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빠와의 헤어짐
신혼여행지인 하와이가 첫 해외여행이었던 남편은 결혼 10주년이 되면, 훗날 태어날 아이와 함께 다시 이곳을 찾아보자고 말했다. 하와이의 느긋한 분위기, 따뜻한 날씨, 그리고 와이키키 해변의 눈이 부시도록 파란 바다를 또 보고 싶다는 생각에 나 또한 남편의 말을 듣고는 좋다고 생각했다. 10년쯤의 시간이 흐르면 우리 둘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고 안정을 찾겠지, 그때가 되면 무리가 되더라도 한 번쯤 이 하와이를 다시 찾을 수 있겠지 가볍게 생각했더랬다. 그때 당시 10년 뒤를 생각했을 때는 참으로 멀게만 느껴졌었는데, 올해 벌써 결혼한 지 10년이 되어버렸다.
그때 생각했던 것만큼 경제적인 안정이 빠르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해 초만 해도 그 당시 약속했던 하와이는 못 가지만 동남아시아라도 꼭 함께 다녀와야겠다 생각했는데 인생은 참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끼며 엷은 웃음이 새어 나온다. 호주라니, 생각지도 않았던 나라다. 졸지에 결혼 10주년 기념 여행지로 호주가 되어 버렸다.
남편까지 휴직을 하고 호주를 가기에는 경제적인 부담이 되어 남편은 1년 동안 팔자에 없던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기로 했다. 대신, 처음에 호주를 들어갈 때 2주 정도 함께 들어가서 나와 제제의 적응을 돕고, 좀 더 시간적 여유가 되면 근교라도 둘러보자고 했었다. 처음에 호주에 들어왔을 땐 그 2주가 꽤나 길게 느껴졌는데, 막상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날이 점점 다가오니 시간은 더욱 빠르게 흘러갔다.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1월 29일 수요일, 그날은 제제가 첫 등교하는 날이기도 했다. 남편은 29일 밤 10시 비행기를 예매해 놓은 상태였다. 그래도 제제가 처음 등교하는 날을 함께 하고 하교까지 같이 보고 갈 수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제제는 아빠가 한국으로 가는 날이 되기 이틀 전부터 계속 아빠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칭얼거렸다. 나 또한, 남편과 내내 붙어 있으면서 몇 가지 상황에서 서로의 의견차이로 부딪힐 때도 있긴 했지만 막상 남편 없이 나 혼자 남아 이 멜버른 생활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내심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야속하게도 29일 수요일은 빠르게 찾아왔다. 제제는 아빠가 떠난다는 사실에 속상하기도 하고 처음 학교를 간다는 생각에 긴장을 하며 그 전날 어렵게 잠에 들었다. 나도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에 제제의 첫 등교 도시락도 싸야 하고 차로 처음 등교를 도와줘야 해서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미리 사둔 도시락을 꺼내놓고, 밥부터 올렸다. 당근, 호박, 감자 등을 작게 썰어 볶은 뒤에 밥과 같이 섞어 주먹밥을 만들었다. 이곳 호주에서는 점심시간만 있는 게 아니라 오전에 한 번 중간 쉬는 시간에 간식을 먹을 수 있다고 해서 과일과 쿠키 같은 종류도 함께 챙겨 넣었다. 며칠 전 구매한 교복을 입히고 아이의 몸집보다 큰 가방에(도시락을 챙겨 다녀야 해서 큰 것인가 합리적 의심을 해본다.) 도시락과 물통을 챙겨놓으니 나갈 준비가 완료됐다.
첫날이라 도로 상황도 잘 모르고, 주차도 어찌 될지 알 수 없어서 조금 일찍 서둘러 학교로 나가보기로 했다. 출근시간과 등교시간이 맞물려서인지 도로에 차가 많았다. 그래도 막히지는 않아 차로 10분 정도 거리의 학교에 금방 도착했다. 그리고 주차공간이 없을까 우려했던 2시간짜리 무료 주자창도 여유가 있어 쉽게 주차까지 했다.
내가 새 학교에 전학 온 것처럼 그리고 새 직장에 출근하러 가는 첫날인 것처럼 두근두근 긴장되었다. 슬쩍 제제의 표정을 살피니 차에 내린 순간부터 제제의 표정은 잔뜩 얼어있었다. 그런 표정을 보니 나도 마음이 약해졌다. 제제가 잘해줄 거라 믿으면서도 한편으론 힘들게 하루를 버텨내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됐다.
새 학년 첫날이라 그런지 운동장에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학부모들도 꽤 많았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제제의 손을 잡고 'OFFICE'라고 쓰여있는 곳을 먼저 찾았다. 나같이 새로 입학하는 혹은 전학 온 친구들과 부모들이 줄 서서 등록 절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되자, 나는 준비된 서류를 내밀며 제제의 이름을 말씀드렸다. 그러고 난 후 선생님 한 분이 교실까지 안내해 준다고 해서 따라갔다. 제제의 교실은 OFFICE 건물 바로 윗 층에 있었다. 우리 초등학교 교실보단 아담한 느낌이었지만 층고가 높아서인지 답답해 보이지는 않았다. 커다란 둥근 탁자가 4개 있었고 각 탁자에는 5~6명의 친구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놓여 있었다.
제제의 담임선생님은 예쁜 금발을 집게핀으로 단정하게 묶어 커다랗고 시원한 눈매가 인상적인 미소가 밝은 분이셨다. 밝게 인사를 나누고 제제가 오늘 첫날이라 힘들 테지만 잘해 낼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자기가 돕고 챙길 테니 안심하라고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시자 덩달아 나도 마음이 놓였다.
복도로 나가 제제가 쓸 가방고리 위치를 알려주고, 이따 하교할 때 만날 곳도 미리 말씀해 주셨다. 아이들이 하나둘 자리에 앉아 첫날 해야 할 학습지를 시작하자 제제도 자리에 앉아 책상 한가운데 놓여있는 연필꽂이에서 연필을 잡고 학습지에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는 더 있기엔 수업에 방해가 될 것 같아 선생님께 눈인사를 나누고 교실 밖을 나왔다.
남편과 학교 주변을 둘러보며 TV나 드라마 속에서나 보던 이런 외국의 초등학교에 제제가 다닌다는 사실에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우리 둘도 그제야 여유를 갖고 학교 주변을 둘러보았다. 운동장이 꽤 넓고 여러 건물들이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학교 규모가 꽤 컸다.
집에 돌아와 정리를 좀 하고 남편과 마지막 둘만의 점심 식사를 마치고 한숨 돌리고 나니 어느새 제제가 하교할 시간인 3시 30분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떤 얼굴의 제제를 만날지 무척 궁금했다. 하루종일 답답한 마음에 속상해하지는 않았을지 염려도 되었다.
다시 학교로 가서 제제가 나오길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 아이들과 함께 건물 밖으로 나오는 제제를 만났다. 제제는 여전히 굳은 표정이었다. 그래도 나와 남편을 보고는 긴장이 풀렸는지 그제야 원래의 밝은 제제로 돌아와 운동장을 뛰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한국말하니까 너무 좋아. 오늘 하루종일 답답했어.'
'맞아, 제제야. 분명 오늘 하루 그랬을 거야. 그런 기분이 드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야. 고생 많았어.'
한국은 오늘이 설날 당일이라 남편과 마지막으로 함께 먹는 저녁으로 떡국을 끓이기로 했다. 남편은 사다 놓은 떡을 불리고 국거리용 소고기를 기름에 달달 볶아 떡국을 만들었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또 정리하고 보니 이제 정말 남편이 가야할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 집에서 멜버른 공항까지는 차로 1시간이 걸리는데 퇴근 시간이라 막힐 수도 있을 것 같아 조금 이르게 출발하기로 했다.
남편이 갈 채비를 하는데 방 안에서 제제와 남편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서 가보니 제제가 울고 있었다. 아빠랑 헤어지는 마음에 속이 많이 상했던 것이다. 남편의 눈시울도 붉게 변해있었다. 나도 마음이 먹먹해졌다.
'제제야, 엄마 말씀 잘 듣고 있어. 아빠 그냥 한 달 동안 출장 갔다고 생각해. 중간에 또 휴가 생기면 올게!'
서로의 감정을 추스른 후 집 앞에서 택시를 부르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그렇게 남편은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남겨진 우리 둘 모두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순간의 공허함을 같이 느끼는 것만 같았다. 아빠가 타고 떠난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제제가 모른 척 밝은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넸다.
'엄마, 내일은 샌드위치 싸 줘. 애들 보니까 샌드위치 싸와서 먹는데 맛있어 보였어.'
'그래 그럼, 우리 치즈랑 소스 사러 슈퍼에 갔다 올까?"
그렇게 우리 둘 만의 멜버른 생활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