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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어진 중요한 일

여긴 급식이 없다, 도시락을 싸야 한다

by 라라미미

호주는 따로 학교에서 급식을 제공하지 않는다.(물론 외부 업체에 급식을 주문할 수 있긴 하다.) 그래서 아이가 등교할 때 도시락을 싸 주어야 하는데, 제제의 학교에서는 11시 정각 recess time, 1시 30분 Lunch time 이렇게 두번에 나누어 먹는다고 한다. 첫 번째 시간에는 간단히 과일과 간식을 먹고, 두번째 점심시간에는 점심을 먹는데 그걸 고려해서 도시락을 싸야했다.


한국에서 도시락을 사올까하다가 현지 아이들과 비슷한 스타일의 도시락을 가져가는 게 나을 것 같아 호주에 와서 사기로 했다. 콜스나 울월쓰, 혹은 Kmart나 BigW같은 마트에서 쉽게 도시락을 찾아볼 수는 있었는데, 도시락 종류도 천차만별이라 뭘 사야할 지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또, 어떤 식으로 도시락을 싸주어야 할지 아예 감이 오지 않아 더 고르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여러 군데를 둘러보며 다양한 종류의 도시락을 살펴보고, 또 제제가 좋아할만한 메뉴들을 떠올리다 보니 어느 정도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제제가 직접 들고 다닐 도시락통이니 함께 마트를 둘러보다가 등교하기 직전, 한 마트에서 제제 마음에 드는 도시락통을 구매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예전에 시티에서 한인마트에 들렀을 때도 제제가 좋아하는 김밥이나 유부초밥을 싸주면 좋을 것 같아서 미리 몇 가지 재료들을 구매해 두었다.


어떤 메뉴들을 싸줄 수 있을지 검색해보고 머리속에도 떠올려보며, 그 중 내가 할 수 있고 제제가 좋아하는 메뉴 중 몇 가지로 추려보았다. 주먹밥, 김밥, 유부초밥 등의 밥 종류와 샌드위치, 핫도그 등 현지 아이들이 주로 싸오는 메뉴들도 있었다. 그리고 치킨 너겟, 오징어 튀김 등의 냉동식품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볶음밥이나 밥에 반찬 몇 가지를 싸주어도 되겠다 싶었다.


도시락을 싸주려면 최소한 새벽 6시 30분쯤에는 일어나야 했다. 김밥이나 주먹밥, 유부초밥 등 밥을 지어야 하는 메뉴라면 그보다 10~20분 전에는 일어나서 밥을 앉혔다.


한국에선 학교에서 현장체험학습을 가는 날이나 가족끼리 나들이를 갈 때나 이런 도시락을 싸봤지 막상 매일같이 이런 도시락을 싸서 보내야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이의 도시락을 싸보니 이 한끼를 챙긴다는 것이 정말 어마어마한 일임을 알게 되었다. (한국 급식은 정말 최고다.ㅜㅜ)


게다가 아이가 잘 먹기라도 하면 보람이라도 있을 텐데 아직 학교 시간표에도 익숙치 않고, 해야할 일이 밀려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 시간이 조금이라도 부족해 먹을 시간이 없는 경우에는 반 이상 남겨오는 날도 꽤 있었다. 또, 현지 학생들은 대부분 핑거푸드로 간단히 싸오는 경우가 많아 간단히 먹고 나가서 노는 아이들이 있다보니 제제의 도시락도 날이 갈 수록 현지화되었다.


그래서 그 다음 주는 마트에서 파는 핫도그용 빵을 사와서 핫도그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빵에 양상추 한장을 깔고, 양파와 양송이버섯을 가늘게 썰어 버터를 녹인 팬에 갈색 빛이 나도록 익힌 것을 속으로 넣은 후 소시지와 함께 소스를 뿌려주면 끝이다.), 치킨 너겟이나 오징어튀김(마트에서 Fried Calamari를 사면 된다.), 냉동 피자를 오븐에 데워 보온도시락이 넣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한 번은 보온도시락에 소스와 면을 따로 넣어 파스타를 먹을수 있게도 싸주었다. 만두도 좋아해서 만두를 쪄서 넣어주기도 하고, 볶음밥을 넣어주기도 했다. 주변에 한국 학생들을 보니 삼각김밥을 만들어서 싸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한 2주를 싸다보니 이 도시락도 어느 정도 요령이 생기고 편하게 쌀 수 있는 방법들을 찾게 된다. 요알못인 내가 아이를 낳고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면서 요리 실력이 초보 단계를 벗어날 수 있었는데, 호주에 와서 아이의 끼니와 도시락을 챙기며 또 한 번 업그레이드 되는 것을 느낀다.


결국 중요한 건 아이가 좋아하고 잘 먹을 수 있는 메뉴, 그리고 엄마가 잘 할 수 있는 간단하고 쉬운 요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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