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싱글리스트 Jan 25. 2017

영화리뷰, 나를 알아가는 섬뜩한 발걸음 '퍼스널 쇼퍼'

제69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퍼스널 쇼퍼’가 25일 언론시사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언제나 섬세한 시선으로 삶과 예술을 성찰하는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신작으로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2014)에 이어 할리우드 대표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뮤즈로 나서 일찌감치 영화팬들의 궁금증을 끌고 있다.


영화 ‘퍼스널 쇼퍼’는 프랑스 파리에서 퍼스널 쇼퍼로 일하는 여자 모린(크리스틴 스튜어트)이 몇 달 전 죽은 쌍둥이 오빠의 신호를 기다리며 지친 삶을 이어가는 고난의 발걸음을 조명한다.



고립된 여인, 관계의 아늑함을 갈망하다

유명 여배우 키라(노라 본 발드스타텐)의 퍼스널 쇼퍼로 일하는 여인 모린, 삶의 의미와 즐거움을 상실한 채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귀신을 느끼고 소통하는 영매이기도 한 그는 쌍둥이 오빠 루이스가 사망한 후 그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의 시선에선 ‘가짜’ ‘망상’에 불과한 이 기다림 가운데, 모린은 끊임없이 다른 존재와의 탄탄한 관계를 꿈꾼다. 어쩌면 파리에 홀로 거주하는 미국 여자의 짙은 외로움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사실 모린의 이런 기다림은 그의 서사에 젖어든 관객들조차 공감하기 힘들다. ‘영적 존재’에 대한 불신이 고정관념으로 깊게 뿌리 박혀있는 탓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현실의 인간관계, 예컨대 메신저나 영상통화와 같이 체온이 부재한 옅은 소통은 우리에게 언제나 단절의 두려움을 환기하곤 한다. 더구나 홀로 남겨진 모린에게 이 두려움은 더 강렬하게 접근한다. 그러므로 모린의 기다림은 허구일지라도 완전한 관계의 아늑함을 향한다.


그런 모린에게 어느 날 “난 널 알아. 너도 날 알고. 내 정체가 안 궁금한가?”라는 메시지가 도착한다. 나조차도 잘 모르는 ‘나’를 안다고 말하는 그. 궁금증을 간직한 채 걸음을 옮기는 모린의 시선은 점점 타인에서 자아의 절반을 향해 옮겨간다. 시점의 변화와 더불어 ‘퍼스널 쇼퍼’는 삶에 있어서 나를 돌아보는 과정의 중요성을 함께 역설한다.



훈훈한 메시지, 섬뜩한 연출 포인트

‘퍼스널 쇼퍼’는 ‘자아 찾기’라는 드라마적 메시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힘있게 몰아붙인다. 인상적인 건 따스하고도 희망찬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면서도 진부한 연출과 그저그런 드라마 스토리를 차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서사의 탄탄한 축으로 ‘귀신’이라는 존재를 밝혀 서늘함을 환기하고 다운톤의 조명, 퀭하고 무표정한 등장인물, 다소 섬뜩한 연출이 어우러져 독창적으로 메시지를 강조한다.


가장 백미는 15분 간 펼쳐지는 문자 메시지 시퀀스다. 적막을 깨는 알림음, 모린과 신경전을 벌이는 듯한 대화 내용은 영화를 ‘명품 스릴러’로 격상시킨다. 끝까지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소통상대는 꼬인 서사를 해결하기 위한 게으른 방식으로 보일 법하지만, 19세기 심령주의까지 끌어들여 당위성을 촘촘히 박아 설득력을 높인다. 이 연출로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칸영화제 감독상의 품격을 여실히 밝힌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인생 연기

할리우드 대표 하이틴 스타로 인기를 끌었던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몇 년 전까지 꾸준히 ‘발연기’ 논란에 휘말려 왔다. 하지만 최근의 행보를 살펴보면 이제 ‘연기파 배우’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카페 소사이어티’에서 성장한 연기력을 과시했던 그는 ‘퍼스널 쇼퍼’에서 재능을 꽃피운다.


전작들에서 연기력 자체는 호평 받았지만, 홀로 극을 이끌어가는 능력에 대한 의문을 남긴 바 있던 그녀는 단독주연을 맡은 ‘퍼스널 쇼퍼’에선 1시간45분이란 긴 러닝타임을 홀로 우직하게 이끌며 모든 의문부호를 해소한다. 깊은 눈빛에서 묻어나는 마이너한 감정과 흥분감에 고조된 표정까지 유려하게 넘나들고, 여기에 과감한 노출연기도 시도하며 성숙한 배우의 자세를 드러냈다.





에디터 신동혁  ziziyazizi@slist.kr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거진의 이전글 ‘뜨거운 감자’ 2017 힙합신의 핫 루키 3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