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끔 힐끔, 영차 영차.

GTQ 1급 자격증 취득하는 가장 쉬운 방법(?)

by sliiky

돈 되는 일을 잘 하고 즐기기까지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림을 잘 그린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돈을 벌기가 어렵다. 내 스타일은 대중적이지 않고, 나는 셀프마케팅에 취약하며, 내 작업 프로세스상 다작을 하기도 어려우니까.


초조함이 폭탄심지에 붙은 불꽃처럼 내게 가까워지는 와중에, 내가 디자인을 아주 잘 하는 사람이면 좋았겠다고 자주 생각했다. 순수미술 전공을 하면서 디자인은 곁다리로 해야 할 일들이 종종 생겼기에 기본적인 것들을 할 줄은 알았지만, 이걸로 돈을 번다는 건 여전히 내게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할까. 배우려면 좀 더 어릴 때부터 했어야 하지 않나? 나는 왜 이렇게 뭐든 적당히만 할 줄 아는 거지? 남들은 죽도록 치열하게 사는데, 나는 그럭저럭 살만 하니까 안주하며 살았다는 반증일까?

그렇다. 나는 여전히 제대로 된 안정적인 생업을 찾지 못한, 곧 중년으로 분류될 청년이다.





어느 날 불현듯 어도비 프로그램을 구매했다. 어떻게든 배워두면 커리어든 생계든 여튼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미술전공자니까, 기본적인 미적감각은 있을테니 뭐라도 되겠지. (아마도.)


학원에 가기는 돈이 아깝고, 독학을 하자니 의지박약이라, 예술인복지지원센터에서 교육지원바우처를 받아 온라인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강의 이름은 <확실하게 끝내는 포토샵&일러스트레이터 초격차 패키지 Online>. 프로그램 내의 모든 툴의 쓰임을 설명하고 응용하는 내용이었다. 거의 매일같이 영상을 봤다. 그러다보니 관성적으로 모니터 앞에 앉아 하품하고 눈을 비비게 되곤 했다. 아, 역시 나는 목표가 없으면 금방 관둘 사람이다. 그래서 국가자격증이나 따보자는 생각으로 그래픽기술자격(GTQ-포토샵)시험에 접수를 해버렸다. 소심하게 일단은 2급으로.


우격다짐으로 그때그때 툴을 다뤄 온 것과, '시험용'으로 기술을 익히는 것은 결이 다르다.

30년 전에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의 촌스러운 이미지들을, 각 문제의 요구사항에 맞게 90분 내 완성하고 제출하면 되는 시험. 말은 쉬워 보이지만 나는 무척 긴장했기 때문에 시험준비를 정말 열심히 했다. GTQ관련 강의를 매일 듣는 것은 물론이고 시험꿀팁을 설명하는 유튜브를 찾아보고 시험난이도를 설명하는 블로그를 뒤져 읽었다. 특히 90분짜리 기출문제를 시험 전까지 총 50문제를 풀었으니, 아마 나만큼 시험준비를 열심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2급 시험은 비교적 쉬워서 1급을 따기 전 거쳐가는 연습게임처럼 생각했는데, 시원하게 낙방했다. 분명 완벽했다고 생각했는데 한 문제가 0점처리 된 걸로 보아, 파일 크기조절을 잘못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한 것 같다. 억울하고 아쉬운 마음에 바로 다시 도전한 1급 시험에서 결국 95점을 받고 합격했고, 반려인과 손을 잡고 기뻐서 방방 뛰었다.




나는 어떻게 '이미 늦었다는, 남들보다 뒤쳐져서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열패감을 누르고 일단 뭐라도 해볼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과거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100점으로 합격한 전적이 있었는데, 이처럼 나는 '돈을 내는' 시험을 허투루 볼 수가 없는 성격이다. 따라서 GTQ도 도 합격은 물론이고 고득점, 아니 기왕이면 100점을 받고 싶었다. 늦었다는 초조함 만큼 완벽하게 시작하고 싶었다. 반려인은 이런 나에게 "커트라인을 간신히 넘겨서 합격하면 오히려 개이득인 거 아니야?" 라고 말했다. 그건 맞지. 하지만 내게는 그건 그렇게까지 기쁠 것 같지 않았다.


시험장 안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분명한 건, 두 번의 시험 동안 내가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는 거다. 평소 나이와 도전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해왔는데도, 솔직히 나 정도면 젊은 나이임에도, 어쩐지 '늦은' 내가 자꾸 신경이 쓰였다. 검색해보니 어린아이들도 합격할 정도로 난이도가 어렵지 않다고 했는데도 나는 2급을 떨어졌으니, 또 돈을 날릴 수는 없다는 생각에 1급을 신청한 두 번째 시험 전날에는 잠이 오지 않아서 밤을 꼴딱 샜다. 추격전에 쫓기는 기분으로 시험을 봤다. 결국 95점으로 합격해서 기뻐하면서도 5점은 왜 감점이지? 라는 물음표 또한 내 몸을 돌아다녔다. 역시 나는 100점을 맞았어야 한다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결론이 나버렸다.


엉망진창 우사기


그러니까 일단 도전한 뒤에도 나는 계속해서 열패감과 싸워야했다는 말이다. 가수 god의 노래 <거짓말> 속 후렴구처럼 생각과 마음이 따로 놀았다. 떨어져도 돼(안 돼) 고득점 아니면 어때(안 돼) 난 늦지 않았어(늦었으니 더 잘해야지)...


어릴 때의 나는 어땠지. 지금의 굼뜬 내 모습을 본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나는 육상선수였다. 단거리 달리기도 잘 하는 편이었고 뜀틀, 멀리뛰기는 특히 더 잘해서 개인기록이 퍽 좋았다. 하지만 이내 관둘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시합에만 나가면, 누군가와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경쟁상대를 힐끔거리느라 제 기량을 펼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쟤는 어디까지 왔지? 쟤는 키가 크니 유리하겠지? 왜 나를 무섭게 보지? 0.1초라도 곁눈질을 하는 순간 승패는 바뀌어버렸고 나는 이 버릇을 끝내 고치지 못했다.


그나마 오랫동안 해온 운동, 요가수업도 떠오른다. 선생님이 내게 가장 많이 한 말들이 있다. "옆사람 말고, 자신에게 집중하세요."라는 말이었다. 난 다른 사람은 쉽게 하는 자세를 왜 나는 여전히 못 하고 있는지 답답해 했었던 것 같다. 그럼 선생님이 한 마디를 더 보탰다. "한 번에 좋아지지 않아요. 매일 조금씩, 어제의 자신보다 1센티씩만 나아지면 됩니다."라고. 선생님의 이야기가 무척 좋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옆 사람을 대놓고 보지는 않았지만) 거울 속에 비친 사람들을 교묘히 힐끔거렸다. (선생님은 눈치챘을까? 모른척했을까?)




육상을 할 때도 요가를 할 때도 내가 옆 사람을 힐끔거리느라 놓친 것은 내 근육의 움직임, 내 호흡, 내 몰입이었다. GTQ시험장에선 다른 수험생들을 살펴보거나 실수할까봐 과도하게 불안에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그간 내가 해 온 노력을 믿으면 되었다. 인이 배도록 열심히 했으니까.


비교는 끝이 없고, 결국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내 작은 성취조차 가려버린다. 나는 좀 더 나를 믿을 필요가 있다. '평균과 보통'을 정의하지 않아도 된다. '00보다 나은 나'가 될 필요가 없다. 지금의 나보다 나아지면 좋고, 어떤 부분은 좀 후져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냥 나로 살면 된다.


불행히도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누군가를 힐끔거릴 것 같다. 이만치 다짐해도 잘 안되는 걸 보면, 아마도 기질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절망할 것까진 없다. 어쩔거야. 당장 내년엔 GTQ-i(일러스트)도 이어서 따고 싶다. 또 조금 힐끔힐끔하면서, 영차영차 노력하고, 잘 봤는지 못 봤는지 불안해하며 시험장 근처의 맛있는 칼국수를 사먹겠지. 그냥 그런 나를 몰아세우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된다.



덧. 지티큐 합격 꿀팁? 그런 건 없다.연습만이 살 길.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하면 된다는 모범생 같은 소리 같지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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