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에서 인기 작가로 반전의 웹툰 그린 '지금은 37.2도' 김꽁
일러스트를 즐겨 하던 평범한 대학생이 인기 웹툰 작가로 그 어렵다는 취업문을 뚫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웹툰 카테고리 ‘베스트 도전’에서 재미로 그리기 시작한 만화 ‘지금은 37.2도’가 소소하면서도 현실적인 연애담으로 인해 젊은 여성들 사이에 뜨거운 인기를 얻었고, 취업준비로 작품을 포기할까 고민하던 그는 인생 2막의 문을 열었다. 웹툰 작가 김꽁(26ㆍ본명 김혜지) 이야기다. 그를 2월 초순 강남의 한 사무실에서 마주했다,
▲ “작품에서 현실적인 연애 감정 보여주고 싶었다”
웹툰 ‘지금은 37.2도’는 4명의 남녀 대학생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로맨스다. 1학년 여대생 서채은이 실연당한 뒤 무심한 듯 그녀를 챙겨주는 송지우와 매번 솔직하게 애정을 표현하는 유진성과의 사건을 그렸다. 연재 중인 1부에서는 연애가 이뤄지는 풋풋한 감정을 담았고 이어질 2부에서는 이별 후 시리고 아픈 감정을 녹여낼 예정이다.
“작품의 첫 구상은 흔한 로맨스 웹툰을 보다가 하게 됐다. 대부분 달달한 러브스토리만을 만화로 담는데 설레는 감정뿐만 아니라 힘들고 슬픈 감정이 주를 이루는 현실적인 연애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 때문인지 자신의 웹툰을 "재밌다"고 칭찬하는 것보다 "슬프다"는 평가에 마음이 더 끌린다. '베스트 도전’ 연재 당시 가장 좋았던 댓글을 떠올려보면 "눈물이 났다" "가슴이 아팠다" 같은 내용이 주를 이룬다. 독자에게 여운을 남겨주고 싶었던 소망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 “작품의 영감은 모두 경험”
작품의 아이디어는 모두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대학생활 당시 이야기를 모티프로 그때 있었던 일들을 각색해서 줄거리를 만들고, 주변 인물을 통해 캐릭터를 창조한다.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의 기억을 떠올려 새롭게 꾸민다. 또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나라면 이 상황에 어땠을까’ 하며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려 노력한다. 남자 주인공의 상황은 항상 남자친구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남자 입장에서 이런 상황에 어떻게 행동한다는 식의 조언을 준다. 거의 직접 개입한다고 봐도 무방하다.(웃음)”
특별히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다른 웹툰을 찾진 않는다. 오히려 드라마, 영화, 음악 등 다른 문화 콘텐츠를 즐겨보며 영감과 자극을 얻는다.
“다른 웹툰을 보고 에피소드를 구상하게 되면 독창성 부분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구성을 따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아예 다른 장르로 넘어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일어나는 감정을 담으려 한다. 음악은 인물들의 독백과 직접적인 대사에 영향을 준다. 평소에는 슬픈 노래를 찾아 듣는데 요즘엔 자우림의 '스물다섯, 스물하나'라는 곡에 꽂혔다. 이 음악을 들으면 촉촉한 감성이 채워져 작업에 도움이 된다."
▲ “그림체 변화는 나의 노력, 팬들 이해해줬으면”
네이버 ‘베스트 도전’ 연재 당시엔 웹툰보다 만화책 같은 그림체를 선보였다. 그림체 변화를 준 이후 팬들 사이에서는 예전의 드로잉 방식이 더 좋다는 평도 종종 등장한다.
“‘몇 년에 걸쳐 연재하다보니 팬들이 당시 캐릭터에 적응이 많이 된 것 같다. 그럼에도 새로운 그림체를 만든 이유는 웹툰 자체의 퀄리티를 높여 세련된 느낌을 주고 싶었다. 가장 많이 신경 쓰는 부분은 감정을 나타내는 캐릭터의 표정이다. 얼굴의 작고 미세한 부분까지 세밀하게 터치한다. 이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욕심을 냈고 노력도 많이 했다. 독자들이 새로운 그림체를 다시 좋아해주실 거라고 기대한다. 이제는 혹독한 평가나 악플도 좋은 피드백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 “웹툰작가로서 어려움은 ‘작업량’”
한 회의 웹툰을 그리기 위해서는 보통 몇 십 컷의 장면을 완성해야 한다. 일반 직장인처럼 오전 9시부터 업무를 시작해 오후 6시에 마치는 것이 아니라 1주일 내내 시간을 쏟아부어도 촉박하다.
“웹툰 작가로서 어려움은 ‘연재’ 그 자체다. 매주 콘티를 잡는 게 가장 까다롭다. 작품 외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평균적으로 포털사이트 웹툰이 보통 70~80컷이라면 코미카는 약 60컷 정도라 수월한 편인데도, 배경과 편집 작업까지 마치려면 일주일 동안 하루 13~14시간을 일해야 하므로 굉장히 고된 작업이다. 웹툰 작가들이 종종 지각하는 걸 이해해줘야 한다.(웃음)”
대학에서 일러스트를 전공했던 그는 취업 준비 때문에 웹툰 연재를 포기할 무렵, 웹툰 플랫폼 코미카(Comica)의 제안으로 만화를 연재할 수 있게 됐고 취업과 수입 고민을 한 번에 해결했다. ‘지금은 37.2도’는 해외까지 진출해 그의 다른 작품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예전에 '베스트 도전'을 할 때는 수입을 발생시킬 수 없어서 고민이었다. 이제는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돼 다행이다. 일단 앞으로는 첫 작품에 충실해 무리 없이 결말을 맺고 싶다. 2부에서는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해 풀어내지 못한 갈등을 그려낼 예정이다. 구체적인 구상은 아직 없지만 앞으로 요즘 독자들이 관심 많아 하는 비엘(Boys Love) 장르를 그려보고 싶다. 로맨스의 여러 얼굴을 표현해보고 싶어서다.”
필명이 특이해 물었다. 아버지의 이름 '광'자를 따와 변형시켰다고 귀띔한다. 마지막으로 김꽁 작가는 “‘베스트 도전’ 때부터 봤다고 하시는 분들의 연락을 받으면 정말 고맙다"며 "독자에 대한 감사함과 결과물에 대한 기쁨이 더 열심히 작업에 매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봄의 전령사 같은 미소를 그렸다.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인턴 에디터 권용범 yongko94@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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