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너원·이완구 논란 종결자....신뢰할 만한 분석이었나?
지난 25년간 언론에 약 7000회 출연하며 국내 최고의 소리연구가로 군림해온 배명진 숭실대학교 소리공학연구소장의 소리 분석을 ‘PD수첩’이 파헤쳤다.
연예인 욕설 파문부터 한국사회를 뒤흔든 각종 미제사건까지 ‘소리’에서 단서를 찾아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그에게 언론도, 국민도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PD수첩’ 제작진은 지난 21일 “배명진 교수의 음성 분석이 과학적이지 않다는 학계의 제보가 접수됐다”며 이에 대한 취재에 나섰음을 알렸다. 한학수 앵커는 "소리 공학자 배명진 교수의 분석에 문제가 있다고 여러 음성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다. 여러 언론에서 배 교수의 자료를 활용해왔기에 몹시 당황스럽기도 하다. 배 교수는 언론을 넘어 수사, 재판에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 'PD수첩'이 이 문제에 주목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2012년 제주시 도남동의 한 하천 바닥에서 시신 한 구가 발견됐다. 죽은 이는 제주방어사령부 소속의 김 모 하사. 자살인지 타살인지 명확하게 결론 나지 않아 의혹 속에 잠겨있던 이 사건은 배명진 교수의 목소리 분석으로 커다란 전환점을 맞는다. 당시 유가족은 시신을 발견해 119에 알린 ‘익명의 신고자’를 범인으로 의심하고 있었던 상황.
배명진 교수는 ‘익명의 신고자’의 목소리가 바로 죽은 김 모 하사의 부대 선임의 목소리와 매우 유사하다는 충격적인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배명진 교수의 음성분석으로 인해 부대 선임이 김 하사의 죽음에 아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그러나 배명진 교수의 음성 분석은 얼마 뒤 뒤집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음성분석 결과 ‘익명의 신고자’와 부대 선임은 ‘다른 사람’임이 밝혀진 것. 잘못된 음성 분석으로 억울하게 범인으로 지목될 뻔했던 부대 선임과, 김 하사 죽음의 진실을 찾기까지 너무 먼 길을 돌아온 유가족은 배명진 교수의 잘못된 음성분석으로 인해 커다란 혼란을 겪었다고 증언한다.
‘PD수첩’은 또한 배명진 교수가 직접 작성해 법원에 증거로 제출한 문건을 입수했다. 바로 故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음성파일, 이른바 ‘성완종 녹취’를 배명진 교수가 분석한 감정서다.
2015년 4월, 유력 정치인들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성완종 회장의 마지막 고백이 담긴 음성 파일이 공개되자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고, 이완구 당시 총리를 뇌물수수혐의로 기소했다.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이완구 총리 측은 2심을 준비하며 배명진 교수에게 ‘성완종 녹취’의 감정을 의뢰했다. 배명진 교수는 성완종 회장의 목소리 진실성이 62.7%이며, 이 전 총리에게 돈을 지불했다는 성완종 회장의 증언은 허위라는 내용의 감정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PD수첩’이 입수한 배명진 교수의 감정서를 검토한 음성 분석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의문을 제기한다. 과학적인 근거를 갖고 작성된 감정서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 ‘PD수첩’ 제작진은 서울여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감정서에서 모호하면서 신뢰성에 있어 문제시되는 부분으로 지목한 “4천...3천만원”을 들리는 대로 받아쓰게 했다.
모든 학생은 “한 한 3천만원”으로 적었다. 경남대의 음성학 교수는 “잘못된 예시를 사용한 것도 문제가 큰데 이를 토대로 분석을 하고 무엇보다 결론까지 내렸다는 점이 놀랍다”고 지적했다.
최근에 배명진 교수는 워너원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3월 인기 아이돌그룹 워너원은 생방송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기 시간을 보내다가 Mnet '스타 라이브'를 통해 그들의 말이 고스란히 송출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일각에서는 워너원 멤버들이 욕설과 성적인 단어를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문제의 발언을 멤버 하성원이 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에 하성운 팬들이 연합해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에 해당 음성을 의뢰했고 당시 연구소는 배명진 교수 명의의 ’방송대기실에서 송출된 특정음의 규명에 관한 성문 감정서’를 통해 결과를 공개했다. "분석 결과, 워너원 멤버 그 누구도 ’불미스러운 속어나 성적인 내용’을 발언하지 않았으며, 논란의 중심이었던 음성파일 구간의 발언자 또한 하성운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고 설명했다. 이 덕분에 워너원과 하성운은 '욕설 논란'에서 벗어나게 됐다.
더욱이 팬들은 소리공학연구소에 비용을 지불하고 의뢰를 요청했고, 비밀엄수 조약에 따라 단가를 밝히지 않자 제작진이 연구소 관계자를 취재해 건당 500만원을 받음을 밝혀냈다.
이날 배 교수는 소리분석의 과학성 논란뿐만 아니라 교수로서 전문가로서 적절하지 않은 태도를 보여 빈축을 샀다. 사전 전화요청에서부터 감정적으로 대응하더니 연구실을 방문한 취재진 카메라를 잡아채는가 하면 그간 쌓아온 자신의 업적과 성취도를 강변하고 “노벨상을 탈 만한 연구를 진행 중” 운운하는 등 납득하기 힘든 반응을 보였다.
에디터 용원중 goolis@sli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