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초등학교, 그리고 단 둘이 호주에서 보내는 첫 주말
호주의 초등학교 시스템은 우리와 조금 다르다. 대부분의 영미권과 유럽국가들이 9월 학기제를 채택하는 것과는 달리 호주는 1월 말에 새로운 학년이 시작된다. 또한 2개의 학기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4개의 term으로 나뉘며 각 term사이에는 1~2주 정도의 방학이 있고, 4번째 term이 끝나는 12월 중순부터는 긴 학년말 방학을 가진다. 그리고 1학년 들어가기 전 학년을 Foundation year이라고 해서 총 7년 동안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는데, 이 기간은 주마다 부르는 명칭이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제제가 다니는 학교는 Prep(Pre-primary)으로 부른다. 호주 대부분의 초등학교의 등교시간은 8시 30분~9시 사이이고, 하교 시간은 3시~3시 30분 사이이다. 제제의 학교는 8시 50분에 등교하고, 3시 30분에 하교한다.
제제는 한국에서도 이제 2학년이 될 나이이므로 year2(호주에서는 학년을 year로 표현한다.)로 입학을 하게 되었다. 첫 등교 후 이틀 째인 목요일 아침, 제제는 학교가 가기 싫다는 이야기로 잠에서 깼다. 하기사 얼마나 어려웠을까. 아무리 기본적인 내용은 알아듣는다고 해도 아직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자유자재로 할 수 없는 데다 현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말씀의 속도 또한 빨라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주변에서는 다른 아이들도 처음 일주일은 많이 힘들어했다고 하며, 곧 나아질 거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런 반응이 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지만 이런 새로운 환경에서 제제의 감정 상태는 상당히 예민한 상태였다. 예전의 유치원에 입학했을 때도,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한 2주 정도는 이렇게 예민한 상태로 짜증이 늘던 시기가 이어졌었다. 이번에도 그 정도의 시기가 필요하겠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아니면 더 길어질 수도 있겠다 싶어 나는 엄마로서 아이의 이런 감정을 받아주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되었다.
-제제야, 오늘 하루도 애썼어. 오늘 학교에서 어땠어? 선생님 말씀은 알아들을 만했어?
-아니. 엄마, 선생님도 그렇고 친구들도 말이 너무 빨라.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게 너무 많았어. 그래서 너무 답답했어. 그리고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긴 것 같아. 한국에서는 1시 조금 넘으면 끝났었는데.
-맞아. 무슨 말인지 모르면 정말 답답하지. 하루종일 그랬으면 오늘 정말 힘들었겠다. 그래도 내일 하루만 등교하면 주말이야. 하루만 더 힘내고 주말에 쉬면서 하고 싶었던 것도 하고 재미있게 시간 보내볼까?
둘째 날은 우선 제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 주며 저녁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금요일 아침이 되었다. 여전히 축 처진 어깨로 학교 교문을 들어서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짠한 마음이 들었다. 표정도 썩 밝지 않았다. 제제의 기분과는 다르게 금요일 날씨는 아침부터 무척 맑고 화창했다.
학교에 도착한 건 8시 40분쯤. 8시 48분 노랫소리가 들리고 8시 50분엔 수업 시작종이 치는데, 그전까지는 교실 문을 열지 않는다. 그래서 일찍 학교에 등교한 아이들은 운동장 곳곳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다. 제제도 활기찬 분위기에 어느 정도 마음이 풀렸는지 긴장했던 표정을 풀고 운동장 놀이터에서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8시 48분이 되어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아이들이 우르르 자신들의 가방을 찾아 매고 학교 건물로 들어간다. 제제도 그 무리에 휩쓸려 나와 짧은 인사를 나누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하교 시간, 그래도 3일째인 오늘 하굣길에 만난 제제의 표정이 어제보단 한결 나아졌다.
그렇게 정신없이 보낸 3일이 지나고 드디어 첫 주말을 맞이했다. 한국에서도 남편의 출장이나 근무로 인해서 둘만 보내던 주말이 가끔 있었는데, 이렇게 타지에서 오롯이 둘만 남겨져 주말을 맞게 되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생각보다 큰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나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니 내가 가진 감정에만 빠져 우울하게 있을 순 없었다. 아이와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날씨가 너무 좋아서 인근 공원에 산책하러 나가보기로 했다.
집 밖으로 나와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니 그래도 기분이 많이 나아졌다. 게다가 아침부터 해는 쨍쨍해서 눈이 부시게 맑은 날이었다. 걸어서 한 10분 거리에 있는 공원이었는데,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반려견을 끌고 혹은 유모차를 끌고 산책 나온 사람들, 혼자 조깅을 하며 운동을 하는 사람들 꽤나 많은 사람들이 공원에 있었다. 공원 안 쪽에 아주 넓은 잔디밭이 있었고 주변으로는 산책로가 둘러져 있었다.
넓은 잔디밭 옆으로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가 있었는데 제제와 나는 그 놀이터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향했다. 놀이터 주변으로 울타리가 쳐져 있었고 입구 또한 닫혀있었는데, 아이들이 노는 곳으로 개들이 들어올 것을 방지한 울타리였다. 호주는 주거지 기본이 주택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대형견을 기르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심지어 공원 안에 개를 산책시킬 때도 목줄을 매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놓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었다.
눈이 부시도록 파란 하늘 아래에서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니 늦여름의 정취가 느껴진다. 제제가 놀이터에서 그네도 타고 미끄럼틀도 타는 동안 나는 제제를 지켜보며 한쪽에 서 있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유모차를 끌고 놀이터에 온 다른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이제 돌 때쯤 지나 막 걷기 시작한 아이들이 꽤 있었다.
문득 제제가 돌 무렵 유모차를 끌고 집 주변 공원을 산책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또다시 이렇게 아이와 둘이 새로운 상황에 남겨지고 보니 그 당시 처음 해 보는 육아에 버둥거리며 낯선 시간 속에서 홀로 외로웠던 시기가 생각나며 지금의 상황과 오버랩되었다.
그때도 아이와의 생활에 적응하는 데 서너 달은 걸렸던 것 같다. 하루종일 남편이 퇴근하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오후 내내 벽에 걸린 시계만 쳐다보던 나, 난 그렇게도 초보엄마였다. 그래도 지금은 말도 통하고 오히려 날 위로할 만큼 커버린 제제가 옆에 있다.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의지하고 있음을 느낀다.
- 엄마 이제 슬슬 배고파.
- 그래, 그럼 이제 집에 가서 점심 차려먹자.
다시 어김없이 돌아온 점심시간. 한 끼를 또 함께 나누며 그렇게 첫 주말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