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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운전하기

헷갈리는 왼쪽, 오른쪽

by 라라미미

호주에서 살 집이 정해지고 아이의 학교 등교를 위해 차를 운전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호주에서 운전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부터 들기 시작했다. 호주는 우리와 다르게 좌측통행을 하며 운전석이 차량 오른쪽에 있기 때문인데, 한 5년 전쯤 오키나와에서 렌터카를 운전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그때도 좌우가 바뀐 차량과 교통시스템에 적응하는 게 쉽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몇 번 운전해 보니 금방 익숙해졌던 느낌을 떠올리며, 호주에서의 운전도 그때처럼 몇 번 운전대를 잡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싶다가도 외곽도로가 한산했던 오키나와와 복잡한 도심의 멜버른은 또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일단은 급한 대로 유튜브에서 '호주 운전'을 키워드로 몇 가지 영상들을 보며 대략적인 상황들을 살폈다. 영상으로만 보는데도 괜히 헷갈리고 어색했다. 몇 개 영상을 보며 내린 결론은, 이게 직접 해보지 않고 영상만 보는 것으론 절대 체득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시간은 흘러가고 더는 준비할 새도 없이 호주에 오게 됐다.


처음에 집과 차량 문제로 유학원과 만났을 때, 이렇게 운전에 자신 없어하는 나를 보고 한인 운전 연수를 받을 것을 당부했다. 필수는 아니지만, 연수를 받고 안 받고의 차이는 크다고 했다. 특히, 호주의 교통 규칙이나 도로 상황들이 생각보다 복잡해서 그냥 한국에서 하던 대로 운전을 하면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게다가 호주의 범칙금은 생각보다 세서 나중에 벌금을 내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예방차원에서 미리 연수를 받고 도움을 받아보는 게 훨씬 낫다는 말도 덧붙였다. 몇 분의 도로운전 연수 강사님을 소개받고 그중 한 분을 정해 연락을 했다. 제일 빠른 시간인 23일 목요일 1시로 예약을 잡고 집 근처에서 뵙기로 했다.


23일 당일, 집 근처에서 꽤나 작은 도요타 검은색 차량 옆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강사님을 만났다. 나보다 10살 정도 많아 보이는 남자분이셨는데 짧게 인사를 나누고 나보고 운전석에 타라고 안내해 주셨다. 내 개인차량으로 운전 연습을 도와주시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과는 달리 검은 차량 보넷트 앞쪽으로 노란색 정사각형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고, 알파벳 "L"이 적혀있었다. Learner라는 뜻을 나타내며 이 러너 드라이버는 혼자 운전할 수 없고 옆에 Full License를 가진 드라이버가 동행할 때만 도로 주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정말 정식 운전 연수용 자동차였던 것이다. 당연히 조수석에도 만약을 대비한 브레이크 페달이 달려있었다.

바로 운전 연수를 시작하는 줄 알았는데, 내가 운전석에 앉자마자 강사님은 작은 클리어파일 하나를 꺼내 한 장씩 넘기며 호주의 도로 표지판의 의미, 좌회전과 우회전의 다양한 상황들, U턴과 추월, 주차 표지판의 의미 등 내가 실제로 도로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설명해 주셨다. 너무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들어와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최대한 집중해서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강사님은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고 했다. '호주에서는 하지 말라는 것만 안 하면 됩니다. 표지판으로 금지되어 있는 사인만 주의하세요.'

빅토리아 주의 교통 규칙들을 설명한 안내서의 일부, 기본적인 차선에 대한 안내, 진로 우선 순위, 신호등 체계 등이 나와 있다

한 10분 정도 그렇게 설명을 듣고 나서 드디어 운전을 시작했다. 계속 짧게나마 해봤던 오른쪽 운전석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 좌측통행 체제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원래 운전하던 습관대로 자꾸 도로 좌측에 붙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왼쪽 라인의 차량과 부딪히게 될 수도 있어 위험하다. 나도 무의식 중에 자꾸 왼쪽에 치우치자 그때마다 강사님은 내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어주며 경고를 해 주셨다.

호주에서 운전할 때 가장 헷갈리는 것 중 하나가 우회전인데, 우회전의 경우 신호를 주는 경우도 있지만, 직진신호일 때 비보호로 우회전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 우회전 신호가 없는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할 경우에는 도로 중간직전까지 차를 앞으로 끌고 나가 반대쪽 차선에서 오는 차량은 없는지 살펴본 후 우회전을 하면 되고, 만약 빨간불로 바뀌기 전까지도 반대편 쪽에서 차량이 계속 올 경우에 이미 우회전을 하려고 도로 중간까지 나왔다면 빨간불이 바뀌기 직전 혹은 바뀐 후에 바로 우회전을 하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도로 중간에 보면 'KEEP CLEAR'라고 쓰여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골목으로 우회전하려는 차량을 위하여 반드시 비워두어야 하는 곳이다. 우리에게는 없는 이런 규칙들이 가장 헷갈렸다.


또, 우리에게도 있는 회전교차로가 이 호주에도 많은데 이곳에서는 Roundabouts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리랑 기본적인 규칙은 비슷하지만 꼭 왼쪽으로 돌아나가는 것을 주의해서 운전해야 한다. 자칫하면 원래 하던 습관대로 오른쪽으로 들어가기 쉽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직진 차선 주행이 우선이며, 회전교차로(Roundabouts)에서는 나의 오른쪽 방향에서 오는 차량에 주의해서 살펴 들어 간다

그리고 역시 운전의 가장 걸림돌은 주차인데, 호주에는 주차표지판의 종류가 정말 많다. 우선,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는 표지판의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TRUCK ZONE, PERMIT ZONE, WORKS ZONE, BUS ZONE, TAXI ZONE 등으로 표시된 곳은 주차할 수 없고 S라는 글자에 금지표시가 되어 있는 곳은 STANDING, 즉, 잠깐의 정차도 불가한 곳이다. 보통 우리가 주차할 수 있는 곳은 초록색 글자로 1P, 2P라고 되어 있는 곳인데(이마저도 가능한 쪽으로 화살표가 되어 있어 그쪽 방향으로만 주차가 가능하다.) 1시간, 2시간 동안 주차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다만 이런 주차 표시판에 TICKET이라는 글자가 있다면 주차비를 내야 하는 구역이고 없다면 무료 주차 구역이다.

주차 구역에 대한 안내

그렇게 진땀 나는 2시간가량의 운전 연수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내가 면허를 딴지는 20년쯤, 못해도 10년 이상은 운전을 해서 나름대로 운전 경력자라고 생각했는데, 여기 와서 운전을 하니 다시 초보 때로 돌아간 것만 같다. 그래도 마냥 걱정만 앞섰던 것보단 이렇게 연수를 받고 나니 어느 정도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기본적인 규칙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다. 이제 내일은 아이가 다닐 학교 주변을 둘러보며 주차 공간도 살펴보고 운전 연습을 좀 더 해봐야겠다.


*호주는 주마다 교통 법규가 약간씩은 다른데, 나는 멜버른에 거주해서 빅토리아 주 교통 법규 안내서를 참고했다.(https://edge.sitecorecloud.io/stategovernc45d-cftw-production-c9ca/media/Project/TransportWebsite/Forms/road-to-solo-driving-handbook.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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