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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운전면허증으로 교체하기

우여곡절 끝에 얻은 나의 호주 신분증

by 라라미미

호주에 오자마자 차량 등록 때문에 호주 운전면허증 교체에 관한 내용을 온라인으로 신청해 두었었다. 그 당시 가장 빠른 시간이 2월 5일 수요일이라 그날 오전 11시 40분으로 예약을 해놨다. 예약할 땐 멋모르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빅로드 지점을 찾았다. 멜버른 시티 안 쪽에 있는 Hub@Exhibition 지점이 가장 가까워 그곳으로 예약을 해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멜버른 시티 쪽은 차량을 가져가기 어려운 곳이었다. 도로 상황이 복잡한 것도 있지만, 일단 주차료가 무료가 아닌 경우가 많고 주차를 한다고 하더라도 주차비가 매우 비싸서 트램을 이용해서 가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래는 차로 가볼 생각이어서 어쩌지 고민하다가 이미 예약한 내용을 바꾸기는 어려워 그냥 트램 타고 나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왕 시티에 나간 김에 한인마트도 들러서 장도 보고 오면 되겠다 생각했다.


제제를 등교시킨 후 조금 일찍 채비를 하고 트램을 탔다. 지난번에 둘러보지 못했던 시티 안 쪽을 더 자세히 둘러본 뒤에 빅로드를 가 볼 생각이었다. 혼자서 이렇게 시티를 나가는 것은 처음이라 트램에 앉아 빠르게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보고 있자니 문득 나 홀로 여행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제제가 학교에 잘 등교하고 적응하는 것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정신없이 생존하는 느낌으로 지내다가 이렇게 여유 있게 나 홀로 시내 구경을 나가니 그런 생각이 들만도 했다.


사실 며칠 전부터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호주 계좌로 최대한 환전수수료나 이체 수수료 손해를 적게 보고 돈을 옮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알아보니 가장 출금 수수료가 저렴하다고 하는 ANZ은행에서 여행용 체크카드로 돈을 출금하고, 내가 갖고 있는 커먼웰스 ATM기로 돈을 입금하는 방법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에 최대 출금 가능 금액은 1000달러였다. (물론 이보다 큰 금액은 해외송금으로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트램을 타고 가다가 플랜더스역에서 내려 시티 안으로 정처 없이 걷다가 길게 이어진 차이나타운 쪽 골목에 다다랐다. 그렇게 골목을 둘러보며 걷다 보니 갑자기 ANZ은행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커먼웰스 은행도 바로 길 건너 쪽에 가깝게 위치해 있었다. 나는 마침 잘 됐다 싶어 우선 미리 공부해 온 대로 내가 가진 여행용 체크카드에 있는 1000달러를 기계에서 출금했다. 그리고는 바로 길을 건너 커먼웰스 은행으로 갔다. atm기에 방금 뽑은 1000불을 넣고 입금 확인증까지 인쇄해서 가방에 챙겨 넣고는 마음 편하게 주변을 구경하러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 걷다 보니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이 눈에 들어왔다. 날씨도 좋아 사진을 찍어볼까 싶어 핸드폰을 꺼내드는데, 아뿔싸 핸드폰에 붙여놓은 카드지갑이 뭔가 허전했다. 순간 당황해서 주머니와 가방을 살폈다. 아무리 찾아봐도 커먼웰스 체크카드가 보이지 않았다. ATM기에서 입금 확인영수증을 받아 들고는 정신을 팔려 미처 카드를 빼는 것까지 못하고 나온 듯했다. 눈앞에 캄캄해지며 얼른 은행앱을 켜보니 아직 내가 입금했던 금액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나는 다시 돌아온 길로 부리나케 은행을 찾았다. 은행 직원에게 상황을 말하고 혹시라도 카드가 기계에 남아있거나 누가 가져다준 카드는 없는지 물었다. 안타깝게도 둘 다 해당되지 않았고, 결국 앱으로 카드를 정지시키고 새 카드 발급을 신청했다. 발급일까지는 최대 10일까지 소요될 수 있다고 했다.


흔들린 멘털을 부여잡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빅로드에 가야 할 시간이 다 되었다. 가서 바로 교체 신청을 접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작성해야 하는 신청 서류가 있어서 서둘러 빅로드로 향했다.

시티에 있는 차이나타운 거리, 그리고 빅로드에서 작성한 서류

예약시간보다 한 20분 전쯤 도착해서 입구 직원에게 내 예약사유를 설명하니 대기표를 인쇄해 주었다. 그리고 작성해야 할 서류를 받아 들고 필요한 내용들을 작성했다. 서류에는 나의 인적사항, 차량 번호 등 기록하게 되어 있었다. 작성을 마치고 대기 장소에 앉아서 내 번호를 불러주기를 기다리는데 어째 이상하게 내 번호를 건너뛰고 다음 번호를 부른다. 의아해서 직원에게 물어보았더니 내가 예약한 시간(내가 예약한 시간은 11시 40분인데, 11시 38분이었다.)이 아직 되지 않아 차례가 넘어간 것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라고 했다. 나는 좀 황당하긴 했지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한 5분 정도를 더 기다리니 그제야 내 번호를 불렀다.

나는 가져온 서류를 꺼내어 직원에게 보여주었다. 내가 가져온 서류는 여권, 한국운전면허증, 현지 거주 증명이 될 수 있는 서류(집 렌트 계약서은행계좌 발급신청서 등으로 확인할 수 있고, 나는 간단히 은행어플로 직원에게 확인받을 수 있었다.)였다. 그리고 사전에 한국에서 출력해 온 영문 운전경력증명서도 함께 제출했다.


호주 운전면허증을 신청할 땐 발급유효기간을 3년으로 할지, 10년으로 할지 결정할 수 있는데 가격차이가 꽤 많이 났다. 나는 10년까지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 3년으로 신청했다.(3년으로 하면 91.3달러, 10년으로 하면 312.70달러였다.) 그리고 운전면허증에 들어갈 사진촬영을 마지막으로 모든 절차가 끝이 났다.


그런데 영 직원이 표정이 시원치 않았다. 사진을 찍는데 계속 오류메시지가 뜬다며 다른 컴퓨터로 시도해 보자고 했다. 나는 엉겁결에 직원을 따라가 다시 사진 촬영을 했다. 그런데도 계속 오류메시지가 뜨고, 다른 사람들도 같은 메시지가 나왔다며, 지금 찍은 사진이 업로드가 되었을 수도 있는데 혹시라도 앱으로 3~4일 안에 내 사진이 보이지 않으면 다시 와서 찍어야 한다고 했다.


정말 이런 상황에서 호주에 왔음을 느낀다. 우리나라 같으면 절대 겪어보지 못했을 일이라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지만, 이방인의 입장에서는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화가 났지만 그저 인상을 쓴 채 '다시 오라고?'라며 직원에게 한 번 더 되묻는 게 다였다.


직원은 연신 미안하다는 말로 이 상황을 수습하며, 꼭 이 지점으로 오지 않아도 되고 다른 빅로드 지점을 가도 되니 사진 업로드가 되지 않았을 경우엔 방문해 달라고 부탁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그로부터 4일이 넘게 지나도 앱으로는 내 모바일 면허증을 확인할 수 없었고, 결국 나는 인근 빅로드 지점을 다시 방문해야 했다. 다행히 새로 방문한 곳에서 사진 촬영을 다시 하고 만 하루가 지나지 않아 앱에 업로드된 모바일 운전면허증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걸려서 실물 운전면허증도 받을 수 있었다.


어렵사리 받은 나의 호주 신분증. 이제 여권은 굳이 들고 다니지 않아서 좋고, 나름 이 국가에서 나의 신분을 증명하고 여기에 속해있다는 인증을 받은 신분증이라 마음이 든든하다.


*덧: 2025년 4월 30일 이후로는 한국 -> 호주 운전 면허증으로 바로 교체가 어려울 수 있다고 하니 자세한 내용은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https://www.sbs.com.au/language/korean/ko/podcast-episode/australias-drivers-licence-rule-change-and-who-its-set-to-affec t/hiampv9g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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