관계 또한 내가 정서적 허기를 강하게 느낄 시기에 그 모습이 더 확대되고 미화되서 보인 것이지, 그 사람들의 관계가 미래에 어떻게 흘러갈지, 그 누구도 결코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사람과의 인연은 서로의 노력, 그 외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변수들이 당신과 나 사이의 끈을 붙잡아 줄 때가 훨씬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