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 개조 프로젝트?

우리가 서로의 다정이 되어 준다면-2

by sliiky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그래도 나아지려 애써봐야겠다 처음 결심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낮은 자존감 덕분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지금이야 '아직' 나를 사랑해서 곁에 있어 준다지만, 열등감과 무력감의 결정체인 내 곁에 그리 오래 머물러 주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의 내가 아니라 자신감 있고 당당했던 과거의 나를 그리워할 것 같았다. 이대로 가다간 지쳐서 나를 떠날 수도 있다. 그 두려움이 결국 나를 일어서게 했다.



제목을 자기계발서 챕터 제목처럼 써봤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격개조는 불가능했다. 그렇게까진 기대도 안 했지. 예민하고 불안한 기질은 개조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고, 박살 난 자존감은 그리 쉽고 빠르게 재건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방향전환은 할 수 있다고 믿어보려 애썼다. 마이너스에서 시작했어도 고군분투 끝에는 뭔가 있긴 있을 거라고. 그래서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 만이라도 나를 떠나지 않게 하겠다고.






조금 유치할지 몰라도 내게 좋은 기운을 가져다줄 것들을 곁에 두기 시작했다. 나는 직급이 없으니 일하는 공간에 이름을 붙이기 위해 방에 문패를 달았다. "나는 내가 좋아"라는 문구가 쓰인 두건을 쓴 인형을 샀다. 같은 내용의 자기암시박수를 써붙이고 눈으로 읽었다. 나의 장점 100가지를 꾸역꾸역 써서 출력해서 벽에 붙였다.


꾸준히 하는 일들도 늘렸다. 일기를 썼다. 며칠 못 쓰면 몰아서 쓰기도 했다. 일기 한편에는 To do list를 써서 매일의 작은 성취를 체크했다. 늘 벼락치기였을지언정 학습지영어를 지속했고, 나름대로 건강한 식단을 짜고 영양제를 챙겨 먹었다.


남들에겐 별 것 아닌 것일지라도 내게는 겁나서 못 했던 일들도 하나하나 시도했다. 눈물콧물을 흘리며 자전거를 배우고, 새벽감성으로 브런치작가를 도전하고, 최악의 일자리였을지언정 월급 받는 일을 해보고, 취약했던 종류의 자격증을 공부하고, 혼자 비행기도 타보고, 결국엔 상담도 받았다.



음, 나열해 보니 너무 간단하게만 보인다. 하지만 나는 고된 시간을 보내며 몇 년에 걸쳐 이것들을 '했다'.

전부 성과가 있거나 성공했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효능감이 내게 페스츄리처럼 켜켜이 쌓여갔다.






사실, 처음 결심과 다르게 내가 이런저런 시도를 '정말로' 실천하게 된 것은 내 곁의 좋은 사람들 덕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싶다.



나와 매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반려인은 예전 같지 않은 내 모습을 보며 안쓰러워했다. 그는 틈만 나면 내게 여러 가지 제안을 했다. 여러 가지 일자리, 내가 좋아했지만 지금은 하지 않는 운동, 다른 종류의 창작 같은 것들을. 대부분이 '나는 할 수 없는 일들'처럼 느껴져서 하하 웃고 말을 돌렸지만, 그의 말 끝에는 언제나 "00이라면 분명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말이 붙었다. 간혹 내가 지나가는 말로 "~~ 같은 거나 해볼까?"라고 하면 언제나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해 봐! 잘할 거야!"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언제나 나를 과대평가했는데, 그렇다고 잘하기만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완벽하지 않아도 돼. 못 해도 돼. 그냥 한 번 해보는 거야... 어떤 내가 되더라도 실망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렸다.



신랄한 비판을 너무 시원하게 잘해서 내가 '프로비난러'의 칭호를 붙인 친구가 있다. 연락을 자주 나누지는 않지만 한 번씩 만나면 솔직한 내 모습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어서 좋다. 내 마음은 언제나 양가적이고 복합적이며 모순적이었는데, 친구는 언제나 그걸 다 이해하는 것 같아서 신기하면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다소 PC하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낄낄거리면서도, 내가 의기소침해 보이면 갑자기 무척 속상해하며 송곳 같은 일침을 놓는다. 그러면 정신이 번쩍 든다. 내가 믿는 친구가 믿는 나를 믿고 싶어진다. 온전히 이해받는 느낌과 함께, 나와는 반대의 쌉T같은 특유의 다정함이 내게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최근 몇 년 새로 사귄 친구들도 있다. 우연히 듣게 된 팟캐스트 청취자들. 팟캐스트의 방향성이 나와 결이 맞다 보니 이 친구들과 급속도로 친해졌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고 닉네임으로만 아는 사이지만, 우리는 일상의 많은 부분들을 서로 공유하고, 나아가 함께라서 즐거운 많은 것들을 하게 되었다. 잘 모르는 사이인데 어떻게 가능할까 싶지만, 이상한 일이지만, 쌉가능하고 심지어 재미있다. 맛도 알고 멋도 아는, 세상이 좋은 쪽으로 굴러가도록 서로 손 잡는 조별과제 조장들. 좋은 걸 좋다고 말하며, 마음껏 나대고, 인생을 기세로 밀어붙이고자 하는 사람들. "하면 된다"보다 "하면 는다"를 믿는 사람들.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니, 사랑할 수밖에 없지. (결국은 맛있는 것을 많이 먹고 수다를 떠는 모임인 것 같지만.) 이들과 교류하는 건 애틋하고 따뜻하며 안전하다. 언제나 나를 환대하는 집에 초대받는 느낌이라고 할까.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면서도 손잡고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느슨하지만 강한 연대가 무엇인지 나는 정말 새로 배웠다.






누군가는 내 선택을 응원한다는 것, 내 작은 성취에도 호들갑 떨어 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나도 그리 형편없는 사람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사람이 주는 모든 다정함의 조각들이 내게 쌓여서 조금씩 열패감을 밀어냈다.

그러니까 내가 정말 조금이라도 달라졌다면, 그건 모두 (나조차도 나를 믿지 못할 때조차) 나를 지지하고 믿어주는 사람들 덕분이다.



물론 버림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여전히 나의 중심에 있어서,

어떤 '조건'을 충족한 내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남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싶다는 마음보다는,

내가 정말로 좋은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이것은 엄청난 변화다.



모두가 원기옥처럼 각자의 다정함을 시시때때로 보태주어 나의 재양육에 도움이 되었던 것처럼, 어쩌면 나도 그들에게 재양육 한 꼬집이 되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가능하다면 그들이 힘들 때 언제든 내게 와서 쉬었다 갈 수 있게 하는 안전막이 되고 싶다.

(이건 진정한 재양육에 보답하는 '효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낄낄 웃었다.)



내가 힘든 시기를 지나 모든 문제를 극복해 새 사람이 된 거면 좋겠지만,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힘든 시기를 만날 거고 거기서 구를 것이다. 틈만 나면 불안에 떨고 슬픔에 주저앉고 열패감에 잠 못 이루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나를 사랑하게 될 수도 있다.

나를 자라게 하는 말들, 글들, 지식들, 그리고 마음들, 사랑하는 사람들, 그것들을 놓치지 않고 발견할 줄만 안다면.


엉망진창 진흙탕에 안개 낀 현실이라도, 그래도 누군가가 내 뒤에 있고 나를 응원한다고 생각하면, 용기가 난다.


그걸 쥐고 나아갈지 말지는 온전히 내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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