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 수집과 비자 건강 검진
유학원에서 수요일쯤 비자신청이 완료되었다고 하면서, 생체 등록과 관련된 내용이 담긴 메일을 보내주었다. VFS Global 센터의 예약 시간은 오전 10시 35분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미리 예매한 8시 서울행 버스로는 알려준 예약 시간에 맞추기가 어려울 것 같아, 15분 당겨 7시 45분으로 바꾸어 두었다.
11월 1일 금요일 아침, 새벽부터 일어나 아이와 준비를 하고 7시 35분쯤 집 근처에 있는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괜히 긴장해서일까 잠도 설치고 목에도 근육이 뭉쳤는지 온몸이 뻐근했다. 서류를 빠뜨리고 오는 불상사가 생기게 될까 봐 가져가야 할 서류들을 네다섯 번 이상 점검했다.
생체 등록 센터는 이태원에 위치했는데, 유학원에서 예약하고 보내준 Biometrics 파일을 출력해서 가야 했다. 그리고 우리 둘의 여권과 예약 확인증도 1부씩 출력해서 가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서울 센트럴 고속터미널에 9시 45분쯤 도착을 했고, 3호선을 타고 가다가 약수역에서 6호선으로 갈아타기로 했다. 아이와 센트럴 터미널에서 내려 3호선 지하철 역까지 걷다 보니 생각보다 동선이 길었다. 10시 30분쯤까지 시간을 맞추기엔 빠듯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자마자 우리가 탈 지하철이 도착해서 바로 이태원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VFS Global센터는 이태원 역 바로 앞에 있는 해밀턴 쇼핑몰 1층에 위치해 있었는데, 10시 20분쯤 도착해 보니 보안구역처럼 철저하게 문이 잠겨있었고, 직원이 나와 예약한 시간에 맞춰 온 사람들을 입장시키는 방식이었다. 직원은 우리를 보고 '10시 35분 예약이신가요? 그러면 딱 그 시간에 오셔야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라고 안내를 했다.
분명 안내 메일에는 15분 전쯤 미리 도착하라는 문구가 있었기에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그냥 복도에서 마냥 15분을 서 있기가 어려워(앉아서 기다릴 만한 대기석도 존재하지 않았다.) 제제와 나는 쇼핑몰 건물을 나와 이태원역 주변을 서성거렸다. 흐린 서울 하늘 아래 서늘한 가을 아침 바람까지 감돌아 스산한 기분이 들었다. 쇼핑몰 건물 바로 옆 골목길엔 2년 전 일어난 참사를 기록하는 추모비 같은 것이 있었는데 보수 중이라 자세히 보긴 어려웠다.
시간이 얼추 다 되어, VFS Global 센터를 가보니 직원이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어주었다. '10시 35분 예약이시죠? 안 쪽으로 들어오셔서 보안 검사를 받으시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마치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듯 보안 검색을 받고 가방도 살짝 열어 보여주어야 했다.
안 쪽에 들어서니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 나라 별로 생체 수집이 이루어지는 방들이 존재했다. 생각보다 규모는 아담했다. 나는 안내받은 12번 방 앞에서 호명되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들어갈 수 있었고, 우선 생체 수집 등록 비용을 치러야 했다. 카드 결제는 되지 않았고, 현금 혹은 계좌이체만 가능했다.(인당 57,400원)
제제 먼저(미성년자는 보호자 동반 하에 생체 수집이 이루어진다.) 사진을 찍고, 손가락의 지문 수집을 한 뒤 마무리가 되었다. 내가 할 차례가 되자 제제는 나가서 대기해야 했고, 나 또한 같은 방법으로 얼굴 사진과 생체 수집 절차가 이루어졌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빠르게 생체 수집을 마무리되어 11시 전쯤 센터에 서 나올 수 있었다.
이태원 근처에서 지인에게 추천받은 식당에 들러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자마자 그다음 검진이 있을 연세 세브란스 병원으로 향했다. 지하철 노선이 마땅치 않아 이태원역 쪽에서 421번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숙대입구역에서 내려 신촌 쪽으로 가는 750번 버스로 갈아타기로 했다.
용산 미군기지, 전쟁기념관을 지나고 나니 이국적인 풍경은 어느 정도 사라지고, 복잡한 서울 도심이 나타났다. 숙대입구 역에서 내리니 바로 갈아타야 할 750A 버스가 뒤따라오고 있어 바로 올라탔다. 서대문을 지나 신촌방향으로 좌회전을 하자마자 낯익은 문이 눈앞에 나타났다.
"제제야, 저거 독립문이다! 거꾸로 읽어야 해, '문립독'으로 되어 있지?"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제제 귓속에 대고 이야기했다. 제제도 주변 풍경이 신기한 듯 여기저기 눈을 떼지 못한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태원에서 신촌까지 가는 건 생각보다 멀었지만, 그래도 버스를 타고 가다 보니 이렇게 나름대로 서울 시내 구경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좋았다.
검진 센터에 예약한 시간까지는 한 시간가량 시간이 남아 신촌 앞을 구경하고 카페에서 디저트도 먹으며 조금 쉬었다가 연세대학교 캠퍼스 안 쪽 구경을 하면서 세브란스 본관 건물로 가보기로 했다. 점심시간 직후여서인지 연대 앞 신촌 거리에는 유동인구가 무척 많았다.
한 10여 년 전쯤,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에서 있었던 연수를 듣기 위해 연세대학교를 찾았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 기억과는 사뭇 달라 왜 그런가 싶어 살펴보니 연세대학교 앞 쪽으로 경의중앙선 철도가 개통되어 고가도로처럼 철도가 지나고 있어 그런 듯했다.
예약시간이 얼추 다가오자, 나는 신촌에서 연세대학교 정문을 지나 세브란스 본관 건물 쪽으로 향했다. 요새 정신없이 호주 갈 준비에 바빠 주변을 살필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 캠퍼스 안을 둘러보니 어느덧 나뭇잎들이 노랗게, 그리고 빨갛게 물들어 있어 깊은 가을이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연세대학교 백양로에는 같은 대학 출신인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파란 플랜카드가 곳곳에 걸려있었다.
시간이 없어 더는 감상하지는 못하고, 캠퍼스에서 세브란스 병원 본관 뒤편과 연결된 옆쪽 샛길로 걸어갔다. 약간 언덕길이라 제제가 조금 힘들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아침부터 여러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워낙 많이 걸었기 때문이었다.
힘들어하는 제제를 달래며 본관 뒷문으로 들어서서 3층에 있다고 안내받은 비자 검진 센터를 찾았다. 당연히 1층인 줄 알고 한 층 올라서니 4층이라고 표시되어 있어 다시 돌아 내려왔다. 본관 뒷문으로 들어온 쪽이 이미 3층이었던 것이다.
예약 시간 10분 전쯤, 비자 검진 센터를 찾아 접수를 마치고 검진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비자 검진 센터에 제출해야 할 서류는 여권, 반명함판 혹은 여권용 사진 1장, 미리 출력해 간 신체검사용지였다. 숨을 고르고 대기실에 앉아 조금 기다리니 순서가 되어 우선은 키와 몸무게 등을 측정하고 시력 검사를 했다. 그리고 옆 방으로 들어가 의사 선생님의 검진을 받아야 했다.
제제는 이 이상의 검진은 따로 필요하지 않았고, 나만 추가적으로 채혈, 엑스레이 등 기타 검사가 이어져 있어 원무과에 수납을 마치고 제제와 함께 추가검사를 하고 검진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검진 비용은 따로 보험 처리가 되지 않아 나는 198,000원, 제제는 162,000원의 비용이 들었다.
할 일을 다 마치고 나니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다. 그래도 별 탈없이 끝나 다행이었다. 아까 왔던 본관 뒤편길로 나와 제제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캠퍼스를 거닐며, 여유 있게 연세대학교를 구경했다. 독수리 상 앞에서 사진도 찍고, 그 옆에 있는 흔들 그네에도 잠깐 앉아 주변을 구경했다.
제제는 연세대학교 캠퍼스 풍경이 마음에 들었는지
‘엄마, 나 나중에 이 대학교 다니고 싶어.’ 라며 내 손을 잡았다.
‘그래? 여기 엄청 공부 열심히 해야 올 수 있는 학교인데?’ 나의 말에 제제는 자신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웃으며 결과가 어찌 되든 오늘 이 한 걸음이 제제에게 큰 경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새벽부터 서둘러 서울로 올라와 이곳저곳을 다니고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치니 피곤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용산역에서 17:48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기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지만, 그래도 신촌에서 40분가량 이상 걸릴 거리라 바로 이동하기로 했다. 다행히 연세대 정문 앞에서 용산역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용산역까지 가는 버스 안에 앉자마자 제제는 대전에 내려가기 싫다며 아쉬워했다. 그러다 피곤했는지 이내 잠이 들었다.
용산역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고, 시간 맞춰 기차에 탑승했다. 서대전역에 마중 나온 남편과 함께 집으로 편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래도 크게 칭얼거리지 않고, 오늘 하루 일정을 함께 소화한 제제가 기특했다.
너무나도 긴 하루였지만, 계획했던 일들을 다 해결하고 올 수 있어 만족스러웠고, 이제 비자신청까지는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기다릴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